영화이야기, 서평

시인 나태주 님을 만났다.

Kyuchin Kim 2021. 9. 19. 18:51

너무나 심한 복합중병으로 아산병원의사들도 포기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부인 옆에서 병간호를 하면서 기도하다가 나온 기도문을 옮긴 글입니다.(한편의 시같아요)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病)과 함께 약(藥)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 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나태주 시인

 

 

20201102 월요일 시인 나태주님을 만났다.

 

오늘 230분에 서울 퇴계연구원에서 이동술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천자문(千字文) 배우러 가야하는데 아침부터 허리가 아파 학교 앞 반석한의원에서 침 맞고 누워있으나 계속 불편하다. 할 수 없이 천자문 배워가는 것을 포기 하다. 대신 4시에 한국외대 글로벌 캠퍼스 나태주 시인 북 콘서트에 가다.

 

*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좋다 *

 

좋아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도서관장 최성은 교수

 

평소에 인터넷에 나오는 그의 시들 또는 지인들이 블로크나 카페나, 공동 카톡에 자주 올리는 그의 시가 마음이 무척 와 닿아서 만나고 싶었던 시인이다. 그간 여러 명의 시인들과 작가들을 그들의 작품 낭독 모임에서 만났지만 오늘 만난 시인 나태주님은 강열한 인상을 준다. 참다운 시인답게 자기 시를 성실하게 외워서 암송하니 더욱 그의 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시카고에서, 프라하에서,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베오그라드에서 시인들의 시 낭송 모임에서 경험한 것은 한결같이 시인들이 자기들의 길거나 짧은 시들을 암송해서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시 낭송회에 가봤지만 대부분 자기 시를 암송하지 않고, 낭송하고 있어 감동이 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는 시를 읽는 것 보다 이처럼 암송할 때 더욱 의미가 와 닿고 더 감동을 준다. 시카고에서 만난 예브게니 예프투센코는 30분 이상 길이의 자기 시 <바비 야르>를 다 외워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몸짓을 해가면서 읊는 모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내 뇌리에 남아있다. 그는 <바비 야르>를 통해 당시 소련에 퍼져있던 반유대주의를 비판하였다. 2005년 여름 이루쿠츠크 대학에 세미나 참석하러 갔을 때 그쪽 교수님이 예브게니 예프투셴코가 자기 고향 지마(Zima)출신 가수 겸 시인이라고 자랑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참다운 시인다운 가수였다. 자기 시를 노래하듯이, 연극하듯이 암송을 했으니까. 그는 우리나라 시인 김지하나 고은처럼 행동하는 문학을 강조해왔다. 두 한국 시인들이 독재자들의 억압을 시에서 또는 말로서 비판했듯이 그는 시를 통해 서슬 퍼렇던 스탈린시대부터 소련지도자들과 정책을 비판해 왔던 참다운 행동하는 반체제 시인이었다.

 

* 선물 *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인 조용한 시인 나태주님의 서정시는 읽을수록 맛이 난다. 2020112일 노란 은행잎이 짙은 가을 향기를 풍기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 글로벌 캠퍼스에서 풀꽃 시인 나태주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글로벌 캠퍼스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총학생회와 제자 최성은교수가 도서관장으로 있는 글로벌 캠퍼스 도서관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 19 때문에 공개강좌가 거의 개최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를 초청해서 진행한 북 콘서트는 2020년 글로벌 캠퍼스의 가장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19 방역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진행된 풀꽃 시인 나태주와 함께하는 북콘서트는 무척 인상 깊었고 좋았다. 그 큰 강당에 미리 예약한 50여명 학생들만 충분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진행되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실시간 온라인 중계로 북 콘서트를 지켜볼 수 있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쓴 채, 강연 할 동안 만 시인은 마스크를 벗었다.

해방둥이 신 나태주 시인님은 공주사법학교를 나와서 일생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70년대에 문단에 등단하여 조용히 끈질기게 시를 써왔다. 최근 10여 년 동안 수백 권의 시집을 출판할 정도로 늦게야 문단의 주목을 받고 수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단순하고 간결하면서 함축된 의미를 띄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누가나 그의 시를 읽으면 자가도 모르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최첨단의 과학과문명과 IT기술이 일상을 지배하는 21세기에 바삐 사는 사람들에게 그의 시는 숨 쉴 공간을 마련해준다. 일상의 삶에 지친 영혼에 작은 위로를 준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와 합치하여 이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 참된 시인의 작업이라고 하듯이 시를 쓰고 싶으면 자연을, 주위를 자세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글로서 표현하라고 한다. 그는 이러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의 미와 신비함, 미묘한 삶의 정경, 인정과 사랑을 노래한다. 특히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로 천진하고 참신한 착상, 사람과 남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자기 시를 지배하는 원리라고 한다.

 

 

그는 16살에 연애편지 사건으로 실연한 후 죽을까 생각하다가 죽지 않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시는 love lette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짝사랑하던 소녀가 자기를 버렸기 때문에 그는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은인이라고 한다.

그는 올해만 20여권의 시집을 냈고 인정받는데 5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시집이 50여만 부 팔렸다. 학생들에게 조바심을 가지지 말고 끈질기게 삶을 살아, 라고 한다.

 

    

 

* 내가 너를 *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그는 한마디로 사람을 울리는 시, 사람을 응원하는 시, 사람을 살리는 시를 쓴다. 그는 학생들에게 많은 생이 남아있으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천천히 꾸준히 절망하지 말고 전진하라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일생을 살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도 야망을 가지라하고, Boys, be ambitious! 하라고 한다. 이 말은 내가 어릴 때 일본 유학 갔다 오신 옆집 석포형님(김위진)이 자주하시던 말씀이고, 원래는 미국인 교장 클라크(Clark)가 삿포로 농업고등학교(현 홋카이도대학교) 고별인사에서 전후 절망에 빠진 일본 학생들에게 한 말씀이다. 몇 년 전 홋카이도 대학 교정에서 그의 흉상과 이 문구를 봤다

시인의 자기 인생 이야기와 주요한 자기 시 암송은 정말 멋있는 장면이었다. 이어서 시인의 시에 대한 학생들의 답 시를 듣고 비평하고 충고하는 시간도 무척 유용했다. 미래의 시인의 자질을 발견하는 그의 지혜는 놀라웠다.

이어서 학생들의 질문과 대답을 듣는 시간도 학생들에게는 유용했다. 특히 시인을 초청한 학생회장과의 토크쇼는 압권이었다. 시를 무척사랑하고 좋아하는 학생회장이다.

90여분 진행되고 답 시를 쓴 학생들에게는 시집을 선물하고 또 시집을 사온 학생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적 여유도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모습 같았다. 나도 운 좋게 그의 대표작 <풀꽃>을 사인과 함께 선물로 받았다. 추워지는 강당 분위기라 즉석답례로 가져간 따뜻한 생강대추차를 한잔 드렸더니 고마워하신다.

 

시인이 직접 자시 풀꽃1을 시집 책장에 써주시는 성의는 감동적이다.

 

*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 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이 시들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 고은님의 그 꽃을 연상시킨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태원 핼러윈 참사 영령들을 위하여(나태주)

 

,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호사다마란 옛말이 바로 그 말인가!

단풍철 시월의 마지막 밤 축제를 앞두고

젊은 청춘들 방방곡곡에서 모여와

핼러윈 데이 젊은 향기를 즐기러 모여든

이태원 골목길

와장창 일이 터져버리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좁은 골목길 그것도 경사진 골목길

오고 가며 밀리는 인파에 휩쓸려

, 우리의 청춘들이 넘어지고 엎어지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오로지 청춘을 즐기기 위해

코로나19의 감옥에서 풀려나서

눈부신 자유 만끽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영문도 모르고 그야말로 불가항력

떠밀리고 떠밀려 세상의 마지막 숨결을 놓았으니

, 그 고통과 절망과 어둠과 지옥을 어찌 다

감당했단 말인가!

영령이여 젊고 향기로운 영령이여

미안하오 미안하오

우리가 미안하오

그대들보다 우리 나이 많은 사람들

그대들 부형으로 이웃으로 친지로

그대들 마지막 순간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으니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으니

미안하오 다만 미안할 뿐이오

조금만 더 우리가 지혜롭고 더 예비하고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진정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영령이여 못다 핀 꽃들이여

모처럼 기적처럼 찾아온 그대들의 지구 여행길

이렇게 황망히 마치고 말았으니

어찌할꼬, 어찌할꼬

그대들 부디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힘들어하지 말고

지구에서 피우지 못한 꽃 다시 피우며 살기를

바라노라, 그대들 영생 복락 평안을 바라노라

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 천국에서라도

다시 만나 다시 꽃피우기를 바라노라

차마 감지 못한 눈 감으시고

차마 용서하지 못하겠는 일들 용서하시고

부디 잠드소서 편히 쉬소서

못다 핀 꽃들이여 어여쁜 영령이여

무릎 꿇고 통곡하며 그대들 위해 빕니다

우리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

다시 한번 사랑하고 다시 한번 꿈꾸고

다시 한번 살아가는 좋은 목숨이시길 빕니다.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동상: 홋카이도 삿포로시 도요히라구의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는 그의 전신상이 있다. "Boys, be ambitious: 소년들아 야망을 가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