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성 단편집 <아테네 가는 배>을 읽고
단편 소설, <아테네 가는 배>는 1985년 제1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만큼 작품이 훌륭하다.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단숨에 읽어야 할 정도로 가독력이 높다. 35권의 소설을 출판한 내가 좋아했던 동향 영주-봉화출신 고 정소성 소설가의 <설향>과 <건널 수 없는 강>을 몇 년 전에 읽고 작가의 소재설정의 특이함과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구성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최근에 4권으로 된 대장편 <대동여지도>를 읽고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끌어가는 수법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참에 <아테네 가는 배> 단편집을 단숨에 읽었다. 여기에는 <아테네 가는 배>, <쌀 안치는 소리>, <밤바다>, <슬픈 귀국>, <돌아오지 않은 섬>과 <잃어버린 황혼>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하나같이 특이한 소재를 멋지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며 모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 작품의 깊이가 있다.
<아테나 가는 배>는 한마디로 정소성작가의 냉철한 역사 인식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인간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예지, 다민족 유럽 국제사회에서 근본적이 인간애와 사랑의 문제를 다룬 멋진 소설이다. 끝까지 읽어봐야 왜 그토록 많은 역사, 전설과 신화 이야기가 특이한 주인공들과 관련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 비극적이긴 하지만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역전이 일어난다. 긴 중편 소설 <아테네 가는 배>의 주인공 종식이 역사학을 전공으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짬을 내어 역사탐방으로 이탈리아를 거쳐 아테네로 여행을 가면서 펼치는 기행문학 소설이다. 도중에 파리에서 자기의 여행 계획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던 목발을 집고 여행을 떠나온 또 다른 유학생 주하를 만난다. 주하와의 여행 도중에, 이야기 도중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자연스레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면서 이야기는 소설의 재미를 더해간다. 아테네에서 여러 신화의 현장을 보고나서 소설 이야기의 초점이 주하에게 집중된다. 왜 그럴까하고 약간 미스터리적 분위기가 펼쳐진다. 왜냐하면 주하가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테네까지 여행을 하니까. 나중에 알게 되지만 종식이보다 아테네를 거쳐 고대 불가리아인 들이 많이 살았던 테살로니키에서 노숙한 외교관의 도움을 빌어 어릴 때 헤어진 북한에 사는 아버지를 만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남한에 홀로 사는 어머니와 어떻게 해서든 만남을 이룩해보려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와서야 왜 우리는 작가가 아테로 가는 배라고 제목을 정했고 좀 지루하지만 해박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주제와 관련시키게 됐는지 알게 된다. 필자는 아테네를 두 번 다녀왔고 테살로니키를 한번 다녀와서 소설 배경이 더욱 흥미를 끌었다. 교묘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소설은 시간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비극적인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현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잘 연관시킨다. 공간적으로는 주인공이 유학하던 파리에서 여행을 하는 이탈리아 그리스의 아테네와 테살로니키가 연결되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나라 프랑스인, 그리스인, 불가리아인, 중국인과 독일인 등 여러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다루는 스케일이 서사적이면서도 주제의 통일 이루는 작품이다. 우여곡절 끝에 동인문학상을 받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길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또 다른 여행기 소설 <슬픈 귀국>은 유학을 경험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이야기를 멋지게 꾸몄다. 성 불능의 아내를 고국에 두고 파리 유학에서 학위를 따서 금의환향(?) 하는 주인공 인식의 여행 여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교수의 신분인 인식은 파리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동경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여정에서 국제미아가 되어가는 이상한 남자를 만나면서 심적인 동요를 일으킨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멀고 긴 여행 동안 주인공은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자신의 과거의 사건들의 회상을 통해서 연결시키는 심리 소설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런 현재상황과 과거의 상상의 상황이 교차되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제목 <슬픈 귀국>이 상징하듯이 그 긴 여정 속에서 주인공은 떠나오기 전에 자유연애를 만끽하는 유학생 연화의 사랑, 그리고 발레리라는 풍부한 육체의 여자와의 하룻밤 정사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반신불수가 된 아내 선희와의 육체관계를 생각한다. 그래서 금의환향이라는 귀국의 감정이 묘하게 슬프게 느껴진다. 단조롭게 느껴지는 한국과 자유분방하고 여러 이야기가 펼쳐지는 프랑스 유학시절의 일화가 여기저기 등장하여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소설의 구성에 이상한 기류를 형성하나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현대소설 기법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인물이 떠돌이의 상징인 도중에서 만난 사나이처럼 동경에서 똑 같이 일본여자와의 해후를 새로운 출발로 보고 서울로 귀국하지 않는 심리는 이해하기 어렵고 근본적인 인간조건이 무엇인가를 반문하게 한다. 이 소설도 단편이지만 하나의 주제 하에 많은 일화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 <아테네 가는 길>과는 달리 직접적이지는 아니지만 이 소설도 유학생활에서 다른 나라 유학생들의 인식을 통해서 남북 분단의 아픔을 피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學山 김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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