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틱해의 미항: 중세의 혼이 살아 숨쉬는 미녀들의 도시 에스토니아의 탈린
발틱 해에서 발칸까지 종횡무진 배낭여행
제2차 러시아 동유럽 문학 · 예술 탐방기는 배낭을 메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틱 삼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칸 반도의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쓴 것을 1992년 문화일보에 연재했던 것이다. 발틱의 작은 삼국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와 유르말라 해변,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우크라이나의 키이프, 벨라루스의 멘스크에서도 일차 때처럼 비슷한 열정과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유르말라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고르초프 나체 허상은 작은 민족 국가가 대국의 정치적 문화적인 지배에 얼마나 유머러스하게 대처하였는가를 보여주었다. 다들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 소국들인데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보다는 더 잘 살고 있었고 나름대로 민족어와 민족 문화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100만 명이 약간 넘는 인구의 에스토니아 등 발틱 삼국들이 러시아, 폴란드, 독일 같은 대국사이에서 민족어와 고유한 민족 문화를 창조하고,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들 나라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도 누렸지만, 이처럼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을 지배한 나라의 언어를 별 감정 없이 잘 구사하는 것으로 봐서 세월에 따라 대국의 정책에 순응하면서도 자신들의 전통과 언어는 지켜나가는 지혜를 키워온 것 같다.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러시아 말하다가 느낀 러시아에 대한 거부감과는 차이가 있었다.
탈린에는 중세의 혼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낄 수있어 작은 프라하라는별명이 있다. 프라하 처럼 거리와 골목들이 자주한 좁은 공간들로 이루어진 미로 같은 복잡한 고 도시의 구조는 11세기에서 15세기에 사이에 주로 형성되었다. 현재에도 그 거리를 그 골목들을 잘 보전하고 있어 경이롭기 그지없다. 그러한 중세 골목과 거리에 생동감이 넘쳐나서 여행하기에 딱 좋다.
에스토니아 민속의상을 입은 탈린 여인들!
에스토니아 민요 (Estonian Folk Music - Luust sõrmus (Laudaukse Kääksutajad))
그룹 "Laudaukse Kääksutajad"(멤버: Kairi Leivo, Katrin Laidre, Maria Laatspera, Evelyn Rosenberg)의 전통 에스토니아 민요. 그룹 이름 - Laudaukse Kääksutajad는 “헛간 문 소리 내는 자들”란 뜻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레기라울(regilaul)"이라고 불리는 전통가이다. 레기라울은 합창단이 단어를 반복하여 노래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옛 노래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부르고, 조상의 말과 소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함으로써 과거와의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려 한다.
옆에서 함께 듣던 탈린 친구에게 민요 내용이 무엇이냐니까 간단한 가사를 되풀이 한다고 한다.
노래 내용은
우리 영지 가까운 언덕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 영지 가까운 언덕에는 바다가 있다.
바다 한가운데는 무엇이 있는가?
바다 한가운데는 섬이 있다.
섬 한가운데는 무엇이 있는가?
섬 한가운데는 참나무가 있다.
참나무가지에는 무엇이 있는가?
참나무 가지에는 농막이 있다.
농막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농막 안에는 침대가 있다.
침대머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침대머리는 처녀가 있다.
처녀 무릎에는 무엇이 있는가?
처녀 무릎에는 브로치가 있다.
브로치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가?
브로치 아래에는 굴대가 있다.
브로치의 굴대에는 무엇이 있는가?
브로치 굴대에는 가락지가 있다.
그 가락지에는 어디서 가져왔는가?
전사의 손가락뼈에서
시골마을의 남자들 갈비뼈에서
우리 남자들 이마 뼈에서 가져왔다!

예쁘고, 친절하고 명랑한 에스토니아 여인들!
탈린 전망대에 오르면 해안 도시 탈린이한 눈에 들어 온다. 동행한 러시아 여인이 탈린이 에스토니아인들의 수도이지만 대대로 살아 온 우리 러시아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한다. 자기는 러시아계 탈린 시민으로 탈린을 에스토니아 인 못지 않게 사랑한다고 한다. 여기는 여러 민족들이 살아서 서로 잘 어울리고 다투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러시아는 물론이요 영어도 잘 한다. 에스토니아말은 인사 정도만 할 줄 안다고 한다.
Small Prague(작은 프라하)라는 별명이 있는 아름답고 고색창연한 탈린시: 성 올라프 교회(St. Olaf's Church)에서 바라본 탈린 정경
탈린 시의 근대 건축물들은 해안마을과 농장기옥의 영향을 받아 단순함을 추구하는 북유럽풍의 스탈이다.
탈린에 오면 느긋하게 여름을 지내면서 오르간 페스티벌 음악회도 즐겨야 도시의 제멋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성 올라프 교회(St. Olaf's Church) 음악회
성 올라프 교회(St. Olaf's Church) 첨탑에서 바라본 탈린시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
이 화려한 장식의 거대한 정교회 성당은, 제정 러시아가 정복지역에서 러시아화에 박차를 가하던 19C말에 지어졌다. 탈린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장식해 주는 이 성당의 웅장함은 널찍한 내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성당의 종탑은 탈린에서 가장 거대한 것으로, 그 중 가장 큰 종은 자그마치 15톤이나 나간다.
왜 이렇게 장엄한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 여기 있느냐고 동행한 에스토니아 음악가에게 물었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에스토니아가 차르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을 때인 1900년에 지어진 이 대성당이라고 한다. 그 당시 발트 삼국들의 민족주의로 운동이 심해지자, 러시아가 발트 해안 영토에 대한 제국의 종교적, 정치적 지배의 상징으로 이런 거대한 정교회 성당을 지었다. 그 당시 에스토니아 인구의 30%-40% 정도는 러시아인들이었다.
에스토니아는 지난 1992년 7월1일부터 국경을 폐쇄하고 모든 외국인에게 비자를 받도록 했다. 필자도 러시아의 페테스부르크에서 출발, 국경도시 나르바를 통과할 때 12달러를 주고서야 비자를 받았다. 비자대금 수입으로 외화를 벌지만 관광객에겐 불편과 시간낭비가 많다. 체코나 헝가리처럼 외국인 유치로 인한 혜택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자본주의식 이익개념을 위주로 한 경영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발트3국은 발트해의 동쪽해안에 있는 에스토니아(그 나라말로 Eesti․에스티), 라트비아(Latvis 라트비스), 리투아니아(그 나라말로 Lietuva 리에투바)의 세 나라이다. 세 나라 모두 중세부터 독일, 스웨덴,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도 찬란한 서구 기독교 문화와 전통을 이룩해왔다. 1940년 강제로 소련연방에 병합되어 민족주의자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되거나 국외로 망명한 비운의 역사를 경험하고 50년만인 1990년 독립국을 표방하여 옛 전통을 재건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국기는 1918년 11월 21일에 제정되었으며 1990년 8월 7일에 다시 제정되었다. 가로세로 비율은 7:11이다. 파랑은 에스토니아의 하늘, 호수, 바다를, 검정은 에스토니아의 대지와 지난 백년 간에 걸친 에스토니아의 암울한 역사를, 하양은 순수, 행복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1918년 2월 24일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 탈린의 톰페아성에 위치한 피크 헤르만에 처음으로 게양되었다. 그러나 1940년 6월에 소련이 불법 점령(발트 3국 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한 이후에는 사용을 금지당했다. 1989년 소련의 개혁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1989년 2월 24일에 피크 헤르만에 다시 게양되었으며 1990년 8월 7일에 다시 국기로 제정하였다.

이처럼 발트 3국은 비슷한 운명을 겪어 왔으나 나라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이 이 세 나라를 극명하게 구분 지을까?
언어와 종교다.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는 슬라브어와 독일어가 속한 인도․유럽어의 한 갈래이지만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헝가리어가 속한 핀․우그르어족의 하나다. 세 言語 모두 영어처럼 라틴문자를 사용한다. 세 나라의 공용어는 아직도 러시아語지만 지식뿐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도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에게 훨씬 호의적이다.
발트 3국은 볼가 강 서쪽의 기독교 국가들 중 가장 늦게까지(13세기까지) 고대神들이나 정령들을 믿어온 나라들이다. 중세의 십자군 원정군이 이곳까지 왔다. 외세의 지배를 받을 때 리투아니아는 인접국가 폴란드처럼 가톨릭을 신봉했고, 에스토니아는 루터교를 믿었다.
에스토니아는 헬싱키에서 불과 80km 떨어진 항구도시 탈린과 대학도시 타르투 등 도시 중심의 나라이다. 면적은 4만5천㎢이고, 인구는 1백 50여만 명이며 에스토니아인 60%, 러시아인 30% 기타 등으로 구성돼있다.
탈린은 에스토니아 인구의 3분의 1인 50여만 명이 사는 전형적인 중세 도시로 북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이 많은 도시다. 탈린이란 그 나라말로 ‘덴마크인의 거리’라는 뜻이다. 이 이름이 말하는 것처럼 이 도시는 11세기부터 덴마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후 독일 속령이 되었다가 13세기부터 발틱해 주변의 다른 도시들과 함께 한자동맹에 가입, 자유로운 무역항으로 번영의 시대를 맞았다. 조약돌길 골목과 고딕양식의 건물들은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고딕식 교회와 수도원 건축이 16세기까지 지배적이었다. 14세기에 북유럽에서 가장 강하고 큰 규모의 시 성벽이 완성되었다.
톰페아성(Toompea loss)은 에스토니아 탈린 중심부의 톰페아 언덕에 위치한 성이다. 일찍이 9세기부터 요새로 사용되었던 부지로, 1990년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리기코구가 다시 개원한 이래 에스토니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발트해의 미항 탈린 시 중심 톰페아 성을 중심으로
18세기 들어 증축된 톰페아성의 바로크 양식
탈린에 가면 꼭 올데 한자(Olde Hansa: 구한자) 광장을 찾아 가야한다. 거기서는 에스토이아와 북 유럽의 중세시대의 다양한 음식, 멧돼지, 사슴 고기, 곰 등을 파는 레스토랑들이 있고 운 좋으면 에스토니아 중세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중세의 이상을 입은 에스토니아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여행의 색다른 경험을 맛 볼 것이다.
https://youtu.be/l8FA7uP_mRg 여행 중 탈린 골목이나 광장에소 에스토니아 중세 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탈린에 가면 누구나 가는 구 한자(Old Hanza)거리(광장)에 가봐야 탈린의 진면목을 보고 즐 길 수있다.
탈린 시민들은 가족 단위로 식당에서 여름을 즐기거나 자전거를 타기를 즐긴다.
14세기부터 상인들의 지하창고로 사용되어 오다가 근세에 유럽풍 카페술집으로 변한 ‘여우굴’ 술집은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다. 성벽의 고풍스런 카페는 성벽과 탑으로 이루어진 운치 있는 곳으로 뜨거운 포도주를 파는 어두운 지하카페,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뜨거운 포도주, 체코의 크리스마스 무렵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진풍경을 이곳에서도 경험하다니.
20세기 탈린 건축의 대표적인 것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에스토니아 드라마 극장이다. 탈린 시청과 국립도서관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탈린은 중세부터 현대 건축물까지를 볼 수 있는 역사적 도시이다.
탈린에는 이외에도 탈린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 연극, 음악사를 볼 수 있는 연극․음악 박물관, 탈린의 현대 화가들의 그림과 조각이 전시된 현대미술관이 볼만하다.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대학은 현대 언어학의 선구자 얀 보딩 코트나이(Jan Baudonin de Courtenay)가 슬라브 언어학을 발달시켰고, 타르투 기호학파는 현대 기호학의 선구자들이다. 비록 러시아가 대학을 러시아化시켰지만, 이 대학 출신 오스트발드(W.Ostwald)는 물리화학 창시자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탈린시 중앙광장
에스토니아 전통 의상을 입은 탈린 젊은이들
체코슬로바키아어과 김인천 교수와
에스토니아 전통 의상을 입은 탈린 여성모녀
탈린 시 린나 박물관(Linna Museum)은 탈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탈린에서 오래 산 표트르대제와 그의 부인
박물관 안에는 러시아 황제 표트르가 부인과 함께 오랫동안 탈린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그림이 전시되었다.
Peter the Great’s House in Tallinn 탈린에 있는 표트르 대제 집
Peter the Great’s house is the oldest museum in Tallinn. It exhibits a unique collection of genuine objects that surrounded Peter I and Catherine I of Russia during their day-to-day life in Estonia.
박물관을 구경하기 전에 식사부터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탈린의 에스토니아 음식은 고유한 것도 많지만 러시아 식 등 다양해서 아무거나 먹기 쉽다. 작은 커피 집이나 식당에서 끼가 있는 전통요리사들과 제빵사들이 제공하는 최고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레스토랑: 와인 등 각종 드링크, 스테이크 요리, 테라스 있음
여우굴 식당 술짐
에스토니아 수프 중에서 "에스토니아 다이아몬드수프(Estonian Diamond – Tomato and Smoked Cheese Soup)가 최고 맛이다. 어제 저녁에 좀 과하게 마신 와인 숙취를 해소 하는데 최고다.
탈린은 항구 도시라 각종 생선요리도 다양하다.
거리에서 아몬드 파는 탈린 아가씨
18세기부터 1940년대까지 에스토니아 예술 갤러리
에발드 오카스(Evald Okas, 1915 – 2011) 에스토니아 화가는 누드화로 유명하다:
아담슨-에릭(Adamson-Eric, 1902-1968, Tallinn, Estonia. )는 에스토니아의 예술가로 주로 응용 예술의 회화 매체에서 일했다.
광장에서는 각종 천연 염색 천을 팔고 있다. 여러 수제 직물들은 여행객들의 눈길늘 끈다.
탈린 시 거리는 늘 축제같이 사람들이 북적인다. 각종 특산물을 판다.
탈린 거리에서
골목과 거리에 위치한 작은 연주회 장이나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에스토니아인드르이 혼을 느낄 수있다. 탈린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약국도 볼 수 있다.
탈린 시청 광장(Town Hall Square)에 있는 시청약국(Town Hall Pharmacy)은 1422년에 문을 열었고 지금도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실제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약국이라고 한다.
Town Hall Pharmacy opened in 1422. This curious little shop on Town Hall Square is, in fact, the oldest continuously running pharmacy in Europe
빵만 파는 게 아니닙니다(Mitte Ainult Leivast`( Not by Bread Alone restaurant) 라는 레스토랑은 중세 곡물 창고 건물에 있으며 1246년부터 이 장소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도미니카 수도원의 일부였다.
탈린 광장이나 거리에 나가면 각종 민속의상을 입은 에스토니아인들을 만날 수 있다.
광장의 이모 저모
민속장신구를 목에 주렁주렁 단 젊은이들
에스토니아 문학은 1520년에 루터교 교리문답교본으로 시작된 종교문학이 18세기까지 지배적이었다. 19세기 크로이쯔발트(Friedrich Reinhold Kreutzwald)가 <칼레프의 아들>(Kaleviopeg 1857~61)이란 서사시를 발표했다. 이는 에스토니아 전설에 기반을 둔 1만9천 23行의 북구식 에스토인아 민족 서사시(Runicverse)다.
칼레프의 아들은 납치된 어머니를 찾아 핀란드로 떠난다. 여행 중에 그는 칼을 구입하지만 논쟁에서 대장장이의 장남을 죽인다. 대장장이는 검에 저주를 걸고 강물에 던진다. 에스토니아로 돌아온 칼레프의 아들은 돌 던지기 대회에서 형제들을 꺾고 왕이 된다. 그는 에스토니아에 도시와 요새를 건설하고 땅을 경작한다. 그런 다음 칼레프의 아들은 지식을 넓히기 위해 땅 끝까지 여행한다. 그는 힘의 시련에서 사탄을 물리치고 지옥에서 세 소녀를 구출한다. 전쟁이 발발하고 에스토니아는 파괴를 당면한다. 칼레프의 아들의 충실한 동료들은 살해당하고, 그 후 그는 왕위를 그의 형제 올레프(Olev)에게 양도하고 우울한 상태로 숲으로 물러난다. 강을 건너 대장장이에게 저주를 받아 강에 던져진 검이 공격해 다리를 자른다. 칼레프의 아들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타라(Taara)는 다른 신들과 상의하여 칼레프의 아들을 되살려 다리가 없는 몸을 흰 말에 태우고 지옥의 문으로 보내어 그의 주먹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에 가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칼레프의 아들은 지옥의 문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다.
탈린 탐사레 문학박물관앞에서
탈린의 거리 가게를 하는 판매원들은 주로 러시아 대학생들이다. 탈린 여행하면서 러시아로 이야기니 기분좋다.
привет? да Здравствуйте Как вас зовут? Это Екатерина. рад встрече Я тоже.
Откуда ты?
Таллинн — мой родной город.
Что ты здесь делаешь? Я студент колледжа.
Вы сейчас работаете неполный рабочий день? Вы зарабатываете много денег? немного,
Что тебе нравится больше всего? Поплавать с друзьями на пляже или выпить в баре вечером.
안녕하세요? 예, 안녕. 이름이 뭐예요? 예카테리나예요. 만나 반가워요. 저두요.
어디서 왔어요?
탈린이 고향이예요.
여기서 뭐 하세요? 대학생이에요.
지금 하는 일은 아르바이트에요? 돈 많이 벌어요? 조금요,
가장 좋아하는 게 뭐에요. 친구와 해변에서 수영하거나 저녁에 바에서 한잔 마시는 거에요.
금세기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작가는 ‘진리와 정의’(Tode ja Oigus 1926~33)를 쓴 탐사레(H. H. Tammsaare)이다. 이 시대에 와서야 에스토니아 문학은 서구 수준에 도달한다.
에스토니아 대표 작가 안톤 한센 탐사레(에스토니아어: Anton Hansen Tammsaare, 1878년 1월 30일 ~ 1940년 3월 1일)는 에스토니아의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는 <진리와 권리>(Tõde ja õigus, 1926–1933)가 있다.
그러나 40년 소련에 합병된 이후 출중한 작가들은 다른 소련 공화국의 작가들처럼 시베리아로 추방되거나 외국(주로 스웨덴)으로 이주해 망명문학을 이룩했다. 90년이래 해외로 망명한 작가들이 귀국하고 신세대들이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고 있어 에스토니아 문학은 다른 예술분야처럼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으나 젊은 독자층이 외국의 공상과학 소설이나 탐정소설을 선호하는 것이 오늘날의 경향이라고 동행한 에스토니아 TV방송국 시나리오 작가 바란다씨는 말한다.
볼로데마르 판소(Voldemar Panso)는 에스토니아 무대 감독, 배우 및 연극 교사였다. 1941 년 그는 탈린 음악원 주립 단계 예술 학교와 1955 년 모스크바 주립 극장 예술 연구소를 졸업했다. 1941-1950 년 그는 에스토니아 드라마 극장 배우였다.
록뮤직의 유행: 록 섬머92‘(Rock Summer)페스티벌
특히 젊은 세대는 에스토니아의 역사적 페스티벌인 노래 페스티벌(1869년 시작. 1990년 3만명 출연, 관객 20만명 참석)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매년 ‘Eesto 연도2014'란 이름으로 연극 등 각종 예술분야가 참석하는 대축제를 7월 중순부터 1주일간 진행했다. 1988년도 부터 시작한 록 섬머는 특히 "록 섬머 연도 1992"(Rock Summer)는 발트 3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록그룹이 참여했다. 관객 12만여명이 참석했다.
https://youtu.be/cQIQwVBeQQo
"I’m not quite sure how the Tallinn festival came about. I thought "Oh, it’s just another festival in a strange exotic place". But what a momentous sort of show it would be in EMF’s history". - James Atkin The incredible story of a legendary EMF's show at the Tallinn's "Rock Summer 1992" music festival. Featuring James Atkin, Juri Makarov, Clint Boon and Roman Ryabtsev.
"탈린 축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 이상한 이국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또 다른 축제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EMF의 역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쇼가 될 것인지요." - 제임스 앳킨James Atkin
탈린의 "Rock Summer 1992" 뮤직 페스티벌에서 열린 전설적인 EMF 쇼의 놀라운 이야기. ,Juri Makarov, Clint Boon 및 Roman Ryabtsev가 출연했다.
Аутентичный формат видео режиссёр Сергей Антипов звукорежиссёр Андрей Пастернак оператор-постановщик Ефим Рацимор: 정통 비디오 형식, 감독 세르게이 안티포프, 사운드 엔지니어 안드레이 파스테르나크, 촬영 감독 에핌 라치모르

영국 록 가스 보니 타일러(Bonnie Tyler, 1951년 6월 8일 ~)도 참석했다. 보니 타일러는 영국 웨일스 출신의 가수로, 가끔 곡을 쓰기도 한다. 금발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특징이다. 1979년과 2012년 공연차 대한민국을 방문한 바 있다. 대표곡으로 〈It's a Heartache〉, 〈Total Eclipse of the Heart〉, 〈Holding Out for a Hero〉 등이 있다,
〈It's a Heartache〉
가사가슴 아픈 일이야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너무 늦을 때 당신을 때립니다.
Hits you when it's too late
당신이 우울할 때 당신을 때립니다
Hits you when you're down
바보의 게임이야
It's a fool's game
바보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Nothing but a fool's game
차가운 빗속에 서서
Standing in the cold rain
광대 같은 느낌
Feeling like a clown
It's a fool's game
바보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Nothing but a fool's game
차가운 빗속에 서서
Standing in the cold rain
광대 같은 느낌
Feeling like a clown
가슴 아픈 일이야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팔이 부러질 때까지 그를 사랑해
Love him 'til your arms break
그럼 그는 당신을 실망
Then he let's you down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팔이 부러질 때까지 그를 사랑해
Love him 'til your arms break
그럼 그는 당신을 실망
Then he let's you down
사랑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It ain't right with love to share
그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When you find he doesn't care for you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It ain't wise to need someone
너에게 의지한 만큼
As much as I depended on you
It ain't right with love to share
그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When you find he doesn't care for you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It ain't wise to need someone
너에게 의지한 만큼
As much as I depended on you
아 가슴아프다
Oh,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너무 늦을 때 당신을 때립니다.
Hits you when it's too late
당신이 우울할 때 당신을 때립니다
Hits you when you're down
Oh,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너무 늦을 때 당신을 때립니다.
Hits you when it's too late
당신이 우울할 때 당신을 때립니다
Hits you when you're down
바보의 게임이야
It's a fool's game
바보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Nothing but a fool's game
차가운 빗속에 서서
Standing in the cold rain
광대 같은 느낌
Feeling like a clown
It's a fool's game
바보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Nothing but a fool's game
차가운 빗속에 서서
Standing in the cold rain
광대 같은 느낌
Feeling like a clown
사랑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It ain't right with love to share
그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When you find he doesn't care for you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It ain't wise to need someone
너에게 의지한 만큼
As much as I depended on you
It ain't right with love to share
그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When you find he doesn't care for you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It ain't wise to need someone
너에게 의지한 만큼
As much as I depended on you
아 가슴아프다
Oh,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당신은 팔이 부러질 때까지 그를 사랑합니다
You love him 'til your arms break
그럼 그는 당신을 실망
Then he let's you down
Oh, it's a heartache
가슴 아픈 것 외에는 아무것도
Nothing but a heartache
당신은 팔이 부러질 때까지 그를 사랑합니다
You love him 'til your arms break
그럼 그는 당신을 실망
Then he let's you down
바보의 게임이야
It's a fool's game
차가운 빗속에 서서
Standing in the cold rain
광대 같은 느낌
Feelin' like a clown
가슴 아픈 일이야
It's a heartache
팔이 부러질 때까지 그를 사랑해
Love him 'til your arms break
그럼 그는 당신을 실망
Then he let's you down
바보의 게임이야
It's a fool's game
1992년도 탈린의 록 페스티벌은 1980년대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할 때 마이클 잭슨에 열광하던 미국 음악팬들을 상기시킨다. 소련의 지배를 받을 때부터 시작한 이 음악축제는 자유화 이후 전세계 음악인들의 관심을 샀고 많은 악사들과 관중들이 매년 여름에 즐기는 축제다.
탈린의 <키스직전의 순간>(Moment Before the Kiss" sculpture by Tauno Kangro. Kissing Hill (Musumägi), Viru Gate Park, Tallinn, Estonia,
탈린의 <키스 직후의 동상>:(Moment after the Kiss sculpture by Tauno Kangro Kissing Hill (Musumaegi), Viru Gate Park, Tallinn, Estoni)
에스토니아 키스 조각과 키스의 생활화 이야기는 다음 키스와 학문이 도시 타르투 여행 이야기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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