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피렌체 (플로렌스) 르네상스 문화 맛보기 여행 Florence renaissance culture tour

Kyuchin Kim 2022. 5. 28. 23:56

피렌체(Firenze, 영어: Florence 플로렌스)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약 38만 명이다. 근교의 인구까지 합치면 약 150만 명이다. 피렌체는 아르노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역사상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지가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피렌체는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유럽과 전 세계의 도시들 중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핵심 도시 중 하나이다. 오랜 세월동안 메디치 가문이 다스렸고, 1865년에서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매년 수백만이 넘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플로렌스 미켈란젤로 언덕 광장에서

2005년 11월 아르노 계곡에서 본 아펜니노 산맥을 배경으로 한 도시의 모습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 광장에서

 

체코 여행단에 합류하여 프라하에서 4시에 출발하여 피렌체(Florence:플로렌스)에 이튿날 아침에 도착했다. 어디 호텔에서 쉬고 관광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아침을 간단히 먹고 바로 플로렌스 관광을 시작한다. 밤새도록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고 와서 피로가 몰려온다. 대부분 내보다 젊은 체코 관광객들은 덜 피로해 보인다.

 

          우피치 미술관 uffizi gallery

 

피렌체는 르네상스문화 예술이 시작된 곳으로 꿈에 그리던 도시다. 죽기 전에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하나만 봐도 소원을 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렌체는 유럽문명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여행객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도시이다.

 

체코가이드가 도시에 대해 대략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한다.

 

피렌체는 건축문화의 꽃이라고 하는 르네상스 양식의 장엄한 예배당들과 성당들, 요새화된 대 귀족들의 궁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르네상스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 박물관 주위에는 단아한 정원들이 있다. 아펜니노 산맥 기슭에 위치한 피렌체 한가운데에 아르노 강이 흘러간다. 마치 프라하의 블타바 강처럼 또 서울의 한강처럼. 강 위에 있는 우아한 석조 다리 폰테 베키오에서 이 도시의 양쪽을 바라보면 환상적이다 프라하 카렐다리에서처럼.

 

피렌체에 있는 여러 광장에는 빼어난 이탈리아 조각가, 건축가와 예술가가 만든 장엄한 대리석 르네상스 조각을 볼 수 있다. 뒷골목을 돌아다니면 단테의 생가와 유적을 볼 수있고 미켈란젤로 광장 언덕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피렌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누구나 피렌체에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두오모 광장이다. 여기에는 피렌체에서 가장 중요한 광장으로, 중심에 자리한 장엄한 피렌체의 대표적 건물은 그 유명한 꽃의 성모 성당이다. 둥근 쿠폴라 지붕을 한 화려한 두오모 성당(Piazza del Duomo)이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사진기를 들고 북적이는 이 광장은 중세와 르네상스 건물과 현대 것이 잘 어울려져 있어 기분 좋은 분위기를 창출한다. 아치모양의 화려하고 빛나는 건물에 자리한 우아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앉아서 백포도주를 즐기거나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에 달콤한 피렌체 쿠키나 초콜릿을 즐기며 여유를 가져야 여행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쇼핑을 좋아하면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 깔끔하고 모던한 가게들을 방문해보자. 대성당의 고딕 양식 정면에는 화려한 색채의 대리석과 부조로 뒤덮인 3개의 거대한 청동 문과 아치형 채광창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르네상스 건축 예술의 꽃을 감상할 수있다. 이탈리아 장인들의 솜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반드시 내어 성당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교회 전체에 모자이크가 잘 전시되어 있다.

 

두오모 바로 옆에 있는 조토의 종탑은 피렌체에서 가장 높고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탑 건축의 백미이다. 주위의 성당들과 함께 이 조토의 탑은 피렌체 고딕 양식의 건축물 중 가장 빼어난 건물이다. 빛나는 흰색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 한다. 중앙 부분 아래의 벽 4개는 수많은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정말 이탈리아 장인들의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두오모 광장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약 84m 높이에 올라가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 적 여유를 가지기 바란다. 긴줄을 서는 것을 각오하자. 줄 서 있는 동안 도시나 건물의 역사를 읽어보면 더욱 효율적이다. 400여 개의 계단을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스태미너도 있어야한다. 물론 3군데 중간에 쉬어서 가는 공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거기서 바라보는 광경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https://www.visitflorence.com/florence-museums/itinerary-through-the-uffizi.html

 

Uffizi Gallery Tour with Guide: Visit the Masterpieces of the Uffizi Museum with a Guide

What to see at the Uffizi? A tour guide can help you find the Masterpieces of the Renaissance If you're planning to visit the most visited museum in all of Italy while in Florence, our first recommendation is to always book a ticket ahead of time to avoid

www.visitflorence.com

그다음 우피치 미술관으로 직행하자. 미술관을 시간적 여유를 갖고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한다. 볼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2세기 로마시대의 조각으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모델로 했다는 <잠자는 아리안네> (Sleeping Arianne in the center of the room, a Roman sculpture dating back to the second century A.C.) : 우피치 미술관 미켈란젤로 전시실

Sleeping Arianne : More recent studies of this statue of the Florence Ariadne, known for many years as Cleopatra, agree that this marble work come from the Del Bufalo collection and that after a short time in the collection of Cardinal Ippolito d’Este in 1572, it joined the group of ancient sculptures that Ferdinando de’ Medici was putting together in his Villa del Pincio (Sthäli 2001, p. 383, note 11; Cecchi-Gasparri 2009, p. 296).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 – 1564)의 <성 가족: 아기 예수와 마리아와 요세프>(Doni Tondo 또는 Doni Madonna, 1504년–1506년)

성 가정: 아기 예수와 마리아와 요세프(Holy Family (the child Jesus, Mary, and Joseph)를 전면에 그리고 있고 중간면에는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 그리고 뒤쪽에는 5명의 남자누드를 그리고 있다. 

물론 이그림에서 중심인물은 전면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다. 그림의 제목이 "Doni Tondo"인데, "똔도(tondo)"란  이태리어로 둥근 원을 뜻하는데 여기에 의뢰자의 성 "도니(Doni)"가 붙어 성가족은 이태리에서 "도니 똔도"로 불린다.

성가족이 위치한 전면에는 그리스도교의 세계를, 5명의 벌거벗은 남성누드들이 있는 뒤쪽은 이교도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 두  세계의 매개체로  세례를 주는 세례요한이 그 중앙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이교도인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교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귀족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귀족 가문인 메디치 가문의 고향이기도 하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정치적 문화적 마스터 마인드로 뽑힌다. 메디치 가문은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해내기도 했는데, 이들은 16세기 초의 교황 레오 10세와 교황 클레멘스 7세이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혼인하였으며, 1559년에 그가 사망한 후, 프랑스의 섭정으로서 군림했다. 메디치 가문은 1569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를 시작으로 토스카나 대공으로 군림했으며, 1737년 잔 가스토네 데 메디치의 사망으로 막을 내렸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 ~ 1510)

동방박사의 경배 (1475) 중 보티첼리의 자화상으로 추정

 

가장 화려한 그림은 보티첼리(1444/5~1510) 의 옷을 벗은 비너스를 그린 <비너스의 탄생>과 옷을 입은 비너스를 그린 <봄>이다.

 

<봄>(프리마베라(Primavera, 1480-1482)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적인 그림 가운데 하나이며 우피치 미술관의 상징적인 그림이다그림 중앙에는 비너스와 에로스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제피로스와 클로리스가 그려져 있다. 왼쪽에는 케뤼케이온을 든 메르쿠리우스가 그려져 있고 그 사이로 플로라와 카리테스가 그려져 있다.

                            비너스와 에로스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 1485년)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적 수법에서 벗어나, 상징과 장식을 강조하여 시적 세계를 이룩한 그의 대표작이다. 로마 신화에서 사랑과 더러움을 관장하는 여신인 비너스가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바다에서 탄생하면서 해안에 상륙하는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육체의 생생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아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은 당시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르네상스 초기의 선배 화가들은 누드를 죄악과 수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행복감과 자신감에 찬 표정을 띄우면서 유연한 모습을 드러낸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주의 공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의 비너스의 목은 비현실적으로 길고, 왼쪽 어깨의 기울기는 해부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각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의 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인 인간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화면 왼쪽 위에는 봄바람의 여신 아우라에게 단단히 끌어안긴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날개를 달고 날아오고 있다. 그 두 사람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해변으로 불어 보내려고 입으로 힘차게 불고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고대 전설에 의하면 장미꽃은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생겨났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조개껍데기와 화면에 떠다니는 장미꽃이다. 비너스의 탄생을 알려주기 위해 고대 전설을 인용했다.

 

  그림의 오른 쪽 해변에서 비너스를 맞으며 그녀를 위해 가운을 펼쳐들고 있는것은 계절을 관장하는 여신 인 호라 중의 한 명이다.  호라의 옷을 장식하고 있는 꽃은 그녀가 봄의 여신임을 알려주고 있다.  

<비너스의 탄생>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적인 그림 가운데 하나로,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Uffizi)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로마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비너스가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바다에서 탄생하면서 해안에 상륙하는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1483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의 카스텔로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 그림이 줄리아노 데 메디치 (1478년 파치 가의 음모로 암살됨.)의 연인이자 미인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보티첼리에게 영감을 주는 데에 영향을 준 작품이다.

고전적인 여신 비너스는 물 위에 떠 있는 조개껍대기에서 나온 채로 정신적인 사랑의 상징인 제피로스(서풍)가 부는 바람을 타고 해안에 상륙하고 있으며, 계절의 여신인 호라의 한 명이 꽃에 덮인 가운을 비너스에게 건네주고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엄격한 고전적 사실주의와 차이를 두고 있다. 비너스의 목은 비현실적으로 길고, 왼쪽 어깨의 기울기는 해부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각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의 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https://youtu.be/UU4Ut-afTv4

로마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이탈리아어로 베누스)는 서양의 그림이나 조각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비너스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여성의 미와 사랑을 상징하고 거치 바다 항해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이다.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의 딸이라는 전설도 있고, 아들에 의해서 잘라서 바다에 던져진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나온 정액이 바다에서 거품(그리스어로 아프로)과 합해져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태어나 조가비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키프로스 섬에서 여신 아프로디테로 태어났다. 이 아프로디테의 로마 신 비너스가 화가, 조각가들의 창작의 주제가 되었다. 여기 우피치 미술관에 걸려 있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가장 유묭하다. 그외 로마 박물관에 있는 석조상 <루드비시 옥좌의 비너스>도 잘 알려진 걸작이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90 - 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The Venus of Urbino (also known as Reclining Venus, 1538)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커튼으로 반쯤 가려진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 유혹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티치아노(1487년경~1576)<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에로틱한 분위기의 비너스를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 전성기의 작품으로서 곤차가 가문의 귀도발도 델라 로베레와 줄리아 다 바라노의 신혼방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 속의 비너스는 침대에 누워 화려한 보석 팔찌를 두르고 장미꽃 다발을 손에 쥐고 있다. 창문 난간에 있는 둥근 은매화 나무는 비너스가 들고 있는 장미꽃과 더불어 결혼의 영원한 애정과 헌신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의 발밑에 개를 그려 넣은 것은 부부가 결혼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서로에게 정절을 지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또 창가에는 두 사람의 하녀가 결혼식 옷궤에서 옷을 꺼내고 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사랑의 여러 가지 측면과 순결과 관능을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이야기]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의 탄생 - 레이디경향 > 문화 (khan.co.kr) 참조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모델은 이탈리아의 공작 우르비노의 부인이다.  당시 사회 도덕작 분위기 때문에 부인의 나체를 신화의 인물 비너스로 가장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드레스덴 미술관에서 본 동시대의 조르지오네(Giorgione,147778 - 1510)의 <드레스덴 비너스>Dresden Venus (151011)를 생각나게 한다.

 

<드레스덴 비너스>(Dresden Venus)라고도 알려진 <잠자는 비너스>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인 조르지오네 (Giorgione)가 그린 그림이다.

 

 

 

 

플로렌스 미켈란젤로 언덕 광장에서

피렌체궁 종탑 성마리아성당

 

플로렌스 베키오 궁전: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가장 장엄한 궁전이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바로 보이며, 13세기에 지어졌다. 이 궁전은 본래 피렌체 공화정의 중심지였다.

1299, 피렌체의 시민들은 피렌체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한 궁전을 짓기로 결정한다. 베키오 궁전의 건축은 피렌체 대성당과 산타 크로체 성당을 지은 건축가 아르놀포 캄비오에게 맡겨졌다.

이 웅장한 건물 위에는 거대한 시계탑이 94m의 높이를 자랑하며 올라가있다. 기록에 의하면 아르놀포 캄비오가 고대의 탑을 원형으로 하여 이 탑을 설계하였다.

 

중세의 성들 처럼 로마네스크의 건물 양식의 베키오 궁전은 당시 요새역할을 해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베키오 궁전은 한동안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있었으나, 1865~71년에 피렌체가 통일 이탈리아 정부의 임시 수도가 되고, 정부 기관들이 이 곳에 입주하며 다시 한번 권력의 중심지가 되게 된다. 비록 현재 베키오 궁전의 대부분의 방들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의회와 피렌체 시장 관저가 이 곳에 위치함에 따라 피렌체의 행정적 중심지 격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베키오 궁전의 정문에는 다양한 대리석 조각상들이 서있다.

 

     베키오 궁전 앞에 있는 다비드 상

 

정문 바로 위에는 2마리의 사자가 보좌하고 있는 예수의 상징이 새겨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이탈리아어로 '왕들의 왕, 군주들의 군주'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 상도 바로 이곳에 1504년부터 1873년까지 서있었다. 다만 1873년에 조각상을 보호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서있는 상은 복제품이다.

 

베키오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500인의 방"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16세기에 조르조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그림이다500인의 방에는 피렌체 군대가 피사와 시에나 군대를 상대로 우승하는 장면들이 거대한 프레스코화로 그려져있다천장에는 조르조 바사리가 직접 그린 39개의 그림들이 붙어 있으며, 코시모 1세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동시에 피렌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에는 코시모 1세가 빛과 영광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마치 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방 북쪽에는 연단이 있는데, 이 곳에서 코시모 1세가 외국 대사들과 시민들을 접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연단 위에는 외국 대사들이 교황을 알현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베키오 궁전에 있는 조르조 바사리의 그림 마르시아노 전투

 

 

     

 
 
 

플로렌스피렌체의 조토의 종탑은  조토가 설계하였다. 1334년 제작을 시작하여 조토가 죽은 후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와 탈렌티가 1359년에 완성했다. 페렌체의 렌드마크이다. 

피렌체의 공화국광장에서 베아트리체와 함께 

 

미켈란제로의 다비드 동상(복사본)

다비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01년과 1504년 사이에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높이는 5.17m이다

 

미켈란젤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위엄 있게 표현해냈다. 현재 피렌체의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 피렌체에서 시청의 부탁으로 다비드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갈고리 형으로 굽은 오른편 손목은 츠크네를 모방하였고, 세부의 해부학적 표현과 고정된 눈에도 전 시대의 잔재를 엿볼 수 있다(석재가 높이에 비하여 얇은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의 면모는 표정이 넘쳐 있고 그 거대한 크기와 더불어 전형적인 남성의 나체상이 되어 있다. 체구를 상반되는 두 방향축에 중심을 두면서 두 어깨의 위치에 높고 낮음을 만들고, 목줄기 근육을 과장하여 조상(彫像)에 긴박감을 부연하였다. 이 작품이 풍기는 긴장감과 불안정성은 헬레니즘 조각의 다방향성(多方向性)을 한층 강조한 것이다.

필자는 이 <다비드> 조각상을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도 본적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wiki/다비드_(미켈란젤로) 참조

 

 

미켈란젤로 디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 ~ 1564)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이다. 르네상스시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수많은 걸작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로 손꼽힌다.

 
 

 

산 조반니 세례성당(Battistero di San Giovanni)8각형 건물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양식이다. 또한 대리석도 흰색과 녹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출입문은 3개가 있는데 그 중 동쪽문은 미켈란젤로에 의해서 "천국의 문"(Gates of Paradise)이라고 불린 이후 통상 그렇게 부르고 있다. 황금색을 칠한 르네상스 청동조각의 대표작이다. 여기서 유명한 작가이며 정치가였던 단테가 세례를 받았다내부 장식은 조토가 맡았다.

 

Baptistery교회천정화플로렌스                  산 조반니 셰례성당 단테세례당 천정화플로렌스 

 

        동쪽문은 미켈란젤로에 의해서 "천국의 문"(Gates of Paradise)이라 불려졌다.

       <야고보와 에사우 이야기>(The Story of Jacob and Esau), original panel from the East Doors of the Baptistery - Lorenzo Ghiberti(1378 - 1455)

 
 

 피렌체 뒷골목 걷기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가 그린 <단테 초상>(Portrait of Dante Alighieri, 1495)

 

미첼리노(Domenico di Michelino)의 <단테의 초상화> (1465) : 피렌체 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Florence Cathedral Santa Maria del Fiore)에 있는 이 초상화는 그의 작품 <신곡> 중 가장 유명한 그의지적 상상인  지옥inferno (hell)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서 있는 시인의 뒤에 브루넬레스치(Brunelleschi)의 돔, 베키오 궁전, 조토의 종탑과 피렌체가 보인다. 단테는 자기의 작품 <신곡>을 들고 있다. 

The most famous image of Dante is probably the one painted by Domenico di Michelino in 1465. This painting is located in Florence Cathedral Santa Maria del Fiore, and depicts the poet in front of his most famous intellectual creature: the inferno (hell) with its circles.

Behind the poet you can see the Dome by Brunelleschi and the city of Florence. Dante holds a volume of The Divine Comedy.

 

단테의 생가:

단테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단테가 9살 때부터 사모하던 베아트리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필하기 시작한 새로운 삶(Vita nuova)에서 언급한 내용을 기반으로 1265년 출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정확하게 1300년이 되던 해 단테는 인생의 중간 전환점인 서른다섯 살에 상상의 지적 여행을 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를 역으로 계산하면 1265년이 나오기에 이 해를 단테가 태어난 해로 추정할 뿐이다.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의 <베아트리체 초상>(Beatrice Portinari) 

 

 

1274년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가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포르티나리 가문의 축제에서 소녀 베아트리체(Beatrice, 1226~1290)를 한번 만났다. 그는 그녀의 이름도 모르고 이야기도 나누어보지 못했지만 그 후 그녀를 잊을 수 없었고 그 만남은 그에게 창작을 혼을 불살랐다.  단테는 그의 시집 <새로운 인생>(La Vita Nuova, 1293)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 베아트리체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 순간 아무도 볼 수 없는 마음의 방에 살고 있던 생명의 정신은 너무도 격렬하게 요동쳤으며 작은 맥박소리에도 놀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라, 신이 오시어 나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도했도다……

 

그리고 9년의 세월이 지난 후 청년이 된 단테는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았다. 베아트리체는 베키오다리(Ponte Vecchio) 쪽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나가고 있었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성숙한 베아트리체였다. 이 우연한 만남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그의 위대한 작품 <신곡>에 그녀를 영원히 형상화시켰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누군지 모른 체 베아트리체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 한다.

 

 

 

 

단테(Dante Alighieri)와 베아트리체(Beatrice)의 산타 트리니타다리(Ponte Santa Trinita)에서의 두번째 만남, Henry Holiday – Dante and Beatrice, Image – Henry Holiday (1839 – 1927)

 

 

 

 

 

 

<신곡>(La Divina Commedia(The Divine Comedy)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신곡>(La Divina Commedia(The Divine Comedy):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변혁기에 나타난 최고의 작품이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상세하고도 균형 있게 써진 최고의 걸작으로 회자된다. 이알리아가 <신곡>이 있다면,  고대 그리스에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영국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스페인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프랑스는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독일은 괴테의 <파우스트>,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체코는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각각 그 나라의 문학을 대표한다 하겠다.

<신곡>: 지옥(Inferno 인페르노), 연옥(Purgatorio 푸르가토리오), 천국(Paradiso 파라디소)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곡>은 작가의 나이가 35세가 되는 130048일부터 15(부활 주일 목요일부터 부활 다음 주 목요일까지)까지 작가의 상상 속에서 죽음의 세계를 탐방하는 여행기 형식을 뜬 소설이다. 

 

<신곡(神曲)>의 문학적·사회적 의의

 

중세 시대의 문학과 예술 등을 개괄하고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이룩한 대서사시의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르네상스적인 기운을 포함한 위대한 작품이다. 깊은 숲에서 헤매던 단테가 로마의 대시이며 문학적인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地獄)과 연옥(煉獄)을 방문하면서 온갖 인간 군상들의 죄악과 형벌을 목격한다. 그러고 나서 단테가 어릴 때부터 사모하던 천국에 간 '구원의 여인'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의 모습을 경험하는 것을 중심 플롯으로 한다. <신곡(神曲)>은 단테의 다양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자서전적인 이야기와 당대의 정치, 사회상황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기독교가 인생의 길잡이였던 중세시대의 인생과과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신곡>의 구성은 병렬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세부에서는 사실적이다. 언어는 유머러스한 문체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어조로 현실의 문제를 형상화했다. 단테의 신곡의 창작 동기 인간이 이 세상에서의 목적과 저 세상에서의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데, 그 목적은 신에 의하여 정해진다는 중세의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현세에서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이고 지적인 미덕이 명령하는 대로 살아가야 하며,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단테는 생각하였다

중세 당시 라틴어가 주로 사용되었던 때에 단테는 토속어인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쓴 것도 획기적 사실이었으며, 이는 당대의 다른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유럽에 민족주의 물결이 일어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런 언어학적 의의 또한 의미 있는 것이다. 한편, 조국으로부터 추방당해서 20년이나 유랑한 단테가 정치 이상과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어로부터 분리, 민족문학이 완성되며 단테는 이탈리아 민족 문학의 시조가 되었다. 괴테도 이 시를 가리켜 "인간의 손으로 된 최고의 것"이라고 칭송했다.

그의 문학이 모든 중세사상을 총체적으로 정리 새로운 세계로 비약시켰기 때문에 이어서 오는 르네상스시대 문예부흥의 선구자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인곡"이라 한 것은 단테의 <신곡>에 대한 대칭 개념이다.

 

      지옥은 뒤집힌 원뿔형으로 지구의 중심에까지 뻗쳐 있다. 지옥은 아홉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죄를 지은 영혼들이 죄질에 따라 나뉘어 벌을 받고 있다. 죄의 유형은 크게 태만, 애욕, 탐식, 인색, 낭비, 분노, 교만, 이교도, 폭력, 기만으로 나뉜다.

 

 

단테의 <신곡>의 "연옥"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대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다시 햇살을 받으며 연옥의 불을 저장한 산에 이른다. 연옥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속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통찰함으로써 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이다.연옥은 정죄와 희망의 왕국으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수양을 하는 곳이다. 천사들은 이곳에서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P자를 새겨주는데, 이는 연옥에서 자기가 참회해야 할 죄, 곧 오만·질투·분노·태만·탐욕·폭식·애욕의 일곱 가지로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하나씩 씻어진다.

 

천국으로 올라가면서 단테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한편, 연옥의 정상에서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여 여행 중에 본 것을 잘 기록하여 세상에 전하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역설이다. 하느님에게 이르면서 인간의 기억을 유지하라는 일종의 거역을 당부받는 것이다. 기억은 그의 유일한 길이자 도구이며 존재 방식이다. 기억을 통해야만 하느님의 세계의 순례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례에서 자신이 겪은 온갖 두려움과 위안, 욕망, 믿음, 기쁨을 그는 기억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고의 하늘에 자리한 하느님의 온전한 빛을 그의 눈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 스스로, 의도적으로 그런 역설의 한가운데에 섰던 것이다.

 

<신곡>에 나타난 기독교적 교훈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는 것은 중세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도 있고, 기독적인 천당과 지옥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단테는 반대파에 의해 정치적 추방을 당함으로써 신곡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단테는 끝내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조국 피렌체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 라벤나에서 쓸쓸히 죽는다. 그가 죽은 후 피렌체는 위대한 시인을 추방했던 사실을 뉘우치며 그의 작품을 널리 보급 시킨다.

신곡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단테가 인지하는 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리스 신화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도도히 흐르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곡의 내용이 주지하다시피 계몽적 서사시다. 그런 계몽적인 글을 쓸 때 비유로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나 아는 인물이어야 쉽게 설명이 된다. 1 지옥은 예수님이 오기 전 무신론자, 이교도들을 벌 하는 곳인데, 여기에 호메로스, 헥토르,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인물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단테는 신곡을 통해 사람들에게 올바른 도덕적 가치와 종교관을 제시하고자 했고,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를 활용해 계몽성을 극대화 하고자 했던 것이다.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절대 회개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모두가 분노에 차 있고, 자신의 죄를 변명하며, 다른 사람의 탓을 하고 있다.

신곡은 단테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단테만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세인 들의 관념이다. 지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많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단테의 신곡은 중세인 들의 삶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시나고그 유대교회

이제 유럽 르네상사의 발상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유럽 최고의 르네상스 화회를 보았다. 더 자세한 것은 각종 여행 책자나 인터넷을 참고 하기 바란다. 위에 기술한 것은 필자가 체코 여행단과  24시간 동안 보고 느낀 것을 책자를 참조하여 기록하였다. <신곡>을 비롯하여,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스페인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독일은 괴테의 <파우스트>,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체코는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위의 작품들은 한국 외대에서 30여년 간 "서양명작의 이해와 감상"을 가르치면서 몇번 읽어 본 작품이다.  

다음에는 로마로 가보자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