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김규진교수 매혹의 영국여행 11, 맨체스터 대학, 맨유 축구장 과학 산업 박물관 탐방

Kyuchin Kim 2022. 1. 17. 23:59

https://youtu.be/iUf-QufzT78

Manchester 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 - last train to Ordsall Lane

20180907 . 맨체스터 대학, 맨유 축구장 과학 산업 박물관 탐방

 

피카딜리역 근처에 있는 우리의 숙소 staycity apt. hotel에서 아침 뷔페를 즐기다. 영국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뷔페는 세계 어디 가나 비슷하여 먹을 만하다. 영국식 토마토 반숙과 검은 소시지도 있다. 좀 많이 가져와서 다 못 먹고 남은 음식을 가져가고 싶다고 하니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 케냐에서 온 흑인 아주머니 친절하기 그지없다.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Manchester Metropolitan University): 디자인 학과로 유명하다. 

 

  어디 가나 대학생들은 생기가 가득 넘친다.

 

식사 후 지호가 유학을 시작하는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Manchester Metropolitan University)을 방문하고 유학생 은행구좌 개설을 문의하다. 영국에서는 유학생의 기숙사 주소가 정해져야 은행 구좌를 틀 수 있다고 한다. 기숙사를 방문하여 여러 가지 물어보다. 어제 편지로 방을 미리 보고 정할 수 있느냐니까. 안 된다고 답장이 왔었다. 오늘 부모가 걱정이 돼서 함께 왔으니 방을 보여 달라고 해도, 다음 주 학생들 입주 준비로 바빠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비행기에서 만났던 어학연수 차 온 고등학교 교사가 이 기숙사에 방값을 지불하고 방을 볼 때서야 함께 보여준다. 아주 친절한 직원이다. 최회장님이 언제 한국 오면 평창의 고려궁 호텔에 초청하고 싶다고 하니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30여 층 되는 고층 기숙사 25층에 방을 구경하다. 전경이 너무 좋다. 나도 40여 년 전 인디아나 대학 여름학교 기숙사 방이 고층이었었는데. 다들 만족하게 구경하다. 내일 토요일 기숙사에 입주하기로 하다.

 

맨체스터대학교(The University of Manchester)를 둘러보다.

 

맨체스터 대학은 몇 년 전에 본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이어 영국 최고의 연구 기관 대학이다. 건물도 네오 고딕양식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내가 다닌 시카고대학보다 더 고풍스럽다.

맨체스터 대학교는 1824년 영국 왕 조지 4세가 수여한 왕립헌장에 따라 조지 4세와 왕립학회의 존 달튼 경에 의하여 산업혁명의 발상지 맨체스터에 설립되었다.

  내가 1980-1989년까지 다녔던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1890년 창립): 네오고딕 양식

 

                    맨체스터대학 도서관( John Rylands University of Manchester Library)

 

드럼모양의 포스트모던 건물에는 각종 크고 작은 컨퍼런스와 행사장이 있다. 식당도 선물가게도 있다. 여기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열렸다. 캠퍼스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겁근도 쉽고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기능주의 건물이다. 맨체스터 시 전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연장같은 대회의장이 있다. (The large, drum-shaped building of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University Place, Oxford Road, Manchester.)

 

맨체스터대학교는 산업과 경제학에 대한 학문적 발전에 기여 하였으며 케임브리지학파, 오스트리아학파, 로잔학파, 시카고학파와 경쟁하는 맨체스터학파의 유산을 태동시켰다.

2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이 대학을 나왔으며, 각종 세계 대학 순위에도 상위권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세계적인 대학이다. 참고로 내가 다닌 시카고대학은 91명의 노밸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인류 최초의 산업혁명의 도시 맨체스터에 위치한 맨체스터대학교는 공과대학과 경영대학의 역량이 우수하다.

맨체스터대학교의 모체인 맨체스터과학기술원 (University of Manchester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UMIST)은 최초의 과학기술원으로 설립되었으며 산업혁명시기 공학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이후 미국 메사추세츠공과 대학원(MIT) 설립에 영향을 주었다.

캠퍼스내에 있는 성 베드로의 집(  St Peter's House): 대학생들이나 대학교직원들이나 누구든지 무엇인든지 필요하면 도와주는 곳이다.  공짜로 음식도 제공한다. 특히 주변 어린이들에게도 음식을 제공한다. 시가 경영하는 자선 단체이다. 스포츠, 벌꿀 가꾸기 등 취미활동과 각종 작은 행사도 한다. 맨체스터 답게 건물 앞에 사랑 마크를 단 벌꿀 조각상이 정겹다.

 

맨체스터경영대학원(Alliance Manchester Business School, AMBS)의 경우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보다도 먼저 설립된 영국 최초의 경영대학원으로 공과대학 및 다양한 사회과학분야와의 다학제적 연구에 특화되어 기술경영, 기술정책, 산학협력과 같은 연구들의 명성이 높다.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은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영국 서섹스대 과학기술정책연구소(SPRU)와 함께 기술경영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기관으로 꼽힌다.

맨체스터경영대학원(Alliance Manchester Business School, AMBS):

맨체스터 상공 회의소는 맨체스터 대학 경영대학원 건물을 2019년도 최고의 빌딩으로 선정했다. 원래 철골구조의 건물을 10여년에 걸쳐 재건축했다. 이 건물에서는 여러 교실 외에도 극장규모의 대 강의실 2, 도서관, 기업센터, 카페 등이 있다이 건물은 대학 비즈니스스쿨 건물로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고의 학교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맨체스터 경영대학원을 나오면 전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어 글로벌한 인재양성소로 명성이 높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많이 듣던 소리다. 시카고에서 만난 많은 체코인들이 나는 시카고대학에서 체코문학을 공부한다하니, '젊은이 문학을 공부해서 어디에 쓸려고? 경영학을 공부해야 장차 훌륭한 젊은 인재가 되어 세계에 훨훨 날아다니면서 꿈을 펼치 수 있을 걸세.'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정말 큰 꿈을 펼치려면 세계를 경영 할 수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경영대학원을 나올만하다. 캠퍼스에서 활발한 절은 대학생들을 보니 다시 젊어지면 나도 그런 학문을 다시 하고 싶다.  

맨체스터 대학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Diana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고 아주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영국에서 요즘은 남자 못지않게 여자들도 경영학 대학원을 다녀서 사회로 진출 한다고 한다.

라틴계 청년이 일자리가 필요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학교 옆 중동 아랍계 식당에 들어갔더니 벽화가 화려하다. 

 

2015Emerging이 발표한 취업 성 순위에서 CEO와 회장들이 모집한 상위권 대학을 선정해 달라는 요청에 맨체스터는 세계 24, 영국 내 5위에 올랐다.

세계적인 대학 평가기관인 타임즈 고등교육(Times Higher Education, THE)2021년 세계대학 영향력 순위(Impact Rankings)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조각가 노블(Matthew Noble, 1817-1876)의 웰링턴 기념 동상( Wellington Monument, Piccadilly, 1856):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1st Duke of Wellington, 1769-1852)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영국군 총사령관을 거쳐 총리를 지냈다. 나폴레옹전쟁 때의 활약으로 명성을 얻었다. 왼쪽 밑 작은 동상: 화관을 쓴 승리(Victory) 상, 영국의 성공을 상징. 가운데 두 동상:  전쟁용사를 상징하는 화성(Mars)과 지혜의 상징 미네르바(Minerva).  영국 대도시 어디를 가나 전쟁에서 조국을 구한 장군 동상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도 나라를 구한 장군 동상이 좀 더 많이 세워져서 애국심을 고취하면 좋겠다. 

차이나타운

 

대학을 구경하고 시내로 나오다. 이민국이 있는 우체국에 가서 비자를 찾다. 길을 잘못 들어 30여분 헤매다. 덕분에 도시의 여러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다들 다리가 아파서 차이나타운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수프를 2개 시켰는데 큰 양푼으로 2그릇이 나오고, 가족들이 이상한 향료 맛 때문에 거의 안 먹는다. 최회장님과 둘이서 많이 먹고 남은 수프를 포장해서 가져오다.

요리로 북경오리와 돼지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다. 중국요리는 세계인들이 부담없이 즐겨 먹을 수 있어 어디를 가나 인기가 있다. 일본음식도 비슷하다. 한국음식은 특정 기호자들이 즐긴다. 음식 면에서는 한류가 유행하기는 쉽지 않다. Kpop, K드라마, K영화 등은 인기가 있는데.

점심식사 시간이 12시라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맛있는 중국식당인가보다. 시카고도 차이나타운이 크고 번창한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중국 사람들 세계 어디를 가나 음식으로 단단한 경제생활을 유지한다. 생활력이 대단한 민족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아시아계 유대인이라고 할 정도다. 식당 가까이 있는 중국계 아시아 슈퍼에서 식품을 몇 가지 사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미술관을 보자고 학생들이 제의해서 모두 미술관으로 가다. 도시 규모에 비해 작으나 알찬 그림들이 맘에 든다. 영국 화가는 물론이오, 네덜란드 독일 화가들 그림도 꽤나 많다. 맨체스터에 가면 꼭 보고 싶었던 곳이다.

 

독일 화가 지크(Januarius Zick, 1730 - 1797)의 병자를고치는 예수(Christ Healing The Sick): 대각선 구도에 대칭적인 균형미로 봐서 초기 고전주의 미술경향이 있지만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의 영향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덜란드 화가 카펠레(Jan van de Cappelle, 1624 - 1679)<초가집 겨울 풍경과 얼어붙은 강 위의 외무다리>: 꽁꽁 얼어붙은 겨울 풍경을 그리고 있다.

 

터너(J. Turner, 1775-1851)의 <범선을 타는 여객들>(1827)

  픽거스길의 <삼손과 데릴라>(1850) (Samson Betrayed, by F. R. Pickersgill (1820-1900),  삼손은 유대인들의 신화적 영웅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세지만 현명하지는 못했다. 그는 여자에 약하고 속았다. 장사와 바보의 복합적 존재였다. 성서 연구자들은 이스라엘 신화를 성서에 삽입시킨 것으로 분석한다. 데릴라(Delilah)의 꼬임에 빠져 머리카락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는다. 다음날 들릴라는 삼손이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잠든 사이에 그의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린다. 그때 블레셋인들이 들릴라의 집에 들이닥쳐 삼손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 그들은 삼손에게 청동족쇄를 채우고 큰 맷돌을 돌리는 노예신세로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삼손의 머리카락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블레셋인들은 그들의 다곤(Dagon) 신의 제삿날에 삼손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그를 신전으로 끌고 왔다. 삼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에 몸을 기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삼손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기둥을 밀어 냈다. 그 순간 두 개의 기둥이 쓰러지며 돌로 된 지붕이 신전 안에 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다. 이때 삼손은 돌에 깔려 죽었으나, 그가 무너뜨린 신전에 깔려죽은 블레셋인들이 살았을 때에 그가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고 사사기를 전한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맨유 구장과 박물관견학

맨유 구장 입구에도 도시의 상징은 꿀벌 조각이 있다. 어릴 때 꿀벌과 함께 살아서 정감이 더욱 간다.

안내하는 덩치 큰 대머리 신사가 유머를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한다. 영국영어 다 알아 듣기도 쉽지 않지만 재미 있다. 영국 사람들 정말 유머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식사 후 오후에는 맨유 구장과 과학 산업 박물관을 가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20여분 가니 도시변두리에 거대한 구장이 을씨년스럽게 쌀쌀한 날씨 속에서 벌판에서 우리를 반긴다, 카운터에 가니 반가이 맞이한다, 150여년 된 축구장으로 관광객을 모으는 영국의 상술 대단하다. 썰렁한 축구장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며 돈을 버는 영국인들의 상술 배울 만하다, 경노, 2, 성인 1, 학생2, 오디오 안내 2, 도합 80파운드다. 버스 간에서 만난 영국 아지매들이 유코하게 웃음꽃을 피운다.

 

 

박지성에 대한 전시

박지성 2012년 2월 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00번째 등장했다. 200번 뛴 선수로는 맨체스터 역사상 92번째다. On 5 February 2012, Park made his 200th appearance for Manchester United by coming on as a substitute in the 86th minute against Chelsea. He became the 92nd player in the history of the club to reach the milestone

230분 투어 시간까지 30여분 여유가 있어 전시실을 둘러보다. 여기 맨유 소속으로 2005-2012년까지 경기를 한 박지성 사진을 찾았으나 없어서 섭섭하다. 그러나 같이 간 학생이 그의 이름이 적힌 한 벽면을 찾아서 그나마 기분이 좋았다. 안내한테 물어보니 그는 잊지못할 위대한 선수였지만 수백 명의 선수들 사진을 정기적으로 걸 수는 없고 해마다 특별전할 때 걸 때도 있다고 한다. 카운터에 근무하는 안내가 다 박지성을 칭찬한다. 맨체스터 축구팬이라면 박지성의 활약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국 이미지를 여기 외에도 영국전체에 크게 향상시킨 주인공이라고 한다. 3년 전에 시내 한 바에서 젊은이들과 술을 한잔 먹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박지성 응원가를 불러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경기장 투어가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안내하는 덩치 큰 대머리 신사가 유머를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한다. 영국영어 다 알아 듣기도 쉽지 않지만 재미 있다. 여기저기 관중석, 기자석, VIP석 등 자세히 설명해준다. 사진도 많이 찍고 녹음도 좀 하다, 기대했던 것 보다 구장이 작아보였으나 76,0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규모로 영국에서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90,000)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구장이다. 또한 UEFA 카테고리 4 인증을 받아 챔피언스 리그와 UEFA 유로의 결승전을 개최할 수 있다.

1902년 이 경기장을 건설해서 올드 트래포드라 (Old Trafford)는 이름을 붙였다.

 

축구 종주국답게 긴 역사와 전통이 전설 같은 도시다. 맨유(Manchester United) 팀 말고 맨시티(Manchester City) 팀도 있다. 인구 55만명 정도 규모의 도시에 위대한 축구 프로팀이 둘이나 있다. 축구문화가 도시를 상징한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공업도시로 명성을 휘날렸는데 지금은 스포츠와 전자, 컴퓨터, IT산업, 교육, 예술, 금융도시로 영국 2-3번째 가는 도시답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국립 축구 박물관을 권하고 싶다. 영국 축구의 시작부터 전 세계의 축구 이야기가 넘쳐난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은 박물관이다. 그냥 보고 듣고 지나치는 박물관이 아니다. 트로피를 들어보고 등 손으로 만져보고 느낄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국립 축구 박물관이다.

추운날씨에 따뜻하게 입고 가서 다행이다. 호텔로 돌아오니 5시가 다되었다. 영국식 afternoon tea라고 우유를 탄 차와 케이크 한조각, 그리고 와인을 한잔하니 피로가 몰려와서 잠을 무려 3시간이나 자다, 930분에 다시 일어나 일기를 쓰다.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시작된 원동력을 보여주는 맨체스터 과학 산업 박물관 탐방

https://youtu.be/vOW9gHT8ELU

 

과학 산업 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 앞에도 벌조각이 있다. 앙증 맞다. 

 

오후에 과학 산업 박물관을 관람하다. 호텔 옆 피커딜리 기차 정거장에서 딘스게이트 역까지 3정거장을 열차로 가다. 여기는 지하철 대신 철도가 잘 발달 되었다. 최초로 열차가 달린 도시답다고나 할까? 열차의 도착과 출발을 수신호, 목소리로 하는 것이 마치 20세기 초 고전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열차에서 만난 영국 귀부인들이 유쾌하기 그지없다. 

 

과학 산업 박물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시작

옛 맨체스터 기차역에 자리한 과학 산업 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1969년에 문을 연 이 과학 산업 박물관에서는 맨체스터의 산업, 기술, 과학 분야의 발전과 성과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직물, 에너지, 우주항공, 통신, 전력, 기계, 건축, 교통 등 각 주제별로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차대전 영국이 개발한 전투기 스핏파이어(Spitfire), 호커 헌터(Hawker Hunter) 등의 항공기, 롤스로이스 등, 초기 자동차, 발전기, 증기터빈 등도 전시돼 있다.

 이차대전 영국이 개발한 전투기 스핏파이어(Spitfire)

 

 이차대전 영국이 개발한 전투기 호커 헌터(Hawker Hunter)

 

과학 산업 박물관은 독립된 4개의 박물관 즉 가스관, 엔진관, 방직체험관, 우주과학관 등 각기 다른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증기터빈

증기기관차

 

증기기관차 및 여러 엔진과 직조 기계 전시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를 해 놨다. 우리는 소와 인력으로 밭을 가고 짐을 실어 나를 때 이 맨체스터에서는 증기열차로, 증기 선박으로 증기동력으로 짐과 사람을 실어 날랐으니 대단히 기술이 발달한 도시다.

거대한 방적 기계로 자동으로 무명실을 만드는 장면이 어릴 때 할머니, 어머니, 누나가 수동으로 무명 베틀과 명주 직조기로 옷감을 만들고 어머니가 앉은뱅이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것을 상기 시킨다. 우리와 100여년 이상 옷 만들고 실을 잦는 기술이 앞선 나라다.

 

로비 한쪽에 최초 상업화(1970년대)한 컴퓨터를 전시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기술과 과학, 산업 생산품들이 이곳 맨체스터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덕분이란 것을 깨달으니 감회가 무량하다.

 

  핵융합 첫 시도를 한 영국의 Zeta발전기(1954)

1907년도세 사용한 스팀 터빈, 스팀 터빈은 스팀 엔진보다 더 효율적이다.

 

왜 영국은 이렇게 산업혁명이 일어난 유일한 국가일까?

 

대영제국, 해가지지 않는 나라 등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우고 듣던 말들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영국인들(잉글랜드 인,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들, 웰스인들)은 벌써 15-16세기 해상왕국의 하나여서 무역을 통해서 부를 쌓고, 식민지를 개척해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물품들을 수입하고 가공하여 수출하는 나라가 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과 영국 경제발전관계의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1290년대 영국의 왕 에드워드 1세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 이후 영국은 세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유대인은 프랑스와 스페인, 폴란드,독일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 나라에 어느 정도 부를 일으켰다. 그러나 다시 17세기에 스페인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내전에 쓸 돈이 필요했던 올리버 크롬웰의 명으로 1655년 영국에 돌아왔다. 명예혁명(1688)에서도 유대인들이 대거 들어와 영국의 번영을 거들었다. 참고로 20세기 1,2차대전 전후로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한 미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7세기-18세기에는 선진 농업 기술이 발달했다. 어릴 때 ‘요크셔 흰 돼지’가 우리 토종 돼지보다 훨씬 크고 병이 없었던 것처럼 소 등 가축의 품종 개량도 영국이 선도 했다. 그리고 이어서 산업혁명의 기반이 쌓이기 시작했다.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란 무엇인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 변화와 기술의 혁신,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아 크게 변한 인류 문명의 총체를 일컫는다. 영국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혁명은 18-19세기에 걸쳐 유럽과 북미, 그리고 아시아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또한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곧 성공해냈던 서유럽과 달리, 머나먼 동아시아나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은 산업 혁명을 모방할 의지를 보이지도 않거나, 아니면 모방하기도 전에 식민지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일하게 일본은 어느 정도 산업혁명을 받아 드려 선진 산업국가의 대열에 일찍이 올랐지만.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던 증기기관 이야기도 퍽 흥미롭다.

 

      1698년 토머스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1715)가 발명한 증기기관(Steam Engine)

뉴커먼(Thomas Newcomen, 16631729)은 세이버리의 펌프보다 뛰어난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1769년부터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는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모델로 더욱 발전시켰다. 증기관의 개념이 시작되고 나서 약 100여년이 걸렸다. 비로소 영국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증기 기관과 석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18세기에 걸쳐 석탄을 이용한 증기 기관은 주요 동력 수단으로서 노동력, 풍력 또는 수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근대에 최초로 발명되어 성공적으로 쓰인 증기 기관은 일찍이 1698년 토머스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1715)가 도입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뉴커먼(Thomas Newcomen, 16631729)은 세이버리의 펌프보다 뛰어난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획기적 발전은 지난번 글래스고 여행기에서 자세히 소개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에 의해 한층 효율적으로 개선되었고 보편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제임스 와트의 콘덴서(냉각기) 발명을 통해서 증기 기관은 강력해지고, 지형에 구애받지 않게 설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 수레나 배 위에 설치해서 동력원으로 쓸 수 있게 변모한다. 그 당시 산업혁명의 연료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석탄 캐는 갱도에 적용하여 대량으로 석탄을 캘 수 있었다. 제임스 와트는 스코틀랜드의 발명가이자 기계 공학자였다. 증기 기관에 응축기를 부착하여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영국과 세계의 산업 혁명에 중대한 역할을 했던 증기 기관을 개량하는 데 공헌하였다. 증기선 덕분에 원양이든 강이든 운항 속도가 빨라졌고 계절풍의 도움이 없어도 화물 운송을 자유자재로 하게 되어서 운송의 효율성도 높아졌다.

1804년 리처드 트레비딕(Richard Trevithick, 1771-1833)의 증기 기관차 페니다렌(Pen-y-darren)

 

1804년 리처드 트레비딕(Richard Trevithick, 1771-1833)은 자신이 만든 증기 기관차 페니다렌(Pen-y-darren)호의 시운전에 성공했다트레비딕(Trevithick) 고압 증기기관은 와트의 증기기관에 있던 응축기를 없애고, 대신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증기로 움직이는 피스톤이 장착된 실린더가 들어갔다. 조지 스티븐슨은 1825년 요크셔의 석탄광에서부터 스톡턴의 항구를 오가는 43km짜리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차(蒸氣機關車)가 달리는 화물철도를 깔았고 이 뉴스는 신속하게 영국 곳곳으로 전달되었다. 이것이 바로 스톡턴-달링턴 철도이다. 이어서 1830년에는 최초의 여객 및 화물 겸용 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 간 철도가 개통되며 철도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 최초의 맨체스터 기차역에 오늘의 과학 산업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최초의 상업화한 증기관차: 1925년 스톡턴-달링턴 구간 100주년 기념식 때의 모습 /브리태니커닷컴

와트의 증기기관이 아니었더라면 산업혁명이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면 가공업과 방직업의 발전 상

 

방적기계와 직조기계의 발전상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방적기 발전 이야기를 읽어보니 산업혁명이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된 이유를 알 것 같다영국의 산업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은 바로 면직물 공업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방직체험관에서는 박물관 직원들이 방직공이 되어 직접 기계를 작동하고, 생산된 면직물을 관람객들에게 주어 직접 만지게 한다. 눈으로만 보는게 아니라 몸으로 손으로 체험할 수있게 해놓는 것이 아이들에게 산교육이 된다.

 

리처드 아크라이트(R. Arkwright)는 1768년에 동력으로 수차를 이용하는 수력 방적기를 발명하고 1769년에 특허를 받는다. 1782년 최초로 방적공장에 이를 설치하였다. 1802년 맨체스터에는 50개의 방적 공장이 생겨나고 그는 거부가 된다. 이 발명들이 있기 전 방적기는 한 번에 한 가닥의 실 밖에 잣지 못했고 수력이 아닌 인력 혹은 축력으로 가동되었다. 이후 더빨리 실을 자을 수 있었다. 

https://youtu.be/M7RAlNNgEQQ

         

라이트(Joseph Wright, 1734 – 1797)가 그린 리처드 아크라이트(R. Arkwright)의 초상화: 화가 라이트는 계몽기와 산업혁명의 시대에 종교에 대비해 과학의 고유함을 중요함을 강조한 화가이다. 발명가 아크라이트의 초상화에서 빛 어둠을 대비시켜 과학자의  위대성을 보여준다."the first professional painter to express the spirit of the Industrial Revolution".그는 연금술사의 작업이나 용광로의 모습 등을 그렸다. 산업혁명시대에 모습을 그림으로 묘현하였다.

 

                20세기 중반까지 사용한 우리 할머니의 실잣는 물레, 위의 것은 1870년대의 기계 방적기

위의 것: 수력 자동 방적기 (1782).  아래 것: 우리 할머니 배틀(1960년대까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증기기관 엔진들이 있는(Europe's largest collection of working steam engines) 파워 홀(Power Hall) 전시관에서는 산업혁명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방직기가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신기하다.

 

1733년 존 케이가 '나는 북(Flying shuttle)'을 발명하게 된다. 베틀의 북을 스프링을 이용해 자동화해서 한 번에 짤 수 있는 면포의 너비가 2배가량 늘어나고 속도 또한 훨씬 빨라지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 등 20세기 전반기 한국 시골에서 사용하던 베틀의 북은 매번 손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옮겨가며 사용한 것과 비교할 때 그 속도가 엄청나다.

          1733년 존 케이가 발명한 '나는 북(Flying shuttle)'과 같은 시대의 조선의 배틀 북(Shuttle)

 

 

 

 

 

 

 

 

 

 

 

 

 

 

 

 

 

 

 

 1960년대까지 어머니가 사용하던 배틀 북(Shuttle) 

 

 

'나는 북'의 개발로 인한 생산성 혁신은 엄청났는데, 이전까지 양모, , 모직물 전부를 수출했던 영국은 이후로는 실과 양모를 수출하지 안하고 오히려 수입해서 모직물로 재가공한 다음 다시 수출해서 부를 쌓았다.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1767, 한 번에 8개의 실을 자아낼 수 있는 제니 방적기(spinning jenny)’를 발명하게 된다.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물레로 실 한 올씩 잣던 것과 비교할 때 과연 천재적인 발명품이다. 리처드 아크라이트 (Sir Richard Arkwright, 1732-1792)1768년에 동력으로 수차를 이용하는 수력 방적기를 발명하였다. 또 새뮤얼 크롬프턴(Samuel Crompton, 1753-1827)은 이 둘을 합친 뮬 방적기를 만들어낸다.

방적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자 이번엔 또 직조 능력이 방적을 따라가지 못해 실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1785, 에드먼드 카트라이트 (Edmund Cartwright, 1743-1823)가 동력으로 천을 짜는 방직기인 역직기(力織機, power loom)를 발명, 이것을 수력 혹은 증기기관에 연결함으로서 직조 능력이 방적 능력을 따라잡는다. 그러고 이 시점에서 방직 산업은 자동화의 길에 완전히 들어서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 근대적인 공장이 처음 나오게 되어 산업혁명의 기초가 다져진다.

정말 대단한 발명이다. 18세기 영국에는 발명왕 천국인 것 같다.

 

뮬방적기(紡績機: mule spinning machine.) 조방사(粗紡絲)에서 뽑아 꼬아서 만든 실을 실감개에 방추형으로 감아서 가는 실을 만드는 방법. 1779년 가장 인기있었던 방적기

 

최초로 상업화 한 컴퓨터 앞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서 보고 있다.

1948년 만체스터는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경쟁에서 1등을 했다. "Baby"란 별명으로 불린 컴퓨터가 만체스터 대학 자료를 저장하였다. 이로써 맨체스터가 세계 기술 혁명의 선도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당시 컴퓨터 하드드라이버는 세탁기 드럼만하다 오늘날은 손바닥만한데.

2017-2018년 약 68만 명이 이 박물관을 방문했다. 특히2017년 개관한 블록버스터 로봇 전시관만 67,000명이 다녀갔다.(The blockbuster Robots exhibition was seen by nearly 67,000 people since it opened as a Manchester Science Festival headliner in October 2017.)

1948년戊子年 내가 태어난 해에 맨체스터 대학은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네요. 놀라운 기술 발전.

 

시카고 과학 산업박물관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다양한데 여기도 볼거리가 너무 많은 박물관이다. 시간이 없어 증기 엔진의 역사와 직조기계 전시만 보다. 아쉽다. 늘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삶이다.

 

 

 

 

활기찬 저녁 Bar(선술집) 모습

피카딜리역 근처에 있는 우리의 숙소 staycity apt. hotel 앞에 있는 벌 조각. 맨체스터 거리를 걸어가다보면 꿀벌 조각 상들을 많이 만난다. 벌(BEE)은 부지런한 맨체스터 노동자들을 상징한다. 

  역 입구에 경찰이 서있다. 안전하다는 영국에도 테러가 종종일어나기 때문이다.

There are bees all over Manchester, swarms of those sweetest and busiest of insects are everywhere. Even in the depths of winter they are here, on every bollard and bench, on buildings and bins all over our city.

가장 달콤하고 바쁜 꿀벌들의 떼는 맨체스터 거리 어디서도 볼 수 있다. 겨울철에도 시 전체의 벤치에, 교통신호등 기둥에, 쓰레기통과 건물에도 벌을 볼 수 있다.

벌은 맨체스터의 상징이다. 맨체스터는 공업 도시로써 열심히 일하는 곤충과 관계있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1842년 시 원로들은 세계에 우리가 누군지 알리기 위해서 벌을 시의 문장으로 결정했다. 그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표징이다. 시의회 건물 정면에도 벌 문장을 볼 수 있다.

일벌은 보통 한번 날아가서 50-100개정도의 꽃을 방문하여 꿀 재료를 따온다. 하루에 보통 2,000개의 꽃을 찾는다. 벌은 꿀(honey)도 만들지만 집을 짓기 위해 밀랍(beeswax)도 만든다. 귀하고 소중한 왕비를 위해서 로열젤리(royal jelly)도 만든다.  어릴때 우리 아버지는 벌 통을 여러개 처마 밑에 놓고 토종벌꿀을 수확했다. 어머니가 꿀을 꿀단지에 넣어서 까지지붕 초가 고미다락에 숨겨놓으면 우리 형제들은 손가락으로 훔쳐먹곤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말씀 하셨다. "벌처럼 열심히 일해야 앞으로 잘 살 수있다." 맨체스터에 와서 벌 이야기를 들으니 벌처럼 하루도 쉬지않으시고 일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눈에 선하다. 

                                    한국시골 토종 꿀벌 집

어머니가 우리집에 벌을 키우기 사작한 유래를 이야기해주셨다. "어느 날 수만 마리의 벌떼가 뒤안 감나무 가지에 둥우리져서 윙윙하는 걸 시조부님(100여년전?)이 바가지에 조청을 발라 쑥 뭉치로 몰아넣어서 우리집 벌키우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집안에 경사 대대로 날거라고 하셨다."

 

The bee is the symbol of Manchester and this city of industry is rightly proud of its link with the hard-working insect. In 1842, the early city fathers had to decide on a coat of arms that would tell the world who we were. It was a Victorian branding exercise. They included a globe with seven bees to show how we worked and traded across the seven seas. The Manchester bee was born of industry.

 

벌을 키워서 꿀을 많이 따는 법을 기술한 책이다. 내 고향 친구겸 조카가 벌을 가꾸어 해마다 꿀을 따는 데 이책을 주고 싶으나 영어라서 읽어낼지 모르겠다.

시내 작은 호텔 벽에도 벌 그림이 정겹다.

 

저녁에 잠시 호텔주위를 산보하니 도시가 활기차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Bar 안과 바깥에 서서 맥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다, 날씨가 꽤 쌀쌀해도 아랑곳없다. 캠코더로 촬영도 하고 사진도 찍으니 젊은 직장인들이 손을 흔들고 폼을 잰다. 유쾌한 영국인들이다. 각종 인종이 어울려 사는데 여유 있어 보이고 미소를 많이 짓는다

금요일 저녁이라 파티 차림으로 길을 나서는 미녀들도 마냥 즐겁기만하다. 

암탉들의 파티(Hens party) 가는 젊은 아가씨들

퇴근하는 사람들이 Bar 안과 바깥에 서서 맥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Bravo! Joyful English Gentlemen!" 하니 술잔을 들어올려 보여준다. 유쾌한 영국인들이다.  

맨체스터는 수백년 된 선술집-식당(pub)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The Shakesphere이다.

파키스탄 인 아버지를 둔 메리암 양은 맨체스터 대학 드라마학과를 다닌다고 한다. 물론 셰익스피어 연극도 좋아하고 현대 연극도 좋아한다고 한다.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맥주 등 술은 안마시지만 친구들과 여기 이셰익스피어 펍에는 가끔 간다고 한다. 음식이 다양하고 맛이 있단다.

 

셰익스피어 고향집을 닮은 희고 검은 목재건물인 셰익스피어 선술집(The Shakespeare)에 대해서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원래 이 건물의 유래는 1656년이다17세기 체스터(Chester) 시의 도살장 선술집(The Shambles pub)이었다. 수백년 후 1928년 이 건물이 해체되어 맨체스터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졌다. 재미있는 것은 옛날부터 이 셰익스피어 선술집과 관련된 귀신 나오는 이야기는 여기서도 계속되었다. 100여 년 전에 한 소녀가 주방장한테 억울하고 당하고 죽어서 그 후 귀신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그 주방장은 대들보에 목을 매고 자살했고 이 선술집에는 아직도 그 밧줄의 자국이 대들보에 남아있다고 한다. 쇼핑센터 Primark 옆에 있어서 점심시간은 늘 붐빈다. 음식맛도 좋지만  SKY SPORTS라고 축구 중계를 보면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기에 딱 좋은 장소다.  종업원들은 영국 특유의 유머와 친절미가 넘친다. 에일 흑맥주를 비롯해서 여성들이 좋아하는 도수가 낮은 부드러운 John Smith's 등 다양하다. The Shakespeare, 16 Fountain Street, Manchester

 

       

 

뮤지컬 포스터

척추병 등 불치병 아이들에게 유전자 조작 약 Spinraza를 보험처리로 처방하라고 대모를 하고 있다. 

 

거리 구석에는 거지나 유랑 족들이 이부자리를 펴고 신문을 읽으며 커피나 차를 마시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리스 시대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상기 시킨다. 내일은 신문을 읽거나 책 읽는 거지를 만나면 말을 걸어봐야지. 역에 가까운 다리 밑에 둥지를 튼 할머니 노숙 인이 잠을 자는 것 같아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니 벌떡 일어나서 소리친다, 초상권 침해인가? 겁이 나서 얼른 도망을 치다, 한참 따라 오다가 건널목을 지나니 소리치며 손가락질을 해댄다, 내일 다시 거기를 지나면 초콜릿을 들고 가서 모른척하고 말을 걸어보고 싶다.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 마음이 열리면 어제 사진을 찍어 미안하다고 해봐야지.

4년 전에 'Amazing Britain'이라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일주 여행 때 본 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보다 거지나 유랑 족이 많다.

맨체스터는 바로 현대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산업혁명의 중심지역으로서 세계근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도시 중 하나이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의 하나인데 이러한 거리의 노숙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여행기는 스토온ej월드(Stow on the Wold)와 브리스톨(Bristol) 시 탐방 이야기다.  매혹의 영국여행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