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스코틀랜드 문학박물관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문학박물관
에든버러를 시내를 산보하면 이것저것 즐기면서 보고 나서 시간을 내어 작가 박물관에 들렀다. 스페인 관광객 40여명이 박물관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이처럼 에든버러에서는 여러가지 문학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번에 3회에 걸쳐 소개한 글래스고가 학문과 예술의 도시라면 에든버러는 거기에 더 보태 문화, 정치, 교육, 관광의 도시답게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잉글랜드의 노르위치, 아일랜드 더블린과 더불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어 지역의 문화자산을 십분 활용하여 관광객의 관심을 끌며 문학을 생활하고 있다.
1583년 에든버러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는 영국에서 여섯 번째로 오래되고, 스코틀랜드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에든버러 대학교이다. 에드버러대학을 중심으로 스코틀랜드의 학문과 문학이 발전 한 도시다.
증언에 근거하여 기적을 믿어서는 안된다.
by D. Hume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 - 1776)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이다. 아담스미스와 더불어 서양 철학과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관련된 인물 중 손꼽히는 인물이다. 시카도 대학 유학시절 음악과 서양철학에 대해 가끔 이야기를 나누었던 교포 조미양 양의 boyfriend가 데이브드 흄을 전공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난다. 학문역사가들은 대개 흄의 철학을 회의론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다. 흄은 교회로부터 이단이라는 의심을 받았으나 친분 있는 젊은 성직자들의 변론으로 재판까지 받는 일은 피했다. 18세기 이성의 시대에 많은 서양의 직식인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이성에 기반을 둔 인간 탐구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흄의 형이상학에 대해 애버딘의 토머스 리드와 같은 철학자들은 여전히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여 흄은 글레스고 대학교의 철학 수석 교수직을 얻는 데 실패하였다. 흄은 1752년 에든버러로 귀향하였다. 1752년 에든버러 도서관장을 지냈으며, 1763년 주 프랑스 대사의 비서로서 루소와 사귀었다. (wikipedia.org)참조
오랜 세월 동안 앙숙으로 싸워오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래늗가 1707년 연합법에 의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상호 합의 하에 합병되어 대영제국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은 이러한 대영제국의 틀 안에서 자유로운 학문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것이 18세기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Scottish Enlightenment)와 스코틀랜드 상식학파(Scottish Common Sense Realism 또는 Scottish School of Common Sense)이다. 스코틀랜드 상식 학파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기간 동안에 프랜시스 허치슨, 토머스 리드, 제임스 비티, 애덤 퍼거슨, 듀걸드 스튜어트의 사상에서 유래한 철학 학파이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의 프링글, 애덤 퍼거슨(1764-1785), 듀걸드 스튜어트(1785-1810)에서 시작하여 글라스고 대학의 토마스 리드(Thomas Reid, 1710 - 1796)로 흐르는 학풍을 이어갔다. 이런 학풍이 스코틀랜드의 지성적 네트워크로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여하였다.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단일화되면서 겪게 되는 문화적 충격을 최소화 하고, 스코틀랜드인의 삶과 문화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들은 인류 공통의 의식과 모순되는 데이비드 흄의 철학을 비판하고, 지식의 기초를 상식에서 찾았다. 즉 인간의 경험적 인식의 밑바닥에는 근원이 되는 판단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건전한 상식의 직관(直觀)능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상은 나중에 프랑스의 혁명사상과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Lying ... is doing violence to our nature.
거짓말은 우리 본성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토마스 리드(Thomas Reid)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은 선천적인 것인가, 누군가를 믿기 전에 그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논쟁에 더하여, 리드와 흄은 인간의 증언에 대한 신뢰도, 즉 증언이 믿을만한 정보원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리드는 신뢰 원칙과 더불어 진실의 원칙(principle of veracity)도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진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있고, 더 나아가 거짓말은 우리 본성에 가하는 폭력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자연적으로 잘 믿는 존재인 만큼, 또한 자연적으로 정직한 존재라는 것이다. [출처] #17 흄(Hume)에 도전한 리드(Reid)|
토머스 리드(Thomas Reid)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이다. 도덕철학에 대해서는 조지 턴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64년 애덤 스미스 후임으로 글래스고 대학에서 도덕철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저서 <상식의 원리에 입각한 인간 정신의 연구>를 발표하여 상식의 철학을 주창함으로써 데이비드 흄의 파괴적 회의론에 반대하는 사상 운동을 일으켰다.
에든버러 책사랑 투어: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월터 스콧(Walter Scott),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제임스 매튜 배리(James Matthew Barrie), 알렉산더 맥콜 스미스(Alexander McCall Smith), 이언 랜킨(Ian Rankin), 그리고 조앤 롤링(J. K. Rowling)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 목, 금, 토, 일 11:30-13:30 분까지 2시간 동안 투어가 진행된다.
아래 프로그램은 에딘버러 선술집(PUB) 문학투어다. 술 한잔 기울리며 책, 소설, 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에든버러는 연중 여러가지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여행자의 기호에 맞게 골라서 즐기면 된다.
에든버러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작은 도시이지만, 예술, 교육, 학문, 문학이 탄탄하기 발전해온 도시라는 것이다. 도시 한가운데 광장에 “책사람 투어 (BOOK LOVERS TOUR)” 안내판이 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에든버러 전문 관광 안내자와 에든버러에서 만난 지식인들도 한결같이 자기 도시가 유럽에서 어느 도시 못지않게 학문과 문학이 발전해왔다고 한다. 시내 곳곳에 작가의 동상이나 기념탑, 작가박물관, 작가들이 앉아서 집필을 하며 커피를 마시던 카페 등, 누구나 조금 만 관심을 가지만 문학과 관련된 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잉글랜드 인 못지않게 스코틀랜드 인들도 자기드르이 문학 유산을 십분활용하여 세계인들의 관심을 사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우리도 본받을 점이다.
이제까지 영국 잉글랜드 작가나 시인으로 알았던 <셜록 홈즈>의 코난도일, <웨이벌리와>와 <아이반호의>의 월터 스콧,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 외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 <국부론>을 통하여 자유무역 등 근대 경제학의 이론을 썼던 아담 스미스도 이곳 출신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이 에든버러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가 자주가던 카페는 관광의 중요한 명소가 되었다. <슈기 베인 Shuggie Bain>으로2020년도 맨부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스코틀랜드인 더글라스 스튜어트(Douglas Stuart)이다. 한국작가로는 2016년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이상을 받았다.
2004년 에든버러는 역사 및 현대 문학 거주자, 독립 서점 및 에든버러 국제 도서 축제와 같은 행사 덕분에 최초의 유네스코 문학 도시가 되었다. “에든버러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재단(Edinburgh UENSCO City of Literature Trust)”이 설립되어 에든버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문학을 진흥시키고자 신진 작가 발굴, 시민들의 독해력 강화, 문학 관광 개발, 다양한 협력 관계 개발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스코티쉬 북 트러스트(Scottish Book Trust)”, “스코티쉬 스토리텔링센터(Scottish Storytelling Centre)” 등 10여개가 넘는 다양한 문학 관련 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또 “에든버러 국제도서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는 매년 8 월에 2 주 동안 700 가지 이상의 이벤트가 열리는 가장 규모가 크고 역동적 인 축제다. 에든버러 국제 책 축제는 매해 20만여 명 이상의 관람객과 8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2012년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 올해 2015년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역시 이 축제에서 소개된 뒤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그 덕분인가, 한강은 2016년 이 작품으로 영국의 "맨부커 상"을 받았다. 필자는 2016년 초에 서울사는 외국대사들이 주축이된 서울문학 클럽에서 한강의 작품 낭송회에서 그를 만났다. 또한 매년 에든버러 책 축제에서 처음 소개되는 영국 신진작가나 영문으로 번역되어 영국에 처음 소개되는 해외 작가에게 ‘First Book Award’ 상을 시상하기도 한다. ‘First Book Award’는 독자들의 온라인 투표로 수상을 결정짓는데, 수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투표 캠페인으로 독자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 참조: Home | 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 (edbookfest.co.uk)
“스코틀랜드 국제스토리텔링 축제(Scotland International Storytelling Festival)”은 매년 10 월에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스토리텔링을 축하하기 위해 개최된다.
에든버러는 이렇게 다양한 문학행사와 축제를 통해 문학 도시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간다.
2009년 세계 최초로 설립한 스코티쉬 스토리텔링센터는 교수, 작가, 주부 등 140여명의 전문 스토리텔러를 화술부터, 내용, 연기까지 단계별로 교육하고 관리한다.
시내 곳곳에 유명한 작가나 작품과 관련된 곳을 관리하여 관광자원화 있다.
<해리 포터>의 작가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을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The Elephant House)에서 주로 썼다고 한다.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작가박물관

작가박물관에는 에든버러를 대표하는 스코틀랜드 작가들, 로버트 번스, 월터 스콧,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발물관 로비
로버트 번스가 1786년 에든버러를 처음 방문하여 살았던 집
로버트 번스, 월터 스콧,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 등에 대한 자료와 초상화, 조각상들을 전시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고 아담하니 내용이 충실하다. 각종 자료를 뒤지니 버스에서 가이드가 열심히 낭송해주던 멋진 사랑의 시가 생각난다. “오, 나의 사랑은 붉디붉은 장미 같네.”는 이별을 노래한 스코틀랜드의 민요풍의 노래로서 악기 반주로 많이 부른다고 한다. 이 시에서는 이별도 사랑의 한 과정으로서 보기 때문에 그것이 끝나면 보다 더 깊은 사랑을 위해 애인에게 돌아온다는 긍정적인 신념이 보인다.
화가 나스미스(Alexander Nasmyth, 1758 – 1840))가 그린 번스의 낭만적인 초상화(1787)
스코틀랜드의 초상화 및 조경 화가인 스미스는 람세이(Allan Ramsay)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나스미스는 번스의 복잡한 성격 중에서 활발하고 지적인 젊은 모습을 시인의 고향인 에셔(Ayrshire)의 전원을 배경으로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16살 때 에든버러 사교모임에서 번스를 잠시 만났던 월터 스콧은 나중에 나스미스의 초상화에 대해서 시인의 특징을 너무 소박하게 표현했다고 평했다. 스콧은 번스의 모습이 단순 평범하나 고귀한 면을 가진 강하고 원기왕성하다고 묘사했다. 나스미스의 이미지는 정말로 어느 정도 스코틀랜드의 가장 유명한 인물을 대략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수수한 초상화가 번스의 근대적인 인식과 민주주의와 아량과 정직성의 특징을 형성하는 데 보탬이 됐다. 우리는 오늘날 그의 인간성과 창작을 연관시켜볼 때 그런 특징을 찾을 수 있다.
Robert Burns 15 Fun Facts: 로버트 번스와 관련된 흥미로운 15가지 이야기 동영상
번스의 초상화
O My luve's like A Red Red Rose
O my luve's like a red, red rose
That's newly sprung in June:
O my luve's like the melodie
That's sweetly play'd in tune.
As fair art thou, my bonnie lass,
So deep in luve am I:
And I will luve thee still, my dear,
Till a' the seas gang dry:
Till a' the seas gang dry, my dear,
And the rocks melt wi the sun;
I will luve thee still, my dear,
While the sands o' life shall run.
And fare weel, my only Luve!
And fare thee weel a while!
And I will come again, my Luve,
Tho' it were ten thousand mile.
https://youtu.be/p1t2OY_9DIQ
유명한 스코틀랜드 민요가수 로빈 스테이블톤이 스털링시의 톨부쓰(The Tolbooth in Stirling)에서 로버트 번스의 노래 "오, 나의 사랑은 붉디붉은 장미 같네"를 부른다. 로빈은 2014년 BBC의 스코틀랜드 청소년 전통음악가상을 수상했다. Robyn Stapleton performs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 live at The Tolbooth (The Visit 2017) 자세한 것인 아래 사이트 참조: http://www.robynstapleton.com/
오, 나의 사랑은 붉디붉은 장미 같네
오, 나의 사랑은 6월에 갓 피어난
붉디붉은 장미 같구나.
오, 나의 사랑은 장단에 맞춰
감미롭게 연주되는 멜로디 같구나.
나의 어여쁜 소녀야, 그대가 매력에 넘치니
나의 사랑은 그 만큼 깊구나.
나의 사랑이여, 난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리라,
온 바다가 말라 버릴 때까지.
온 바다가 말라 버릴 때까지, 나의 사랑이여,
그리고 바위가 햇볕에 녹아 사라질 때까지,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리라, 나의 사랑이여,
인생의 모래알들이 다 할 때까지.
그럼 안녕, 나의 유일한 사랑이여,
그대여 잠시 동안만 안녕!
그럼 난 다시 돌아오리라, 나의 사랑이여,
그것이 만리 길이라 할지라도.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 – 1796)는 전 세계에서 명성을 얻은 스코틀랜드가 낳은 가장 위대한 초기 낭만파 서정 시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농장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생활을 통해 문학을 알게 되었다. 17세 때부터 스코틀랜드 어와 영어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나 해외로 이민간 스코틀랜드인의 상징 인물이 되었다. 178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번스는 낭만파 시인답게 여러 여성들과 사랑을 하면서 방탕한 생활 속에서도 시를 짓곤 하였다. 유럽의 예술인들에게 유행했던 것과 같이, 한 때 깊이 사귀던 매리 캄벨(Mary Cambell)을 데리고 멀리 자메이카에 도피하고자 했다. 이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쓴 시 <스코틀랜드 방언에 의한 시집>으로 천재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곧 그 여자가 죽자 그는 진 아모우(Jean Armou)와 결혼하여 작은 농장을 경영하면서 시작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지나친 창작열에 말미암은 과로와 함께 심장병으로 인해 1796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러시아의 낭만파 시인 푸시킨(38세요절)처럼,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36세요절)처럼 일찍 죽었으나 그나 남긴 시들은 스코틀랜드의 정신 속에 살아있다.
그는 당시 많은 낭만파 작가들처럼 나폴레옹의 영향을 입어 공화주의사상과 혁명사상을 탐구하고 시대를 고발하는 시와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농촌과 거기에 사는 농민들의 순박함을 시로 남겨 당국의 감사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스코틀랜드의 민족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많은 시들은 작곡가들이 작곡하여 민요로도 널리 부르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스코틀랜드 민요를 수집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어 방언 시인의 제1인자이기도 하다. 대표작에 <오두막집의 토요일 밤> 등이 있다. 그의 시 “그리운 옛날 또는 석별의 정, Auld Lang Syne”은 자주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불린다. 스코틀랜드나 영국서 모임을 가지고 헤어질 때도 많이 부른다. 또 그의 "Scots Wha Hae" 는 비공식적인 애국가로 오랫동안 불러졌다.
그 외 그의 시가 세계적으로 노래로 불리는 것들이 많다. "A Red, Red Rose", "A Man's a Man for A' That", "To a Louse", "To a Mouse", "The Battle of Sherramuir", "Tam o' Shanter" and "Ae Fond Kiss". 등등이다.
에든버러 전통 연주를 곁들인 전통 식당에서도 마지막에는 이 노래로 마지막을 장식하니 모두들 따라 부른다.
이 노래는 영국 작곡가 윌리엄 쉴드(William Shield)가 1788년에 스코틀랜드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민요가락,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란 시를 가사로 채택해서 편곡한 것이다. 영어로 Old Long Since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별의 정”이라는 제목으로 매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이 울릴 때나 이별을 할 때면 꼭 연주되는 곡이다. 2010년 12월 3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우리은행이 주최한 제야음악회에서도 들었던 곡이다.
전 세계적으로 아쉬운 이별을 할 때 불리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졸업식 때 부르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이처럼 저 먼 스코틀랜드 민요가 동양의 일본과 한국에서 애송된다니 한나라의 민족 시인은 인류의 유산이다. 우리 여행 단이 헤어질 때도 가이드가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들려준 노래다.
또 그의 시들 중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도 있다.
‘호밀밭 사이를 걸으며’(Comin' Through the Rye)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민요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코틀랜드 음유시 ‘Common' Frae The Town’의 멜로디에 붙여 부른다. 이외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널리 불리는 곡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성악가들이 많이 부른다. 일본을 거쳐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한국에서는 <들놀이>란 노래의 번안곡이 있으며, 작사는 김 미선이다. 초, 중학교 교과과정에 수록되어 있다.
번스가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남긴 큰 업적은 바로 전통 가요를 수집하고 발굴해냄과 동시에 400여 편의 아름다운 시들을 영어와는 좀 다른 스코틀랜드 모국어로 썼다는 점이다. 잉글랜드와 늘 긴장 속에 살았던 스코틀랜드인들에게 그는 민족의 혼이었다.
1948년 이승만의 대통령령의 요청에 따라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 환상곡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올드 랭 사인”이 애국가의 멜로디로 사용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민족의 울분을 이 노래에 담아 눈물 흘리며 불렀다. 그래서 이 노래는 그 후 우리민족의 슬픈 한을 반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인 강소천이 '작별'이란 제목에 가사를 붙여서 졸업식이나 종강파티 때, 헤어질 순간에 불렀던 노래이다. 이후 졸업식에서 환송곡으로 많이 불리곤 했다. 최근에는 가수 김장훈이, “올드 랭 사인”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속칭 '독립군 애국가'를 2012년 하계 올림픽 응원가로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다. 대한민국의 찬송가에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곳이 있다.(위키백과 참조)
아내가 자주 부르던 찬송가이기도 해서 귀에 익다. 우리는 스코틀랜드 민요를 찬송가로 편곡해서 부르고 미국, 캐나다에서는 아리랑을 찬송가로 편곡해서 부른다. 이처럼 노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언제 들어도 흐뭇한 노래다.
찬송가 280장. 천부여의지 없어서
1.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후렴>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2.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후렴>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3.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후렴>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작 별>
1절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2절
잘 가시오 잘 있으오, 축배를 든 손에
석별의 정 잊지 못해 눈물만 흘리네
이 자리를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고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이는 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머빈 르로이(Mervyn Leroy) 감독의 <애수>(哀愁, Waterloo Bridge)라는 영화에서 로버트 테일러(영국군 장교 역)와 비비안 리(창녀 발레리나 역)가 캔들 클럽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장면에 잔잔히 흘러나오던 애잔한 멜로디의 곡이다.
https://youtu.be/xX47kd9L6oc
Auld Lang Syne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never brought to mind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days of auld lang syne
정든 옛 친구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그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겠나
소중한 옛 친구들, 그리운 옛 시절,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나
(합창 refrain)
For auld lang syne, my dear
For auld lang syne
We'll take a cup o' 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지나간 그리운 시절을 추억하며 , 친구여,
그리운 그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우정의 잔을 함께 드세나,
그리운 그 시절을 위하여.
We twa hae run about the braes
And pou'd the gowans fine
We 've wander'd monie a weary fit
Sin' auld lang syne
그 시절 우리는 언덕에서 뛰놀며
예쁜 데이지 꽃을 따 모았었지.
우린 지칠 때까지 늘 돌아다녔어
그리운 그 시절 내내
We twa hae paidl'd in the burn
Frae morning sun till dine
But seas between us braid hae roar'd
Sin' auld lang syne
우리는 개울에서 물장난 치며 놀았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지만 우리 사이에 놓인 바다는 거칠고 넓었지
그리운 그 시절부터....
And there's a hand, my trusty fiere
And gie 's a hand o' thine
We 'll take a cup o' 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자, 친구여, 이제 우리 손을 맞잡고,
자네 손을 내게 뻗어서,
우정의 잔을 함께 드세나,
그리운 그 시절을 위하여.
And surely ye’ll be your pint’ stoup,
And surely I’ll be mine!
And we’ll tak a cup o’ 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그리고 자네는 반드시 자네의
그 큰 술잔을 다 비우는 거야,
그리고 나도 내 잔을 다 비우고,
이제 우리는 우정의 잔을 드는 거야,
그리운 그 시절을 위하여....
번스는 노래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스코틀랜드에서는 낭만주의의 위대한 역사소설가 월터 스콧보다 더 친밀감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문학 박물관에는 그의 전시물이 더 많고 더 잘 해놓았다.
존스톤이 그린 <시발드의 대출도서관: 왼쪽 세번째가 번스, 맨 오른쪽 에 앉아 있는 소년이 월터 스콧
화가 존스톤(William BorthwickJohnstone, 1804-1868)은 스코틀랜드국립 미술관 창립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변호사직을 그만두고 그림에 몰두하였다. 이탈리아 유학(1842-44) 후 1848년 스코틀랜드 왕립 아카데미(Royal Scottish Academy)회원이되었다.
월터 스콧의 전시실
초상화가 레이번(Sir Henry Raeburn, 1756-1823) 경이 그린 월터 스콧의 초상화(1815)
레이번은 금세공인었으나 젊은 시절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1784년 런던으로 가서 위대한 초상화가 조수아 레이놀드즈(Joshua Reynolds) 문하에서 공부하고 이탈리아에 유학을 다녀왔다. 1787년 에든버러로 돌아와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1822년 영국왕이 에든버러를 방문했을때 기사작위를 받았다.
에든버러가 낳은 위대한 소설가 월터 스콧 경(Wlter Scott, 1771-1832)의 전시실은 번스의 전시실보다는 소박하다.
스콧의 <웨이벌리>를 인쇄한 밸런타인 인쇄기: <웨이벌리,Waverley)>는 월터 스콧에 의해 쓰여진 역사 소설이다. 스콧의 데뷔 소설로 익명으로 출간되었으며, 서양에서 최초의 역사 소설로 여겨지곤 한다. 이 작품은 스콧이 나중에 편찬한 소설들이 “웨이벌리의 작가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낭만주의 역사소설 <아이반호> 등을 써서 세계적으로 문명을 날린 월터 스콧경은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어 어릴 때,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흘러간 이야기들로부터 상상력을 키웠듯이 그도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 들려주는 스코틀랜드 지방의 이야기를 즐겨 들으며 자랐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몸이 약하니까 자연히 집에서 많은 책을 탐독하고 시작을 시도했다. 에든버러 대학 고전학과에 다니다가 병마 때문에 중퇴한 후,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 생활을 거쳐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스콧은1802-1803년 스코틀랜드 민요를 모아 <스코틀랜드 지방 민요 집>(The Minstrelsy of the Scottish Border) 3권을 출판하였다. 1805년 <마지막 음유시인의 노래>(The Lay of the Last Minstrel)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1813년 시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계관 시인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 후 영국의 위대한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나타나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1814년 <웨이벌리>(Waverley)를 발표했다. 이후 <가이 매너링>(Guy Mannering), <옛 도덕>(Old Morality), <미들로디언의 중심부>(The Heart of Midlothian) 이란 소설들을 발표하고 1819년에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된 역사 소설 <아이반호>(Ivanhoe)를 발표하여 문명을 얻는다. 1820년 준남작(Baronet) 작위를 받았다.
그는 19세기 세계문학사에서도 가장 먼저 일반대중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 <아이반 호>를 써서 서구 역사소설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작가로 성공하여 수입도 좋았다. 그의 시대에 와서야 작가들이 인쇄로 생활을 유지하게 되었다. 신앙심 깊었던 스콧은 임종이 다가왔을 때 하인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하인에게 책 한권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하인은 임종을 앞둔 스콧이 무슨 책을 원하는지 몰라 원망설일 때,
스콧이 "세상에 책중의 책은 하나 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그의 의중을 알아차린 하인은 성경을 가져왔다.
스콧은 성경을 펼쳐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를 읽고서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작가를 얼마나 숭앙하는지 스코틀랜드 화폐 5파운드 부터 100파운드 지폐에 그의 초상화를 새겨넣었다.
그의 말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다.
"부자 청년이 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그 빛나는 금덩어리들은 칼이 인간을 살해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의 정신을 살해했다.“
"Too much rest is rust.
지나친 휴식은 녹이 슨다."
그의 대표작 <아이반호>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아이반호(Ivanhoe)는 1819년에 3권으로 출판된 월터 스콧 경의 대표 역사소설이다. 12세기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최초의 역사 소설의 모범이 되었다. 이 소설은 낭만주의와 중세에 대해 늘어난 관심을 대변한다고 여겨진다.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은 스콧이 중세시대의 인간의 마음을 최초로 드러냈다고 주장을 했다. 반면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과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중세시대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킨 것은 스콧의 아이반호의 출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확신했다. 더 나아가 아이반호는 사자 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 존 왕과 로빈후드의 대중적 개념 확립에 영향을 끼쳤다.
<아이반호>는 잉글랜드에서 노르만계의 귀족이 압도적일 때 남아 있던 앵글로 색슨(Anglo-Saxon) 계열 귀족 가문의 이야기이다. 색슨 계 주인공 아이반호의 윌프레드 경은 노르만 사자 왕 리처드 1세에게 충성을 바침으로 아버지의 눈에 벗어났다. 이 이야기는 제3차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난 1194년에 시작되며, 이때는 많은 십자군 기사들이 유럽의 고향으로 돌아 갈 때였다. 원정에서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길에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공작에게 붙잡힌 리처드 왕은 여전히 붙잡힌 군사들의 손에 있다고 믿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록슬리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던 로빈후드도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 중 한명으로 프라이어 턱이나 알란어데일, 리틀존 등과 마찬가지로 유쾌한 인물이다. 아이반호의 로빈후드에 스콧이 제시한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특성을 가진 현대적 개념의 의적을 형성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 아이반호의 완고한 색슨 계 아버지이며, 색슨 왕 해롤드 가드윈슨의 자손인 세드릭이 있다. 여러 성전기사단과 교회성직자, 왕실 노예로 양돈을 하는 구스, 관찰력이 대부분의 행동으로 옮겨지는 어릿광대 왐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요크의 아이작은 돈과 그의 딸 레베카에게 열정을 가진 인물이다. 이 소설은 잉글랜드에서 유대인의 해방 항쟁이 거셀 때 쓰여, 출간된 책으로 그들의 불의에 대한 빈번한 언급을 하고 있다.” (위키백과 참조).
여기에는 유럽의 동화니 민담에 나오는 복면의 흑기사, 신출귀몰한 활 쏘는 기사 등이 나타나 처형 직전에 위기에 처한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나온다.
최초의 역사 소설로 일컬어지는 이 소설에 일관되어 있는 사상은 정의와 공정함과 무용을 사랑하고 부인을 존경하는 로맨틱한 중세 기사도의 정신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 스콧은 거기에다 주인공들에게 근대정신을 주입하여 자유자재로 활약하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스콧을 가르켜 근대 역사소설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아이반호>는 그 이후 유럽의 역사소설의 효시가 되어 각 나라마다 자기 민족의 반항적인 영웅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의 역사소설과 이 번역판의 경향으로 일제 때 조선일보에 연재한 홍명희의 <임꺽정, 林巨正>이 있다. 그 이후 우리나라도 많은 역사소설이 나오게 된다. 최근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황석영의 <장길산> 등등.
도중에 시장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다. 간단한 이곳 샌드위치를 샀는데 빵이 아랍 식인지 맛있다. 영국샌드위치와는 다르게 먹기가 좋다.
월터 스콧 기념탑
시간내어 에드버러 워터 스캇의 기념탑에 올라가 보았다.
오후 늦게 호텔로 돌아와서 6시30분 저녁 먹으러 갈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어제 계획한데로 걸어서 식당-음악당에 갔다. 호텔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에든버러 중앙역인 웨이벌리 기차역이 나온다. 쇼핑센터와 함께 있어 오가는 인파가 북적된다. 반대편으로 나오니 가는 길목에 어제 본 거대한 월터 스콧 경의 기념탑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스코틀랜드의 대문호, 월터 스콧 경의 기념탑이다. 수도의 중앙에 장군도, 왕도 아닌 작가의 기념탑이 가장 큰 규모로 세웠다. 스코틀랜드인들의 문학 사랑을 알만하다.
에든버러의 시각적인 랜드 마크인 월터 스콧 경의 기념탑은 그의 유언대로 오래된 탑처럼 보이게 시커먼 사암으로 신 고딕 양식 탑으로, 켐프(George Meikle Kemp)가 설계 1844년에 건설했다. 일설에 의하면 경쟁심이 강한 에든버러 시민들의 요청으로 영국에서 제일 높은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제독 탑 보다 5m 더 높이 올려서 61.1m이다. 유럽은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탑 이래 도시마다 그 도시를 상징하는 탑을 세우기를 자랑으로 여긴다. 파리의 철골로 된 에펠탑은 19세기말 아르누봉 양식의 건축물로 현대문명의 상징이다.
스코틀랜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이니 그러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어제 미국인부자 Jerry Novak 씨와 그의 아들이 287 계단을 올라가 봤다고 자랑하길 레, 나도 올라가보았다. 프라하 비트 성당에도 287개 계단이 있었던 것 같은데 287이라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승강기나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61미터의 높이의 탑을 직각으로 오르니 숨이 찬다. 올라 갈수록 계단이 좁아진다. 꼭대기 계단은 작은 배낭을 몸 앞으로 끌어안아야 통과할 수 있다. 숨이 막힐만하면 쉬는 층이 있다. 주머니를 뒤지니 숨이 찰 때 혀 밑에 넣는 약이 있어 조금 뿌리니 금방 좋아진다. 심장 혈관이 하나가 40% 막혀 있으니 조심하라던 심장내과 의사의 말이 생각나서 다행이다. 쉬는 층마다 여러 가지 전시물이 있어 조금씩 읽다보면 다시 올라갈 힘이 생긴다.
층계마다 스콧의 소설에 나오는 64명의 인물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쉬는 층에서 루이라는 중국인 유학생들을 만났다. 대망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에든버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한다고 한다. 장래가 기대된다. 두 번 째 쉬는 층에서는 뉴욕에서 온 여행객 Breffle을 만났다. 에든버러는 뉴욕과 색다르게 중세분위기를 물씬 풍긴다고 한다. 다들 에든버러 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힘들지만 가치가 있다고 한다. 꼭대기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 속에 에든버러 시가지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고색 창연한 성과 바다도 한 눈에 들어온다.
월터 스콧의 하얗고 큰 동상은 기념탑의 네 기둥 한가운데에 책을 들고 앉아 있다.
탑 둘레의 잔디밭과 벤치에는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또는 관광객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니 반가이 찍어준다. 6월 초의 에든버러는 그 찬란한 햇빛과 더불어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의 도시답다. 우리 서울에는 언제 위대한 시인이나 작가의 탑이 세워질까? 서울 중앙 롯데백화점 옆에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 동상은 세웠는데. 영국런던은 온통 위대한 장군들 동상이 여기 저기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것을 높이 기리는 모습인데 스코틀랜드는 작가를, 학자를 추앙하는 것 같다.
월터 스콧 탑
월터 스콧 탑 한가운데 있는 동상
Breathes there the man, with soul so dead,
Who never to himself hath said,
This is my own, my native land!

에든버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중국 유학생
뉴욕에서 온 여행객 Breffle, 에든버러는 뉴욕과 색다르게 중세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나무 좋다고 한다.
"와인은 병에 담긴 시(詩)"라고 상찬한 스티븐슨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 – 1894)은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폐병을 앓은 그는 야외와 바다, 모험을 사랑하였으며 독서를 좋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역사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그가 소설을 쓸 때 배경이 되어주었다. 1867년 18세에 그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기 위하여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을 공부하였다. 건강이 좋지 않아 자퇴 후에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변호사 실습보다 이야기 쓰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1875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1870년대 중반부터 단편 소설과 수필을 펴내기 시작했다. 그가 펴낸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카누를 타면서 여행한 경험과 관련된〈내륙 항해〉(1878년)와 이듬해 프랑스 도보여행을 다녔던 때를 묘사한〈세벤느에서 당나귀와 함께 한 여행〉은 스티븐슨의 여행기 문학 이야기가 서투른 점이 드러났지만, 품위있고 매력적인 수필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 아라비안 나이트>를 발표하고, 그 후 <젊은이를 위하여>,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등의 걸작을 발표하였다.
1876년에 파리에서 자기보다 11세 연상인 미국인 여자 패니 오스본을 만났다. 1878년 그는 그녀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다음 해인 1879년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이혼하자 스티븐슨은 그녀와 결혼을 한다. 1880년에 귀국하였다가 다음 7년동안 스티븐슨 부부는 유럽의 여러 곳을 다닌다. 그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공기의 변화가 필요했다. 1887년에는 미국으로 다시 이주하여 뉴욕주 사라나크 호의 요양소로 들어갔다.
사모아에서의 일생
건강이 악화되자, 요양을 위해 스티븐슨은 자신의 부인과 양아들, 그리고 과부가 된 어머니와 함께 1888년 6월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6년간 남태평양을 여행한다. 결국 그는 그 중에서 당시 독일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사모아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사모아의 아피아 근처에 있는 숲에 큰 집을 지었다. 그는 경작자가 되었고, 섬의 정세에 관련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포용력은 사모아인들의 인정을 얻었다. 1894년 12월 3일에 뇌일혈로 발작을 일으켜 별세하였다. 추장들은 스티븐슨을 사모아인들 사이에서 성지로 여겨지던 바에아 산(Vaea Mt.)의 정상에 안장하였고, 그의 묘비에는 그의 시 <레퀴엠>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여기 그가 애타게 기다려온 곳에 잠들어있다.
본국은 항해자, 바다가 고향.
그리고 사냥꾼, 언덕이 고향.”
Here he lies where he longed to be;
Home is the sailor, home from sea,
And the hunter home from the hill.
Robert Louis Stevenson - Wikipedia 참조
사모아에서 생활할때 사용하던 것들.
"이야기는 나의 피나처다.(Stories are my refuge)". 1883년 <보물섬>(Treasure Iland)을 출판했다. 원래재목은 <The Sea Cook>이다. 스비븐슨의 아들 로이드가 그린 상상의 지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보물섬> 첫 장을 쓸 때 살았던 오막살이
파렐(Farrell)이 쓴 <사모아에서의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
작가 박물관에 있는 윌리엄 브로디(William Brodie)가 만든 캐비넷. 스티븐슨이 어릴 때부터 사용했다. 괴짜 브로디는 18세기, 낮에는 어엿한 시의원 겸 목수로 일했고 밤이면 의리의 사나이로 부자들의 재산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도둑으로 살았던 "조합장 브로디(Deacon Brodie)"라는 별명을 가진 윌리엄 브로디(William Brodie)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결국 그는 붙잡혀서 그의 신분이 탄로가 나고 단두대에서 생을 마쳤다.그의 이러한 이중적인 인물은 이 지역 스코틀랜드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에게 영감을 주어 <지킬박사와 하이드> 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라는 소설로 만들어졌다. (졸고 매혹의 영국여행 3편 참조)
Robert Louis Stevenson, 1850 – 1894)과 부인과 사모아 바일리마의 가족들 1892년 The author with his wife and their household in Vailima, Samoa, c. 1892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이 사모아 섬에서 <보물섬>을 쓸 당시 찍은 사진: Kava 또는 Ava 음료수를 만드는 원주민들: '아바 의식(Ava ceremony)은 사모아 제도의 가장 중요한 관습 중 하나다. 사모아 사회에서 중요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예식을 나누는 엄숙한 의식다. 사모아 단어 ʻava는 오세아니아의 카바 문화와 관련된 폴리네시아 단어 카바(Kava)와 이슷하다. 체코어로 coffee를 kava라고 하는데 이와 연관은 없는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교의 위대한 로슬린 교회(성당)을 보러 간다. 매혹의 영국여행 제6 편에 다루겠다.
William Sinclair (1410–1484), 1st Earl of Caithness (1455–1476), 3rd Earl of Orkney (1455–1470), Baron of Roslin was a Scottish nobleman and the builder of Rosslyn Chapel, in Midlothian.
According to Dr Robert Lomax, Rosslyn Chapel was bulit to house artifacts brought by the Knights Templar to Scotland in 1126. Lomax states "Between 1118 and 1128 the Templars excavated the ruins of Herod’s Temple in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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