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코소보 여행 Explore to Kosovo. I visited two cities, Pristine and Prizen in Kosovo. I found very interesting culture and people.I loved them very much, especialy Albanian foods and drink.
20190501 발칸의 날씨는 환상적이다.
스코프예 여행 이튿날 옆 나라 코소보로 향하다.
1990년대 말 코소보 전쟁으로 프라하로 망명 온 코소보 지식인과 여러 번 만나고, 그 후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가족과 함께 덴마크나 스칸디나 반도 어느 국가로 망명을 가고자한다고 했다. 체코문학을 번역하는 유일인 코소보인이라 체코 정부가 임시로 보호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코소보에 꼭 한번 꼭 가고싶다고 하니 가면 자기 친척을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연락이 두절 되었다. 그때부터 더욱 코소보가 보고 싶었다. 가면서 코소보 출신 알바니아 인 택시기사에게 알바니아어 인사말을 몇 개 배웠다. 알바니아어는 슬라브어가 아니고 라틴어계라서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세르비아어나 크로아티아어로 인사를 하면 대게 알아들으면서 마케도니아로는 약간 다르다고 가르쳐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었는데. Farmindaraet(파르멘다레트: 감사합니다.), Mirdita(미르디타: 낮 인사), Sijeni(시예니: 안녕하세요?) 등등.
마더 테레사 동상 앞에서 코소보 아이들과
나는 어느 나라나 갈 때 보통 비행기 안에서나 미리 인사말 5-10마디 달 달 외워가서 엄청 덕을 본 경험이 많아서 늘 이렇게 새로운 나라의 언어 몇 마디를 익히는 습관이 있다. 러시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에서는 인사 말 몇 마디로 결혼 식 파티에 초대받아, 잘 얻어먹고 신부와 댄스를 춘 경험도 있다. 말 한마디가 천양 빚을 갚는 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국사람이 자기나라 말 한 두마디 하면 금방 친숙해질 수 있어 좋다.
어제 함께 했던 덴마크 여행자 Paul과 10시에 만나서 택시로 코소보 프리슈티나로 향하다. 도중에 기사가 고속도로로 갈 것인지, 구 길로 가면서 몇 개 도시 전경을 볼 것인지 택하라고 해서 폴(Pau)이 서두르는 여행이 아니니 한두 도시 보면서 가자고 하다. 초라한 국도를 30여분 달리니 초라한 국경이 나온다. 생각한 것 보다는 쉽게 통과한다. 반대편 마케도니아로 오는 차들은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5월1일 국경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마케도니아로 휴가를 온다고 한다. 산의 모습이나 들판의 모습이나 비슷하다. 중간에 작은 교회가 보이는 곳에 잠시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다. 키가 작고 햇볕에 얼굴이 그슬려 까마잡잡한 알바니아인이 다가 온다. 기사하고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 알바니아 어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은 정교회인지 가톨릭 교회에 가보니 버려진 텅 빈 교회다. 주위에 말똥인지 노새 똥인지 커다란 무더기가 있다. 멀리 초라한 아파트 너머로 모슬렘 교회인 모스크가 하늘을 향해 뾰족 탑을 내밀고 있다. 코소보 전쟁 통에 세르비아 군인들이 총을 가해서 온통 상처뿐인 도시란다. 조금 전 코소보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가 알바니아인이라고 해서 함께 사진을 찍다. 다시 떠나오면서 기사가, 그 알바니아인이 차를 세워놓고 혹 누가 원하면 태워주고 돈을 받는 불법으로 영업한다고 한다. 우리가 내리니 혹 타고 갈까 해서 가까이 온 것이라고 한다.
조금 더 달리니 다른 도시가 나온다. 멀리 모스크의 첨탑이 가장 눈에 뜨인다. 잠시 길가에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다. 모스크가 왜 이리 많으냐니까, 코소보 인구의 90%가 알바니아인이고 대부분 모슬렘을 믿는다고 한다.
2시간 가까이 달리니 프리슈티나Pristine가 눈에 들어온다. 기사한테 우선 점심으로 코소보 음식을 먹자고 하니 여기는 대부분 알바니아 음식이 맛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간곳은 기사가 친구한테 물어보고 강추 한 N’Katuna(인 카투나: 농촌에서)란 알바니아 식당이다. 프리슈티나 시내 중심을 벗어나 변두리 한적한 시골에 자리하고 있다. 기사가 마케도니아시민이지만 원래 알바니아 계라 알바니아 자랑을 늘어놓는다.
알바니아 식당의 여러 메뉴 중에서 알바니아 빵을 하나 시켰다. 손바닥 두 개의 크기의 두툼한 빵이 엄청 맛있다. 폴이 어제 스코프예 식당에서 먹은 마케도니아 전통 빵보다 부드럽고 씹는 질감이 좋다고 한다. 양고기 한 접시 500g(뼈포함) 송아지고기 한 접시 500g(뼈포함), 고기요리에 알바니아 치즈, 고추, 감자, 토마토 등이 곁들여 나와 먹기가 좋다. 맛있다. 살짝 구운 매운 고추 하나를 추가로 시키니 0.3.유로다. 배로 만든 독주 알바니아 라키아 소주잔 크기로 한 잔씩 마셔가며 독특한 알바니아 음식을 즐기다.
요리에 대해서 기사에게 자세히 물으니 코소보나 마케도니아 요리는 주변 국가의 요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특히 터기 지배를 수백 년(600여년) 받아서 터키 요리와 알바니아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일반적인 음식에는 케밥, 수주크 및 기타 소시지, 길죽한 피망요리, 길죽한 매운 고추 요리, 양고기, 콩, 피타 및 쌀이 포함된다. 빵과 치즈 등 유제품은 코소보 요리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왜 코소보에 이렇게 알바니아인이 이렇게 많으냐니까 원래 이지역이 알바니아 사람 거주지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알바니아 민족은 세계 곳곳에 살고 있어 3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알바니아 공화국은 작고, 코소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게 알바니아인이라고 한다. 마케도니아도 두 번째로 많은 민족이 알바니아인이다.
코소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인터넷에 찾아보고 기사한테 물어보았다.
코소바(Kosova, 세르비아어로는 코소보 Косово)는 발칸반도 즉 남유럽에 위치한다.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세비치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일으킨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학살되고 나서야, 2008년 코소보 독립해서 코소보 공화국(알바니아어: Republika e Kosovës)이라는 국명을 채택했다.
코소보는 발칸 반도 내에서 전략적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아드리아 해, 흑해와 중부 및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했다. 코소보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는 프리슈티네(Pristine)이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프리즈렌(Prizren)이 문화적 유적지가 더 많은 도시다, 코소보는 남서쪽으로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북 마케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경 서쪽에는 몬테네그로가 있으며 북쪽과 동쪽에는 세르비아의 자치 지역 및 행정 지역이 있다.
1992년에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민족주의가 대두되어 각지에서 독립을 외치자 세르비아 정부가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1990년대에 코소보에 거주하고 있던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알바니아인들을 문화 탄압, 일자리 박탈, 인종 정화라는 이름의 학살로 탄압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일어난 코소보 전쟁에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개입하면서 코소보는 유엔의 통치를 받는 자치 지역이 되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선언을 했다., 2018년 2월 17일 기준으로 107개의 유엔 회원국과 타이완, 쿡 제도, 니우에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제 코소보를 좀 더 잘 이해가 된다. 이처럼 하나라를 방문하기 전에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가면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사람들과 대화 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아까 코소보가 마케도니아보다 고속도로가 더 잘 된 것 같다고 하니, 2008년 독립 이후 유럽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그렇다고 한다. 마케도니아는 아직도 러시아를 지지하는 인들과 미국 및 유럽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져있다고 한다.
알바니아 요리
프리슈티나 시의 알바니아 식당에서 덴마크 여행자 Paul, 필자, 기사 Bekai.
알바니아 송아지고기 요리와 양고기 요리
식당을 찾느라 좀 늦은 점심이 되었다. 식당도 넓은데 정원은 더 넓다.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그네도 있고 작은 수영장도 있다. 정원에서는 주로 담배를 피우는 가족 단위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긴다. 옆으로 지나가니 예쁜 알바니아 처녀가 핸드폰으로 나를 찍는다. “도바르단!, 까고 스테? 하니 미소를 띠우며 ”도브레!“ 한다. 가까이 가니 테이블에 여러 처녀들과 총각들이 적포도주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잠시 함께 앉아서 환담을 나누고 사진을 함께 찍다. 내 왼쪽 옆에는 마냐라고 하고 맞은 편 아가씨는 이레나라고 한다. 둘 다 귀엽다.
다시 차를 타고 프리슈티네 시내 중심에 주차를 하고 기사가 직접 여행안내를 한다. 마침 휴일이라 가족단위로, 연인들과 또는 친구들끼리 광장을 오간다.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기사가 코소보는 75% 이상이 젊은이로 이루어져 있는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생동감이 넘치고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언제 전쟁을 겪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광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다. 마더 테레사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꼬마아이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다. 초등학교 저학년 같은데 영어가 유창하다. 학교에서 일찍이 영어 공부를 시키기 때문이다. 머리에 유대인들 같은 비슷한 납작한 모자를 쓴 할아버지 한분이 오니 기사가 저분이 전통적인 알바니아 복장을 입은 사람이라고 한다. Riza할배한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하니 폼을 잡으신다.
조금 더 가니 길가에 책을 파는 노점상이 몇 개 있다. 코소보 미술에 대한 책을 찾았으나 없다. 민속학 그림과 그림이 있는 책이 있는 데 50유로, 엄청 비싸다. 코소보 이야기책도 비싸다. 출판 사정이 안 좋아 책이 비싼 편이란다. 코소보는 독자적인 화폐가 없어 유로화를 쓰고 있다. 아직 EU에 가입하지는 못했지만.
좀 더 가니 구시가지(Old town)가 나온다. 옛 터키인들이 살 던 곳이라고 한다. 모스크가 멀리 뾰족탑을 자랑하고 있는 작은 모스크에 들어가 봤다. 안내 기사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둘이서 들어가니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모슬렘 설교자가 설교하는 강단, 동쪽을 향한 구석(제단?)을 향해 하루 5번씩 기도를 한다고 한다. 기사는 모스크에 들어 온 김에 수십 번 절을 하고 기도를 한다. 외대에서 아랍어과 교수가 절하는 법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것 같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기 저기 내부 사진을 찍다. 터키 이스탄불의 거대한 헤게 소피아 모스크나 불가리아 고도시 ????에서 들어가 본 모스크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고 싶었는데 오월 1일 휴일이라 다 문을 닫았다고 한다. 아쉽다.
이어서 바자르가 시작된다. 각종 과일과채소 등을 파는 가게가 줄을 지어있다. 딸기 한 박스에 30센트다. 사과, 바나나 등 과일이 무척 싼 편이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있는 골목들을 걸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초라하나 모두들 미소를 짓고 떠들며 즐거워한다.
폴이 예약한 호텔을 찾아가서 방구경을 하고 잠시 쉬다. 큰 방 하나에 35유로 정도다. 기사가 주차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폴의 가방을 가지고 올 때까지 도시 안내 책자를 살펴보다. 커피나 차를 팔아라하니 아침 식사 외에는 호텔에서 아무것도 팔지 않는다면서, 호텔에 근무하는 중년의 남자가 친절히 차 한 잔씩을 대접한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에 혹 코소보에 오면 이 호텔로 찾아오라고 한다.
기사가 차를 몰고 와서 폴은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나는 기사와 스코프예로 출발하다. 도중에 새로 건설한 가톨릭 교회를 구경했는데 장대하나 내부는 초라하다. 기사가 가는 길에 80여km만 옆길로가면 여기 프리슈티네보다 훨씬 아름답고 역사적인 도시를 볼 수 있다고 꼬신다. 80유로만 더 주면 한시간 더 가서 한두시간 구경하고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더 달리면 스코프예로 약 8시-9시 사이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서 80유로 주고 가기엔 좀 부담이 되니 그냥 스코프예로 가자고 하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고 한다. 50유로로 가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자고 하니, 그러면 60유로로 타협을 보자고 한다. 집요하다. 못 이기는척하고 가기로 하다. 사실 나도 책에서, 인터넷 상에서 이 도시가 규모는 같으나 더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이 기회를 통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은근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폴과 함께라면 기꺼이 우리가 먼저 가자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또 프리즈벤으로 가다. 고풍스러운 골목과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올드타운 유적지로 가는 길에 차들이 천천히 움직인다. 도중에 주차장 사인을 발견하고 잽싸게 차를 몰아 세우고 걸어서 사람들이 몰려가는 개울가를 따라 구시가지로 움직여 간다. 온갖 군상들이 휴일을 맞이하여 걸어간다. 멀리 가까이 모스크 탑들이 유혹하고, 낡으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아름답다. 예쁜이들과 사진도 찍다. 사람들이 친절하다. 프리즈렌 알바니아 연맹박물관( Albanian League of Prizren 1878 )에 들어가니 역사적 인물들의 그림들이 전시돼있다. 이 멀 코소보에 남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그림을 감상하니 꿈같다. 시간이 많이지나 저녁을 생략하고 낮에 식당에서 가져온 커다란 빵을 뜯어먹으면서 스코프예로 향한다. 코소보여 안녕.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다. 여행은 떠나가기가 아쉬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