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쨔코프미술관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
<러시아 ․ 동유럽 문학, 예술 기행>
(김규진 교수 현장답사를 통한 러시아, 동유럽 문학 ․ 예술론)
책 머리에
트레쨔코프스키 미술관이 준 전율
레핀의 <트레쨔코프>
1989년 숱한 애환을 담고 있던 현대판 통곡의 베를린 벽이 무너지고 잇달아 동유럽 여러 나라들의 공산정권이 차례로 붕괴되었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소련의 수상 고르바초프가 내세운 페레스트로이카(재건)와 글라스노스트(개방)라는 정책 덕분에 공산권국가들 내에 점차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시민들이 이를 십분 활용하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0여 년간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 및 기타 동유럽문학, 예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 나라들을 가 보려고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공산주의국가들과 외교관계가 없어 가지 못했다. 책과 자료를 통해서만 배우고 알고 있던 이 나라들을 필자는 개방되자마자 첫해인 1990년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배낭을 메고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의 수도 및 주요 도시들을 방문하였다. 제 1차 러시아 동유럽 문학 · 예술 탐방은 당시 세계일보에서 현장에서 체험한 나라들의 생생한 문학 · 예술에 대해 쓸 수 있도록 물질적 지원을 해주어서 가능했다. 일차 방문은 1990년도이고 이차 방문은 1991년과 1992년도이니 여기에 기록된 통계자료 등은 물론 그때가 기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금단의 열매를 한 번 맛본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고 그 열매는 너무나 달콤했고 맛이 좋았다. 레닌그라드와 브라티슬라바의 미녀들처럼 그림속의 예술적이고 우아한 매혹의 여인들은 나를 계속 불렀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과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유럽 도시들이 회색빛에 사회주의 때깔이 역력했다. 그러나 순수하고 꾸미지 않은 시골 여인들처럼 동유럽 수도의 건물들과 박물관, 미술관의 그림들과 예술 작품들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에 보던 그림과 시카고대학에서 러시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에서 온 교수님들한테 듣던 이야기와 전설이 담긴 그림을 현지 미술관에서 볼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스크바에 있는 한 위대한 상인 트레짜코프가 기증한 돈으로 만든 트레쨔코프 미술관에서 느낀 전율과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만난 15세기의 마돈나의 미소는 아직도 생생하다. 또 러시아박물관(미술관)에서 본 위대한 작가들과 음악가들의 초상화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 토록 많은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렸는지? 그 예술성하며, 또 전쟁 중에는 박물관 직원들이 그 예술품들을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는 이야기 하며, 정말 러시아는 알면 알수록 더 신비에 가까운 나라 같다. 만년에 성자 같은 톨스토이가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 풀밭에 누워서 책 읽는 모습은 그가 농민인지 성자인지 구별할 수 없다고 하지만, 또 비록 그의 농노들은 병마에 시달려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순례자들도 있었다지만...그 뿐만 아니라 청춘시절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 톨스토이, 체홉,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에서 친밀히 사귀던 러시아의 주인공들을 거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때의 흥분과 기쁨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 있고 싶은 느낌을 주었다.
소련이나 러시아를 들어가고 나올 때의 복잡하고 불친절한 분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여름만 되면 나는 픽션이나 그림 속의 주인공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차이코프스키 등 위대한 작곡가가 남긴 선율의 유혹과 호기심으로 견딜 수 없다. 끝없는 유혹과 호기심 때문에 나는 레닌그라드를 두 번이나 방문하고 그 도시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거듭난 이후에도 벌써 여섯 번이나 방문하였다. 갈 때마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네바 강변에서 백야(白夜)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백야」에 나오는 여인을 만나 속삭일 때의 행복한 감정은 느껴보지 않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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