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체코유네스코 문화유산 탐방기 쿠트나 호라(Kutna Hora)와 세들레츠 해골교회 / 學山 김규진utná Hora)와 세들레쯔 해골 교회와 rlarbwlsutná Hora)와 세들레쯔 해골 교회
Figure 1 쿠트나 호라 성 바르보라 교회
쿠트나 호라는 프라하에서 가까워서 여러 번 가 보았다. 지난번 여름에 서 보헤미아 대학의 이르지 예젝 교수와 프라하에서 차를 몰고 가니 한시간만에 이 중세의 세계로 접어들었다..역사적인 도시에 도착했다. 예젝 교수일행이 작년에 서울에 왔을 때 우리 고향 영주와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안동 등 유적지를 보여주었더니 프라하에 있는 나를 데리려 차를 몰고 왔다. 자기 고향 쿠트나 호라를 꼭 이번에 보여줘야 한단다. 도시 이름 쿠트나 호라에서 호라는 산(山)이지만 쿠트나는 무슨 뜻이냐고 하니 이는 중세 때 한 수도승이 은광 원석을 발견하고 그 위에다가 자기 두건(kutna)을 덮어씌워 놓았다는 전설과 kutat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광석을 캐내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아무튼 광석과 은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름이다. 여름햇살이 아름답고 장엄한 고딕 성당에 비추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언덕에 있는 성당에 오르는 길 왼쪽 방향, 계곡 비탈에는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고 있다. 예젝교수 말이 이곳에서 포도가 처음 익을 때면 포도 축제를 개최 한다고 한다.
예젝 교수가족
11월에 언제 올 기회가 있으면 포도 축제에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시내 쪽으로 아름다운 건축물과 성당 탑들이 석양에 반사되는 모습이 환상 그 자체다. 갈 때마다 중세의 독특한 여러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젝교수 정원에서 필자
Figure 2 쿠트나호라
거리풍경
쿠트나 호라는 프라하에서 동쪽 방향으로 60km 떨어진 곳이다. 체코의 또 다른 중세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유적 도시이다. 14세기말 체코와 왕 바쯜라프(Vaclav) 4세가 이곳에 머무는 게 계기가 되어 도시가 더욱 호화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벌써 13세기에 이 지역에 은광(사진 20, 20, 20, 20)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 은광 때문에 체코왕국은 중세에 큰 부를 쌓게 되고 세력을 펼치게 되었다. 프라하의체코 왕국및 신성로마제궁의 황제인 카렐 4세 등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은전인 그로센(groschen)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현재도 관광객을 위해 옛날식으로 은전 만드는 것을 재현하고 있다.(사진6, 6, 6) 우리나라 이조 초기 사용하던 동전과 모양은 비슷하나 은으로 만들어져 더 정교하다. 아직도 옛날식으로 만드는 은전을 기념품으로 살 수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에 만든 골목길은 조약돌이 반들반들하다. 고풍스러운 골목길이 인간적이고 운치가 있다. 옛 귀족들이 살았던 거대한 건물안 여기 전기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건물자체도 볼거리가 많지만 각종 그림, 조각 등 전시회도 볼만하다.
Figure 3 쿠트나 호라 은광 입구
이도시를 상징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14세기에 만든 장엄한 고딕양식의 성 바르보라 성당(Kostel Svaté Barbory)(Kutna Hora and Vicinity책 사진7)과 성 야쿱성당(Kostel sv. Jakuba)이다. 바보라 성당은 이 곳 광산업자들의 수호자로 헌정되었다. 이르지 교수는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체코는 우리와는 달리 이처럼 성당이나 교회 또는 시청 홀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데 대게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만 모아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치룬다. 성당 주면이나 시내 기념물 앞에서 신혼부부들이 면사포를 쓴 체 기념 촬영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몇 컷 찍었다.성당 가는 길에서 스웨덴에서 온 가족관광객을 만났다. 유럽 사람들은 차를 몰고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음식과 와인을 즐긴다. 마침 7월말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슬라브학회 세미나 발표차 갈 계획이 있는데 스웨덴하고 체코하고 비교할 때 무엇이 다르냐고 하니, 여기가 기후가 좋고 옛 유적이 너무 많고 잘 보존하고 있고 또 음식이 싸고 질 좋은 포도주, 최의 맛 맥주와 각종 독한 과일 브랜디가 맘에 든다고 한다. 스웨덴은 술값이 노무 비싸고 여기처럼 다양하지 않다고 한다. 체코의 돼지고기 요리, 오리, 닭고기요리 등 풍부한 채소와 과일이 좋다고 한다. 동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고 있지만 체코요리가 다양하고 맛이 좋다고 한다.
Figure 4 성 바르보라 성당
그러나 스웨덴에도 너무 볼거리가 많으니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이국에서 만난 이방인과의 대화에서 두 문화의 차이와 비교는 재미있다. 400여 년 전 스웨덴군이 체코를 침략해서 왕궁의 모든 보화를 훔쳐간 사실을 이 스웨덴은 아는지 모르겠다. 시간 때문에 더 자세한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중고생 아이들도 영어를 아주 잘 구사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의 즐거운 여행이 부럽다. 나도 가족과 함께 왔더라면 더 느긋하게 여행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아들놈이 누워서 살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늘 하듯이 예쁜 옆서나 하나 사서 여행소식을 보내야지. 성 바보라 성당은 그 규모가 거대하고 내부 화려하고 거대한 장식이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 설명서를 좀 읽어보니 정말 대단한 성당이다. 중세 은광으로 쌓은 부를 종교계가 이러한 자랑거리를 만들었다. 체코는 어느 도시를 가나 중세부터 발달한 왕국과 영주들의 세력으로 수많은 성곽들과 성당들을 세웠다. 이러한 것들이 여러 전쟁을 이기고 남아서 후세에게 그 찬란한 문명과 역사를 전해주니 체코인들은 복이 많다. 체코는 유럽에서도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가장 잘 보존 된 나라들 중하나라니 복된 민족이다. 외세에 300여년 독립을 빼앗겼을 때는 그들과 더불어 유럽인으로써 살아오며 삶의 지혜를 이어온 덕분이다.
Figure 5 쿠트나호라 거리
이 덕분에 1995년 쿠트나 호라 시 중심부와 성 바보라 성당과 세들레쯔의 성모몽소승천성당이 유네스코 보존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인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 도시의 또 다른 볼거리는 13세기 후반 블라슈키 궁정 또는 이탈리안궁정(Vlašský dvůr) 에 있었던 화페 주조국이다.
이탈리안궁정은 14세기 바츨라프4세의 명령으로 축조되었다. 현재 시청 겸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400년전, 이곳에선 자체적으로 은화를 주조 하여 당시 유로화였던 ‘프라하 그로센’과 오늘날 달러의 어원이 된 ‘탈러’를 주조 하였다. 내부 투어를 하게 되면 프라하 그로센, 탈러 전시와 은화 만들기 시연이 준비되어 있다.
또 카멘니 대저택과 크니졔치 대저택 등 부르주아들의 대저택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크니졔치 대저택에는 한때 연금술사들이 머물렀다. 광산업과 관련된 흐라덱 성과 방어용 성벽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오늘날 중세 광산업과 은광에 대한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내 한가운데에 지하 은광 박물관에 들어가니 춥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들어간다. 한사람씩 겨우 다닐 수 있는 굉도가 2km 이상 펼쳐져 있다. 여름 더위를 잊고도 남는다. 우리나라도 폐광한 공산 굉도를 이처럼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Figure 6 세들레츠 헤골 교회
다른 종교적인 건물로는 대주교의 대저택, 라틴어학교, 세들레쯔(Sedlec) 수도원 성모몽소승천 성당(Chrám Nanebevzetí Pany Marie)( 사진13) 이다. 이 성당은 세들레쯔 수도원의 규모와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체코 뿐만 아니라 중부유럽 전체에서도 고딕양식으로는 가장 오래 된 역사를 자랑한다. 1320년에 완성되었지만 1421년 후스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어서 그 이후 3세기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1699-1709년에 걸쳐 대수도원장 스노페크(J. Snopoek) 덕택에 위대한 건축가 블라제이 산티니-아이흘(B. Santini-Aichl)이 원래의 고딕양식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서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풍으로 개축하였다. 그 독특한 양식으로 1995년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당당한 위풍을 자랑하는 입구에 서면 입이 딱 벌어진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없지만 날렵한 창문들, 외부에 버팀벽 없는 높이 치솟은 실루엣(사진14) 등이 겸손과 준엄함과 간소함을 자랑하는 시토수도회(11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수도회)의 원칙에 잘 부합하고 있다. 이 성당의 규모는 그 길이가 87m나 되고 라틴 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다. 내부 장식은 18세기부터 유래하는데 위대한 화가 브란들(P. Bran이), 윌만(M.L.Willmann), 리슈카(J.K. Liška)등과 조각가 약켈등의 작품들로 장식되었다. 실내 조각작품 사진(15, 15, 15, 15)
해골교회 장식
세들레쯔의 해골 교회(Kostnice Sedlec)(사진1, 1) 는 더욱 볼거리가 많다. 이 해골 교회는 13세기 수도원의 묘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예수가 십자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에서 가져온 흙을 뿌린데서 유명하게 되었다. 체코 국내뿐만 아니라, 폴란드, 바바리아, 벨기에 등지에서도 죽은 자들을 이 성스러운 곳에 장례하고 싶어 했고 또 중세 흑사병과 후스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자 묘지는 더욱 확장되었다. 그러나 묘지의 일부분이 파괴되자 한 수도승이 수 많은 해골과 뼈를 교회 안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1511년 한 수도승이 이 뼈들을 6개의 피라미드 형태로 쎃아 올렸다. 샹들리에(사진파일 3, 성체현시대, 슈바르젠베르크 가문의 문장모양의 해골조각(사진파일 2)은 1870년 린트(F. Rint)의 작품이다. 교해내부에 약 4만명의 해골로 만든 성스러운 조각들은 얼핏 보기에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과 영원성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교회내부에는 제단, 샨들리어, 성인들의 상들 거의 모두 30년 전쟁부터 유래된 납골당과 수 만 개의 인간의 뼈로 만들어졌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뼈 조각으로 마들어진 성당내부를 찾는 관광객이 세계 전역에서 몰려오곤 한다. 체코인들의 손재주도 대단하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도 독특하다. 성당 내부가 온통 너무나 많은 해골과 뼈로 되어있어 무서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 해골 몇 개로 한 두 군데 장식해놨으면 무섭고 오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봤다. 아무튼 관광객들에게는 많은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체코 나라답다. 이처럼 체코는 어디를 가나 상상을 초월하는 조형물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넘쳐난다.
Figure 7 2019년 6월 22-23일 쿠트나 호라 축제(바쯜라프 4 세와 왕비 Žofia 도시 방문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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