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에서는 왜 대중가수가 죽었는데 국장(國葬) 급 장례식을 치루는 가?
https://www.youtube.com/watch?v=Ktgq3lPN_Gc
그것은 아마도 그 가수가 어떤 정치인보다 워낙 대중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국가의 이미지에도 중요한 영향을 까쳤기 때문이다. 벨벳혁명이후 국장급 장례식을 받은 사람은 모테일(Otakar Motejl) 옴부즈만이 있다.
체조선수 차슬라프카(Caslavka), 인간 기관차로 불린 달리기 선수 자토페크( Zatopek)도 제안했지만 가족들이 사양했다. 체코에는 국립묘지에는 가수, 성악가, 작가, 배우 등 많은 예술가들의 무덤이 있다. 이는 예술을 숭상하는 체코민족의 전통이다.
프라하 성 비트 대성당에서 장례식
2019년 10월 1일 체코의 가장 유명한 가수, 체코 대중음악의 왕, 카렐 고트(Karel Gott)가 급성 백혈병으로 80세에 서거했다. 전국에서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이 그의 저택 앞에 몰려와 꽃을 놓고, 촛불을 밝힌다. 체코정부는 공식적으로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국장으로 할까 명예국장으로 할까하고 유족에게 물었다. 유족들은 간소하게 명예국장급이 좋다고 했다.
조핀 궁전에 차려놓은 고트의 빈소
비트성당에서 장례식
장례식 후 성당을 떠나는 모습
대통령은 대통령궁에 걸려 있는 체코 국기를 반 쯤 내려서 걸게 하고, 그에게 애도를 표했다. 장레식 전날 10월 11일 금요일에는 프라하 블타바 강 변에 있는 조핀 궁전에서 문상객들을 맞이했다. 전국에서, 해외에서 몰려오는 30만 명의 문생 객들이 2km가 넘게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의 장례식 날, 10월 12일을 임시 국경일로 선포했다. 그의 장례식 미사는 프라하의 대주교 두카(Cardinal Dominik Duka)의 집전 하에 체코 대통령이 죽으면 하는 프라하 성에 있는 비트 대성당에서 개최되었다.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만 성당 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고 일반 대중들은 성당 밖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장례식 미사를 지켜보았다. 체코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이를 전국적으로 방영했다. 아래 사이트서 그의 장례식 미사를 볼 수 있다. 2011년도 하벨 대통령의 장례식 미사도 여기서 개최되었다. 필자는 2001년도 체코 프라하 근교에서 체코인 비텔(Bytel) 교수(한국외대서 9년간 근무 후 은퇴)의 장례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 이 대성당에는 역대 왕들과 성인들의 무덤이 지하에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fpzJApwuis
고트 집앞에 팬들이 놓은 촛불과 꽃다발
Pietní místo u vily Karla Gotta na pražské Bertramce se stále rozšiřuje
서유럽에서 “프라하로부터 들려오는 황금의 목소리”라고 불린 고트는 1980년대 반체제 인사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비밀경찰에 불만인 반체제 음악가들을 옹호했다.
그는 지난 60여 년간 가수 생활을 하는 동안 해마다 체코 최고의 가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의 나이팅게일” 상을 42번이나 받았다. 그의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5천만 장 넘게 팔렸다.
“Divine Kája(성스러운 카야(카렐의애칭))”라고 불린 고트는 일생동안 수백의 여인들을 사랑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68세 때인 2008년에 32살의 이바나 마하츠코바(Ivana Machackova)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그의 아내 이바나와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고, 이전에 사귀던 여자와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체코와 이웃나라에서 약 삼십 만 여명이 “동방(동유럽?)의 시니트라”라고 불린 카렐 고트의 죽음을 애도하러 왔다. 그는 벌써 냉전 시대에 러시아, 동유럽으로부터 독일, 서유럽까지 유명세를 탔다.
젊은 시절 카렐 고트
그는 공산주의시대에 벌써 스타덤에 올랐고 1989년 벨벳 혁명 이후는 더욱 유명해졌다. 다른 체코 예술가들과는 달리 고트는 1968년 소련 탱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도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공연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냉전시기에 특히 독일과 러시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는 미국을 포함하여 유럽에서도 공연하였다. 그는 2000년과 2005년도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했다. 국내외 수많은 팬들이 카렐 고트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프라하의 코드 갤러리는 카렐 고트가 그린 다빈치의 모나리자<Leonardo da Vinci: Mona Lisa>를 패로디 한 그림을 경매에 내놨다. 그의 모나리자는 경매에서 350,000 코루나(17,500,000원)에 나왔다. 고트는 미술대학에 입학이 허락 되지 않아, 아마추어 화가로, 취미 생활로 상당히 수준 높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한국의 유명한 가수 조영남의 대작사건과는 달리 고트는 정말 훌륭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죽음에 삼가 애도를 표하노라. 學山 김규진 2019.10.05
카렐 고트가 그린 다빈치의 모나리자<Leonardo da Vinci: Mona Lisa>를 패로디 한 그림
수많은 사람들이 카레 고트 집 앞에 촛불과 꽃으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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