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유럽 가톨릭 전통의 최 변방 헝가리문화의 이중성: 다뉴브의 진주 부다페스트

Kyuchin Kim 2019. 4. 5. 11:33

10. 유럽 가톨릭 전통의 최 변방 헝가리문화의 이중성: 다뉴브의 진주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기차역: Budapest Keleti railway station

 

유고의 베오그라드로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새벽 열차로 갔다. 유럽의 열차여행은 낭만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의 모습도 즐겁고 침대 칸에서 밤을 지내면 여행 경비도 절약된다. 동과 서를 잇는 관문 부다페스트 기차역에는 새벽에 도착했다. 대합실에서 배낭족을 만나 기숙사 호텔과 민박 등의 정보를 입수했다. 택시유리창 밖의 부다페스트는 한 국가의 수도로서는 초라한 듯 했으나 시내를 거처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는 광경은 황홀했다. 아침의 거리는 생기가 돌고 자유로운 분위기다. 다뉴브강 양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옛 건물 군은 찬란했던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연상시킨다. 주로 학생 여행자들을 위한 기숙사 호텔은 싸지만 큰 길옆에 있어서 시끄럽고 자동차 매연으로 쾌적하지 못했다. 오토바이 엔진과 비슷한 동독제 자동차 엔진에 소련제 차체가 대부분인 헝가리 자동차는 파란 연기를 품어대며 시끄럽게 달린다.



헝가리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의 무궁화 꽃

 

헝가리 와인 토카이 재배지

 

로마 교황청이 내린 헝가리 왕관

개방이후 중부유럽에서는 프라하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다녀간다는 부다페스트. 매년 관광객의 수가 국민의 수(4천만 명)를 넘어선다고 한다. 동부, 중부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유흥산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소문대로 밤에 가본 호텔나이트클럽의 쇼는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줄 만 했다.

외국 손님이 들끓는 호텔에서 만난 헝가리인 들은 영어가 유창하나 거리의 일반인이나 택시 운전사는 의사가 통하기 힘들 정도다. 러시아어와 체코어로 다른 슬라브 국가들에서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헝가리에 오니 언어가 제일 문제였다. 헝가리어는 중부유럽 국가에서도 독특한 언어구조(우랄어의 한 갈래 또는 핀란드-우그르어의 한 갈래)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이해하나 말하기를 꺼려한다. 지금 관광 사업을 위해 영어 교육이 한창이라고 한다.

40여 년 만에 헝가리에는 또다시 동방문화(러시아 동방정교회)가 휩쓸고 지나가자, 서구의 자본주의 퇴폐문화가 먼저 눈에 띄게 몰려들어온다. 거리의 포르노 잡지가 즐비한 것도 그런 예의 하나다.(미국에서는 그래도 포르노 잡지는 아이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 전시하는데....) 역사적, 지리적으로 동방문화와 서양문화가 충돌하는 곳, 헝가리는 독특한 문화를 이룩한 문화민족 국가이다. 곳곳에 역사적 건물, 박물관, 미술관들이 서유럽의 찬란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장식에는 동양적(터키식)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이는 회화에서도 그렇고 리스트, 바르토크, 코다이의 멜로디를 들어봐도 비슷하다. 헝가리의 민족이 유럽문화사에 끼친 공헌은 지대하다. 특히 카톨릭 기독교의 최 동쪽 요새로 서구에서 찬양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독교 문명의 보루로서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국가위기 때마다 서구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늘 투덜댄다.(이는 폴란드의 경우도 비슷하다.)

역사가 V. 파다니이는 西의 사이에서란 글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동방민족과의 싸움에서 그들과 한편이 되기보다 최후까지 쥐여 짜여지곤 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대가는 무엇인가? 슬라브 민족과 루마니아 족이 우리의 대지를 탐내었을 때, 헝가리는 1920년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서방의 도움을 받아 영토 대부분이 분할되었다. 2차 대전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시련을 당하고 소비에트 러시아 제국주의의 발톱아래 무자비하게 던져졌다.”

헝가리는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 유고보다도 작은 소국이 되어 버렸다. 자원도 풍부하지 않다. 카르파티아 분지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헝가리 민족은 영토내의 9백여 만 명, 인접 루마니아 내에 250만 여명, 슬로바키아, 유고, 오스트리아에 100여 만 명이 살고 있고 서구 및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150만 여명이 살고 있다.



                              세멜바이스 (Ignaz Semmelweis)


헝가리 민족은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인류문화에 큰 공헌을 했다. I. 세멜바이스(1818-65)의사는 수백만 명의 산모를 살려내어 산모의 수호신으로 불린다. 그의 이름을 딴 세멜바이스 의과대학교(Semmelweis University)에는 전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려온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의 J. 볼리아의 공헌, 지구 물리학에서 B. L. 외트뵈시 역할(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등가의 법칙의 근본이 됨), 음악 분야에서의 리스트, 코다이, 바르토크 등과 같은 수많은 지휘자들, 문카치의 그림, 수많은 노벨 수상자들, 스포츠계의 공헌, 19세기 중엽 세계자유투사의 상징으로 알려진 코슈트의 독립운동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서방문화에서의 헝가리인 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늘 외톨박이로서 소외감을 느껴왔다. 그들은 1천년 역사(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동안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19세기 헝가리 최대 시인 산도르 페퇴피도 마자르 족의 운명을 애석해 하면서 삶과 죽음이란 시에서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고아라고 부르고 있다.

 

비록 내가 타민족(슬로바키아)의 아들이지만

나는 마자르 족을 돕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버림받았고

하늘아래 철저히 내던져진 민족이기 때문에.”

 

또 헝가리 계몽주의 시대의 위대한 시인 쾰체이 페렌츠는 하나님에게 오스트리아 황제의 압제로부터 헝가리를 보호해 달라는 힘누스라는 시에서 폭풍우 치는 시대 속의 헝가리민족의 행복을 구한다. 이 시는 나중에 헝가리 애국가로 불리게 된다.

 

하느님이시여,

헝가리 인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옵소서.

자비와 아량으로,

우리들에게 보호의 손길을 펴소서.

우리들이 적과 싸울 때에,

옛날의 불행한 역사가 우리들을 갈라놓았지만,

앞으로는 우리들에게 행복의 날을 주소서.

당신께서는 우리 민족의 과거와 미래의 죄를

이미 용서해주고 있나이다!“

 

20세기 위대한 헝가리 시인 엔드레 어디는 계시록 정신의 열정으로 헝가리의 東西양면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의 시 창작은 비록 파리에서 오래 머물러 서구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마자르의 동방적 요소인 상징성이 풍부하다. 작곡가 졸탄 코다이도 마자르의 이중성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헝가리 문화는 우리의 고대문화 전통과 서구 문화 사이의 영원한 투쟁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서구 문화의 수준에 도달할 때야 비로소 우리들 자신들에게서 평화를 찾을 것이다.”

동시에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한 야누스의 얼굴을 한 헝가리가 하나의 의지를 가진 하나의 정신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코다이는 즉각 대답한다. “우리는 동과 서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사실 헝가리는 이러한 다리 역할을 하면서 1천여 년 간 공동운명을 띤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인들과 함께 지냈다. 슬로바키아의 역사는 언어만 비슷할 뿐 모든 것이 헝가리 전통 속에서 이루어졌다. 슬로바키아가 독립국이 된 것은 1차 대전 후 체코와 합치고 나서였다. 현대 헝가리 최대의 작가인 네메트(1901-75)는 헝가리의 이웃나라들을 차례로 여행하며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면서 공동의 운명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똑같은 젖가슴에 의해 자라난 형제들이다.”

그 후 그는 실제로 주요 서유럽 어 뿐 아니라 세르보크로아티아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루마니아어를 배웠다. 그는 자기 창작의 깊이를 위해 직접 남 슬라브, 체코, 루마니아 작가들과 접촉했으며, 세르비아 소설가 I.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에 기반을 둔 드라반 강 위의 다리를 집필하기도 했다.

작가, 음악가 외 헝가리 미술의 경우도 강한 서구적 전통(특히 이탈리아, 프랑스)을 가미하고 있다. 헝가리 고대문화와 20세기 미술작품을 망라하고 있는 국립 미술관을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국립미술관: 헝가리전통과 서유럽 전통이 어울려진 회화의 보고



                          국립미술관(구 부다 왕궁):  

 

국립미술관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제1관광지인데 이는 헝가리 전성시대에 지은 왕궁을 헝가리 인민을 위해 1957년 박물관으로 전용한 것이다.

헝가리 국립 미술관의 부다 왕궁으로의 이전은 헝가리 문화유산의 유지 관리에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부다페스트의 국립미술관은 규모와 질에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미술관에 버금간다. 또한 각 시대의 예술은 진보적 정신으로 인한 예술가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것에 대한 과감한 폭로(문카치의 일련의 그림, L. 메드니안스키의 거지의 두상), 새로운 사상의 개념(사회주의 입장과 모더니즘 입장의 다양한 그림), 인민의 요구를 표현한 것들이 헝가리 미술의 주 모티브였다. 중세 석공의 작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가치가 있는 것을 창조하려는 욕구는 모든 예술가들의 목표가 되었다.




                                          미하이 문커치(Michaly Munkascy)자화상


국립박물관을 이전하기까지 헝가리 국립미술관은 구 대법원 빌딩에 자리했고 19세기부터 1945년 해방시대까지의 헝가리 미술사의 영구 보존 품을 전시했다. 19-20세기 컬렉션이 역시 국립미술관의 백미이다. 이 시대 또한 헝가리 민족의식이 고양된 시대이며 민족적 특성이 추구되고 위대한 화가 등이 등장했다. 197510, 부다 왕궁의 영구보존 전시회는 고대 헝가리의 그림 조각을 포함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웅장한 건물내부가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맨 먼저 보이는 것은 1천여 년 전 헝가리에 널리 퍼진 손바닥 모양 양식의 돌 조각 작품들이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락스의 돌이다. 그리고 12-14세기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잘 배치해놓고 있다.



                                 문커치: <견습생의 하품>

         

이 박물관의 고대 작품의 특징은 15세기 중엽 지그문트 왕 통치시대 이후 번창했던 후기 고딕 시대와 르네상스시대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은 이탈리아 다음으로 풍부하다. 17세계에 시작된 바로크양식의 전시물은 헝가리 민족성의 특질을 보여준다. 18세기 초 작품들은 해외에서 활동한 헝가리 예술인들인 J. 보그다니, A. 마니오키 등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며 18세기 헝가리 성직자와 귀족들이 외국 화가들을 초청하여 그린 작품들도 있다.

헝가리 미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M. 바라바스(1810-98)K. 마르코(1791-1860)는 헝가리 민속화와 풍경화를 정착시킨 대표적 화가라 할 수 있다. 바라바스는 헝가리 수난기에 정면 도전한 19세기 최초의 화가다. 빈과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후 1855년 페스트에 정착했다. 그는 개혁시대 동요기에 헝가리 작가-시인들과 정치적 지도자들로부터 큰 성원을 얻었다. 그는 헝가리 민족미술의 선구자였다. 그의 대표작 장터에 가는 루마니아인 가족(1843)은 당시 헝가리 영토인 트란실바니아의 광대한 대지를 배경으로 했고 민족의상을 입은 루마니아풍습을 형상화했다. 이는 당시 민속화로서는 최고작으로 평가받았다. 또 그의 비토부인의 초상화(1874)는 그를 초상화가로 인정받게 했다. 그는 당대 작가, 시인, 정치가, 배우, 귀족부인, 시민부인 등 많은 역사적 인물화를 그려서 헝가리의 역사를 붓으로 기록한 화가로 칭송 받았다.



마르코 (Károly  Marko)의 풍경화 <비셰그라드>(Visegrad)


헝가리 풍경화는 19세기 초반 마르코에 의해 맨 먼저 개척되었다. 외국 생활에서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비세그라드는 헝가리에서 살 때 그린 대작이다. 헝가리 영광이 장소를 그린 이 그림은 다뉴브강을 묘사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이다. 에메랄드빛을 띤 파란 언덕 위에는 폐허가 된 중세 헝가리 성벽이 있다. 강가에는 사각형 솔로몬 탑이 보인다. 헝가리의 유명한 솔로몬 왕이 한때 유폐됐던 곳이다. 어둡게 드리워진 전면 저 너머 멀리 다뉴브강 물 구비의 파노라마가 장관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균형 잡힌 구성과 미묘한 색깔이 주는 조화, 밑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헝가리 전통 음식 구와시(ulas)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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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나라 헝가리 기미민족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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