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가짜뉴스
學山 김규진 (한국외대 체코ˑ슬로바키아어과 명예교수)
“셰익스피어는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가짜뉴스이고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e)의 '영웅숭배론'에 나오는 구절로, 원문은 “(영국은) 인도를 언젠가 잃게 될 것이나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맞는 말이다. 이는 문학의 영원성을 강조한 표현이지 인도를 무시한 표현이 아니다.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e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 we cannot give-up our Shakespeare!" (Thomas Carlyle)
런던에서 가까운 영국 케임브리지 시에 위치한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의 Fitzwilliam College와 Churchhill College에서 2014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영국 슬라브 및 동유럽학회(basees-british association for slavonic and east european studies)가 개최한 2014년 연례 국제학회에 참석하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대학 중 하나이며, 연구중심의 국립대학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1209년에 설립되었으며, 800년 이상 동안 이어 온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세미나 후, 짬을 내어 케임브리지 시를 둘러보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유학 온 한국외대 용인 글로벌 캠퍼스 출신 구은조 양이 캠퍼스 여러 곳을 보여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세계 어디에 가도 이렇게 외대생들이 유학 와 있다. 학회가 끝나고 런던의 주요 문화 유적지, 옥스퍼드대학교와 셰익스피어 고향을 방문하였다. 런던에서 음악회도 뮤지컬 공연도 보았다. 슬라브, 동유럽학회(BASEES)참관기는 이글 맨 끝에 다루겠다.
변화무쌍한 런던의 모습
영국 슬라브 및 동유럽학회(BASEES) 국제학회 참가를 계기로 런던의 주요 문화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외대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학교 서비스디자인 석사 전공하는 외대 출신 염지홍군을 만나 런던 여행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묵은 한인텔(Hanintel) 빅토리아 유랑 하우스(빅토리아 지하철역 및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방) 주인님이 외대 스페인어과를 나왔다. 그분을 통하여 런던 공연의 주요한 정보를 얻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외대 동문을 만나고 도움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다.
10여 년 전인 2001년 프라하에 교환교수로 체류 중 런던 유럽한국학학회(AKSE)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와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 많이 변한 런던 모습에 눈이 어리둥절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 안 짓기로 유명한 런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서울처럼 군데군데 크레인이 하늘로 솟아 있어 격세지감을 느꼈다.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던 런던도 세월의 흐름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멜팅팟 (melting pot) 뉴욕처럼 런던은 다양한 인종들이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는 역동적인 대영국의 수도다웠다.
옥스퍼드 대학 동유럽, 러시아 관계 교수와 만나서 한국외국어대학교 간의 학술지 교환, 학생교환, 한국과 옥스퍼드 대학에서의 공동 학술대회 개최, 두 대학 간의 교수 및 학자 상호 교류 등에 대해서 뜻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한국외대 교수진들이 연구 년을 맞이하여 이곳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적극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도 큰 수확이다. 우리 두 교수를 점심에 초대했는데 무척 감사한데, 나중에 알고보니 영국에서 보통 교수가 손님으로 온 외국교수 둘을 대접할 여유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풍습이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옥스퍼드대학의 방문은 감격적이었다.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계시는 박진 전국회의원님이 옥스퍼드대학을 나와서 아주 저명한 정미령 교수님을 소개해주어서 잠시 만나 옥스퍼드 학술 분위기와 한국학자들의 방문 (연구년) 요령 등에 대해 충고를 받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내보다 몇년 선배이신 정미령 명예교수는 한국의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유학와서 학위를 하고 1990년대 한국인으로 유일한 옥스퍼드 정교수가 됐다. "일생을 한국보다 영국에서 더 오래 생활하니 영국사람이 다 되셨겠네요. 한국에 대한 향수가 어떠냐?", 고 물으니 "내머리는 여기 있으나, 가슴은 한국에 있다"고 하신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는 미국에서 80년대 10여 년 동안 유학을 하고 체코에 여려 번 다녀왔지만 영국을 심층 있게 방문하기는 처음이다.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Seeing is believing.)이라고 과거 대영제국의 영광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 거리
셰익스피어 생가 박물관,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 방문
셰익스피어는 <뜻대로 하세요> 2막 7장에서 제이퀴즈의 입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다음의 7단계로 구분한다.
“세상은 무대요, 온갖 남녀는 배우. 각자 퇴장도 하고 등장도 하며 주어진 시간에 각자는 자신의 역을 하는 7막 연극이죠. 첫째는 아기 장면. 유모의 팔에 안겨 울며 침을 흘리죠. 다음은 킹킹대며 우는 학동. 가방을 메고 아침에 세수해서 반짝이는 얼굴로 달팽이처럼 싫어하며 학교로 기어 들어가죠. 다음은 애인. 용광로처럼 한숨지으며 연인의 눈썹을 찬미하여 바치는 슬픈 노래를 짓고…(중략) 이상하고 파란 많은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은 제2의 소년기인데, 망각만이 있을 뿐. 이빨도, 시력도, 맛도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장이죠.”
영국 오기 전 이란 여행 안내책자를 사서 여행요령을 익히고 영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지만 영국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니 영국 런던 교포 저널리스트 권석하 씨가 쓴 “영국 속의 또 다른 영국 스코틀랜드 다시 보기”(영국과 스코틀랜드 간의 애증관계)를 읽어보니 두 민족 간의 역사적인 갈등을 알만하다. 또 인터넷에서 권석하 씨가 쓴 “연극판 촌뜨기 셰익스피어가 진짜 대문호 셰익스피어인가?”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세간에 안 알려진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 외 그가 주간조선에 연재한 영국통신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무척 흥미로운 유용한 읽을거리가 많았다.
이러한 분을 런던서 만나 안내를 받았으면 한다고 동행한 외대 러시아학과 홍완석 교수에게 이야기를 하니, 그분이 바로 1990년대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진도모피회사에서 모시고 일을 함께 했고, 그 후 영국에 정착한 분이라고 한다. 연락을 해서 만나 인사를 나누니 뜻밖에도 동향인 영주중학교 일 년 후배다. 내가 일 년 선배라고 깍듯이 대하는 모습이 영국 신사다웠다, 고향을 물어보니 봉화 닭실 마을이라고 한다. 영주 우리 무섬마을 종택이 닭실댁이라고 하니, 두 마을 간에 예부터 혼인관계가 있다고 한다. 초록은 동색인가보다. 우연히 고향 사람을 만나 런던의 영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이튿날 우리를 차에 싣고 셰익스피어 생가 박물관이 있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 upon-Avon)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하여 주어 너무나 행복했다.
권석하 씨 대단한 분이다. 훌륭한 후배다. 나도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권석하씨 글은 알아줄만하다. 그의 책 <영국인의 재발견>은 물론이요, 그가 번역한 <영국인 발견> 또한 대단한 필력을 보여준다. 그는 런던에서 보라여행사, 문화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는 IM컨설팅, 한식당, 일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시사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으며, <뚜르 드 몽드> 등 잡지의 편집위원 일도 하고 있다.
영국여행 가기 전에 영국사도 조금 훑어봤고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정보를 구해서 읽어봤지만 영주 동향 출신인 런던주재 저널리스트 권석하 씨가 번역한 <영국인 발견>은 영국을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됐다. 또 그가 오랫동안 영국 런던에 살면서 한국 신문에 쓴 글과 직접 쓴 글을 모아 출판한 <영국인 재발견>은 대단한 책이다. 내가 읽은 영국에 관한 책으로는 최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속 영국의 이미지와 실제 영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까? <영국인 재발견>은 과거와 현재,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을 살피면서 오늘날 영국을 만들었고 지탱하고 있는 영국인들을 통해 과연 영국의 실체적 모습을 규명하고자 한 책이다.
해리 포터나 비틀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토록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죽은 다이애나가 그토록 영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저자는 누구나 알기 쉽고,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체 책의 내용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어떤 내용도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논리와 그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이야기는 저자의 수고를 거친 결과물인 동시에 책 읽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영국 가기 전에 이런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누구나 영국 여행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이 책을 강추하고 싶다. 특히 해외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이니까.
셰익스피어의 극들은 그 당시 대중적인 놀이였다.
그림 봉화 닭실 양반 권 석하님과 셰익스피어 생가 앞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1616년 4월 23일)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영국 시골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하고서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다. 생전에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처럼 인간 내면을 통찰한 걸작을 남겼으며, 그 희곡은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당대 여타 작가와 다르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자연 그 자체에서 깊은 생각과 뛰어난 지식을 모은 셰익스피어는 당대 최고의 희곡 작가로 칭송받고 지금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권석하 씨가 소개한 옥스퍼드파의 셰익스피어 논은 흥미롭다. “옥스퍼드파의 주장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당시 귀족 지식인 중에서 누군가가 쓰고 시골 촌뜨기 주정뱅이 배우 셰익스피어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는 추론이다. 진짜 작가로 지목하는 인물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철학자, 귀족인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이름이 항상 등장한다. 그 이외에도 80여명이 넘는 귀족의 이름이 가능성 있는 작가로 거론된다. 이런 추정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2011년 토론토영화제에 나온 <익명>(Anonymous)이라는 영화다.(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비밀>로 소개되었다.) 셰익스피어에 관한 음모론을 다루었다. 이 영화에 보면 무대에서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데 밑에서는 관객들이 배우를 모독하고 작가마저도 모독한다. 이런 야간업소의 공연에 귀족이 대본을 써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 없어 셰익스피어를 대신 내놓았다는 뜻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생아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저자라는 ‘튜더 왕자(Prince Tudor)설’에 근거를 둔 흥미 본위 영화였다. 서로가 모자지간인 줄 모르는 두 사람이 애인이 된다는 기괴한 스토리의 영화였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진실논쟁은 무시되고 그의 작품들이 위대한 고전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마치 유행가가 세월이 지나면 국민 민요가 되듯이. 런던에 이주한 셰익스피어는 눈부시게 변하던 수도 런던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이 통치하던 이 시기의 런던은 많은 농촌 인구가 유입되어 대단히 북적거리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 특히 빈번한 연극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 거리를 제공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성장할 기반이 되었다. 런던의 강남인 신 개발지역에 자리한 오래된 셰익스피어 극장에 들어갈 기회가 있는데 그 당시 연극을 어떻게 즐기는지 실감이 났다. 그리스 반원형극장, 로마콜로세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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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가 여기에서 자주 공연된다고 한다. 권석하 씨는 주옥같은 소네트 시들과 촌철살인 하는 대화가 나오는 위대한 극작품 등 38편 전부를 과연 대학에서 교육받지도 않고 그래머스쿨만 나온, 가죽 제조업자의 아들 셰익스피어가 혼자 집필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고 하나 또 어느 누구도 그가 쓰지 않았다고 증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당시는 무명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논란이 인다고 한다.
하긴 꼭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학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영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해양작가로 평가받는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는 폴란드출신으로 폴란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영국에서 선원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배워 전업 작가가 되어서, <로드 짐> 같은 수십 편의 주옥같은 소설들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소설문학의 금자탑을 이룬, 내 친구 이문열 작가도 대학은 조금 다니다가 그만두었지만 지적인 문장을 기가 막히게 구사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가. 도산서원원장을 역이하셨던, 내 어릴 때의 사랑방 서당 훈장이신 집안 아저씨는 초등학교도 안 나와도 중국사와 우주만물에 대한 대단한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또 우리 어머니나 무섬동네 여러 부인들의 가사문학을 보면 어떻게 교육도 받지 않았는데 중국, 한국 고사와 속담과 사자성어를 그렇게 잘 구사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렇게 볼 때 대학을 안 나와도 연극계에서 배우로 대본작가로 생활 오래 하다보면 수많은 책을 읽고 위대한 작가와 교류하면 위대한 작품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아들도 이해가 간다고 한다.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꼭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활동한 라파엘 전파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76)는 오필리아의 마지막을 청초하고 극적이게 표현하고 있다. 밀레이의 치밀한 풍경 묘사와 시적인 감수성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을 살아가는 오필리아에게, 그녀가 설령 섬뜩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지라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뜻한다. 소설 속 등장하는 여러 상징들처럼, 밀레이는 그의 작품에 다양한 의미를 담은 꽃들을 등장시켰다. 고통을 뜻하는 쐐기풀, 순수한 데이지, 허무한 사랑을 나타내는 팬지와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양귀비가 오필리아의 곁을 지키고 있다. 출처: https://seoul-artist-group.tistory.com/65 [Seoul Artist Group]
항공기에서 즐긴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 이야기>
(44) 로미오와 줄리엣 1968년도 작품 중 "What is a youth"의 장면 - YouTube
마침 한국에서 유럽(체코)으로 향하는 대한 항공기 기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여기 셰익스피어 고향에 오니 지난번 비행기 기내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이 새삼 새로웠다.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이다. 서로 원수지간인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가문을 화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대사와 극적 효과로 많은 칭송을 받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5대 비극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왜 넣지 않는지 모르겠다. 셰익스피어 당대에서부터 <햄릿>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두 주인공은 젊은 연인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연극으로 공연된 이래 영화, 뮤지컬, 오페라, 음악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형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1996년 배즈 루어먼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클레어 데인스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몇 번인가 보았다.
영국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햄릿>에 얽힌 단편비디오를 보았다. 정말 뜻 깊은 여행이었다. 대한항공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이하여 이렇게 기내 엔터테인먼트로 셰익스피어에 관한 것을 준비하였다. 항공사의 배려가 고마울 뿐이다.
대학 시절 셰익스피어의 사대 비극을 읽고 엄청난 감격을 느꼈다. 어떻게 주인공들이 그렇게 기가 막힐 정도로 연극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명대사를 쏟아낼까? 또 그의 <햄릿>을 외대에서 25년째 “서양문학의 이해와 감상”이란 교양과목에서 가르치며 필독 작품으로 선정하여 매년 학생들과 토론한 것이 더욱 뜻 깊었다. 이 작품을 읽은 학생들은 한결같이 셰익스피어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햄릿>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햄릿>은 언제 읽어도 감격스럽다.
(44) 세상 가장 완벽한 3분 요약 《햄릿》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 YouTube
(44) Monologue of Hamlet 햄릿의 독백 - Hamlet(1948) - YouTube
“무대는 덴마크 왕국 엘시노어 궁전이다. 연극 시작에 망루에서 망을 보던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가 선왕의 유령을 본 이야기를 햄릿에 이야기한다. 덴마크 왕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동생인 작은 아버지가 왕이 된다. 어머니 거트루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채 두 달도 안 돼 그 작은 아버지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남편의 장례식 음식을 시동생과의 결혼식에서 먹을 정도로 어머니의 빠른 재혼으로 햄릿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햄릿은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를 통해 왕위와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햄릿은 미친 척 하며 현재의 왕에게 복수를 노리고 고뇌에 잠긴다. ”사느냐 주눅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 와중에 그를 사랑하던 간신의 딸 오필리어가 햄릿으로부터 모욕을 받고 자살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오필리어, 수녀원으로나 가라.”
햄릿은 확실하게 심증을 굳히기 위하여 아버지의 살해 상황을 연극으로 만들어 그 연극에 대한 작은 아버지의 반응을 보고 작은 아버지가 범인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망설인다. 인간을 살해하는 일이, 현재의 왕인 작은 아버지를 죽이기가 쉬운 일이 아님은 당연하다.
(44) 햄릿 세익스피어 - YouTube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남은 것이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잠들면서 수만 가지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최상의 것이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아마도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괴롭다. 이 세상 온갖 번민으로부터 벗어나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꿀 것인가를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이 같은 망설임이 있기에 비참한 인생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채찍과 조롱을, 무도한 폭군의 거동을, 우쭐대는 꼴 볼견들의 치욕을, 버림받은 사랑의 아픔을, 재판의 지연을, 관리의 불손을, 선의의 인간들이 악당들로부터 받고 견디는 수많은 모욕을 어찌 참아나갈 수 있단 말인가? 한 자루의 단검으로 찌르기만 하면,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진대, 어찌 참아나가야 한단 말인가. 생활의 고통에 시달리며, 땀 범벅이 되어 신음하면서도, 사후의 한 가닥 불안 때문에, 죽음의 경지를 넘어서 돌아온 이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들의 결심을 흐려지고, 이 세상을 떠나 우리가 알 수 없는 고통을 받기보다는 이 세상에 남아서 그 괴로움을 참고 견디려 한다.” <햄릿>, 3막 1장, 56
그러던 차에, 작은 아버지도 자신의 범행을 알아차린 햄릿을 없애기 위해 햄릿이 실수로 죽인 간신의 아들과 결투를 벌이게 한다. 그 결투 자리에서 햄릿도, 자기의 친구였던 그 간신의 아들 레어티즈도, 이를 지켜보던 현재의 왕인 작은 아버지도, 또 햄릿을 죽이려고 준비된 독주를 어머니 거트루드가 마셔서 죽게 되어 결국 모두 죽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엘시노어 궁전의 죄악과 욕망 그리고 사랑과 저주의 비극은 처참하게 끝난다. 햄릿의 우울한 우유부단은 가족 내 살인에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마음 상처로 인하기도 하지만 젊은이의 고귀한 이성이 사악한 권력욕에 눈먼 자의 죄악을 만날 때 겪게 되는 고뇌의 갈등이기도 하다. 햄릿의 비극은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고난의 한 예이다. 이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왕의 고뇌와는 다르다.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을 부정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학생들을 위해 셰익스피어 고향 집에 대해 동영상 녹음도 하였다. 런던이나 여기는 물론이요, 전 세계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탄생 450주년인 금년부터 서거 400주년인 2016년까지 3년에 걸쳐서 축제가 다양하게 개최된다. 영국에 오기 전 외대 석좌교수로 있는 이 문열 작가와 셰익스피어 고향을 가고 싶다고 하니, 자기도 가보았다고 하면서 전 세계 셰익스피어와 관련되어 밥을 먹거나 즐기며 사는 사람들의 숫자가 몇인 줄 아느냐고 한다. 몇백만 되겠지 했더니 2억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 통계가 어디서 나왔는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셰익스피어는 이제 영국 작가일 뿐 아니라 세계인의 작가인 셈이다.
셰익스피어 센터, 생가 박물관 방문
런던에서 차를 몰고 1시간 남진 가니 옥스퍼드가 나온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일을 마치고 옥스퍼드대학교 교수가 구내식당에서 접대한 점심을 염치없이 얻어먹었다. 권석하 씨 말씀이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 사람들 생활에서 남을 위해 점심 대접은 쉽지 않다고 한다.
옥스퍼드를 떠나 버밍엄으로 행하는 M40번 도로를 따라 가가다 다시 A46번을 달리니 영국 시골 풍경이 낭만적이다. 영국 시골 풍경을 읊은 영국 서정시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 살렷 브론테의 <제인 에어> 등 소설 속에 묘사된 시골 장면을 연상시킨다.
약 한 시간쯤 달리니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Upon-Avon)이 나온다. 권사장님이 운전을 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매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셰익스피어의 센터와 출생지 박물관 등지와 그의 아내인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가 살던 앤 해서웨이의 초가집(Anne Hathaway's Cottage)들 보기 위해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를 찾는다고 한다. 이 초가집은 내 고향 영주 무섬마을 우리 집 까치구멍 초가(Magpie Hole Thatched House)와 닮아서 정감이 더욱 간다.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통적인 초가는 “Thatched House”는 라고 부르는 갈대 등을 엮어 지붕으로 한 집이다. 정감이 가고 이 고풍스러운 초가집은 셰익스피어의 아내인 앤 해서웨이가 셰익스피어와 결혼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셰익스피어가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 당연히 이 집도 잘 가꾸어진 나무 정원과 수십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아늑한 집은 당시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잘 보존하고 있다.
앤 해서웨이 초가집 사진,
무섬 까치구멍 초가 (김규진가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븐은 영국 중남부의 워릭셔(Warwickshire)주의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이며,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이자 매장지이다. 이 도시는 거의 모든 것이 셰익스피어와 관련이 있다. 이 도시에서 셰익스피어 관련 관광지는 모두 여섯 곳이다. 셰익스피어 생가, 셰익스피어가 은퇴 후 노년기를 보냈던 뉴 플레이스 및 손녀가 살았던 내쉬의 집, 딸 수잔나가 살았던 집, 셰익스피어 묘지가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 부인 앤 해서웨이가 결혼 전 살았던 집,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어머니가 결혼 전 살았던 메리 아덴의 농장 등이 그것이다. 권사장님이 다음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와서 이 모든 곳들을 살펴보고 또 시간을 내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Royal Shakespeare Theatre)이나 스완 극장(Swan Theatre)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볼 것을 권한다.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어떤 시대였나?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시작했던 시대는 바로 튜더 가문의 엘리자베스 여왕(1533-1603)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First Folio 사진: ‘출판계의 성배’로 불리는 퍼스트 폴리오(the First Folio)
이제 셰익스피어 센터 박물관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모든 것을 전시해놓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권석하 씨가 퍼스트폴리오(First Folio)를 자세히 보라고 한다. 무엇이냐고 하니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출판계의 성배’로 불리는 퍼스트 폴리오(the First Folio)는 셰익스피어의 사후 7년째인 1623년 처음에 인쇄 발간된 전집으로 이미 인쇄 발간했던 18편과 미 발간 18편 등 36편의 희곡이 담겨있다. 최초의 셰익스피어의 작품 전집인 셈이다. 약 750-1000여권이 인쇄되었는데 현재까지 확인 된 것은 233권이고 미국, 영국, 일본 등 나라의 도서관에 있고 이곳에 한 권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부유한 상인으로 가죽으로 장갑 등 피혁가공업과 농사를 겸하여서 여유로운 살림을 꾸려나갔다. 나중에 작은 시장까지 지낸 유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역의 그래머스쿨로 진학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스트랫퍼드에 있는 예수회가 운영한 그래머스쿨의 기록에는 셰익스피어의 수학 기록이 없다. 1582년 그는 18세의 나이에 26세의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와 결혼했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지자, 학업을 중단하고 1850년대 런던으로 가면서 그는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는 셰익스피어는 그래머스쿨(Grammar School)을 다녔다면 그는 라틴어와 같은 기본적인 소양을 길렀을 것이다. 그래머스쿨은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라틴어를 중심으로 교육했다. 여기서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서와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11세에 입학한 그래머스쿨에서는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스어를 배우기도 하였지만 그리 유창하지 않았다. 동시대 작가 겸 극작가 벤 존슨(Ben Jonson)은 셰익스피어를 칭송하는 시에서 "Small Latin, Less Greek“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세간에는 이를 셰익스피어를 조롱하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셰익스피어는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과는 달리 대학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1590년~1613년까지 대략 24년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희·비극을 포함하여 작품을 총 38편 발표하였다. 1590년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비극10편, 희극 17편, 사극 10편, 장시 몇 편과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짐작케 하는 말로는 엘리자베스가 남긴 어록이 꼽힌다. "영국은 넘길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넘긴다."
셰익스피어는 고향에서 1616년 4월 26일에 아내와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셰익스피어는 고향의 성 삼위일체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안장되었다. 그의 흉상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판단은 네스터(Nestor)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포스는 그를 소유한다."
작품세계
셰익스피어는 생전에 이미 최대의 찬사를 받았고, 죽은 후에도 계속 숭앙의 대상이 되어 거의 신격화되었다.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Tomas Carlyle, 1795--1881),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영국은 언젠가 인도를 잃을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었다. 이 문구가 '인도를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꾸지 않겠다'로 와전되어 유명해졌다.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은 그의 문학적, 연극적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표현력에서도 드러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속한 극장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면서 구조의 제약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관객과 독자를 매혹한다. 같은 이야기 소재라도 셰익스피어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이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심지어 현대의 경영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도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또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처럼 셰익스피어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숱한 명대사를 남겼다. 작품 속 표현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고, 교묘하고 신비로운 표현은 그 속에 인생의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오늘날 영어의 풍부한 표현력은 셰익스피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의 작품이 가져다주는 문학적 향취에 취해 감탄하게 된다.
1593년과 1594년에 페스트의 유행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게 되자 셰익스피어는 사랑을 주제로 삼은 두 권의 서사시를 출간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레티아의 능욕>이 그것이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순수한 아도니스는 비너스의 성적인 접근을 거절한다. 반면에 <루크레티아의 능욕>에서는 덕있는 아내인 루크레티아가 호색한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이 시들은 통제되지 않는 정욕 때문에 죄와 도덕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시 모두 인기를 얻었고 셰익스피어 생전에 재출간되곤 하였다.
1609년에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출판한 책 중에서 연극적이지 않은 작품을 담은 마지막 책이었다.
(이상 셰익스피어 문학소개는 https://ko.wikipedia.org/wiki/윌리엄_셰익스피어 참조.)
셰익스피어에 대한 벽화
셰익스피어 센터에서 표를 사서 전시회를 보고 나가면 생가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 센터 내에는 셰익스피어 일생과 업적에 관한 자세한 소개 자료를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일대기를 다양한 모양으로 전시해놓았다. 영국답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초상화 등 그 당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세계 셰익스피어 번역 책도 전시해놓았다. 책방에는 전세계에서 출판된 책들이랑 셰익스피어를 기념하는 선물들을 팔고 있다. 센터 전시회를 보고 나와서 아름다운 정원을 거쳐 생가를 둘러보았다. 꽃이 만발한 소박한 정원을 지나 생가로 들어서면 2층 구조의 8개 방에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 생활을 보여주는 작은 물건들과 가구들을 진열해 놨다. 셰익스피어의 자취는 물론이고 그의 부모의 삶과 그가 살았던 16-17세기 영국 중산층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가죽제조업을 하던 아버지 시대부터 사용하던 건물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유년시대을 잘 보존 해 놨다. 생가를 둘러보고 뒷 뜰로 나오니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을 하던 17세기 복장을 한 배우들이 셰익스피어 연극 일부분을 연기한다. 연기가 끝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림 생가 침대 birthplace-bedstaves s-view-01
그림 셰익스피어의 결혼반지? shakespeare-s-courtship-view-07
도장이 새겨진 반지 Signet Ring, 1590-1610.
시간상 자세히 못보고 중요한 것들만 보았다. 다음에 다시 와서 여유 있게 보고 싶다.
그림 스트랫포드 그래머스쿨 책상 the-stratford-grammar-school-desk-01
도시 거리 사진
박물관을 나와 스트랫퍼드 어판 에이번을 둘러보았다. 영국의 튜더시대 르네상스 모습을 간직한 작은 시골 도시이다. 올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특별한 기념해라, 더욱 많은 관광객이 오고 있다고 한다. 이 작은 도시는 매력적이며 더욱 고풍스러운 매력을 발산하는 수많은 테라스가 딸린 카페와 서점 등으로 산책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시장 사진
스트랫퍼드 어판 에이번에 사는 Jane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오래 된 사장거리를 가보았다. 가판대를 벌여놓은 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각종 농산품, 공산품을 질서 정연하게 깔끔하게 진열대에 정렬해놓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연신 미소를 띠며 친절히 맞이한다. 여유로워 보인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온화하는 날씨라 더욱 주위 준위기가 좋다.
구경을 하고 피로해서 작은 호텔 카페에 들러서 낮은 안락의자에 피로한 다리를 펴고 길게 앉아 영국식 티타임(Tea time)을 가졌다.
영국 사람들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이렇게 티 마시는 것을 즐긴다. 양이 풍부한 케이크에 진한 홍차에 우유를 듬뿍 넣어 마시니 차 맛이 좀 그렇다. 권사장님에게 무슨 맛으로 홍차나 여러 차에 우유를 이렇게 많이 타고 꿀이나 설탕을 많이 타서 마시냐고 하니, 영국 차 마시는 법을 잘 즐기고 제대로 알아야 영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고 진담 반 농담 반 한다. 이층에는 객실들이 다양한 이름들(로미오와 줄리엣 홀, 햄릿 홀 등등)을 달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쪽 방문을 열고 젊은 일본 여자 둘이서 나온다. 일본어로 인사를 하니 활짝 미소를 띠며 반가워한다. 그리고는 일본말로 계속 말을 걸어온다. 나를 일본사람으로 착각한 모양 같다. 다시 영어로 이곳 인상이 어떠냐니까, 너무 좋고 영국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사진 성 삼위일체 교회: 영국 고딕 양식의 전형
여기 셰익스피어 묘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으나 세익스피아가 직접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
"벗이여, 부디 여기 덮인 흙을 파헤치지 마시오.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그리고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진저."
<아이반호>를 쓴 스코틀랜드의 작가 월터 스카 경(‘Sir Walter Scott)이 셰익스피어 묘지 방문(1828.4.8.)
그림 셰익스피어의 책상과 의자
Shakespeare’s Desk and Chair lie within the hornbeam circle and next to His Mind’s Ey
그림 셰익스피어 시대의 잉크병 inkwell-1607-view-5
성 삼위일체 교회
거리를 둘러보고 셰익스피어와 그의 가족이 안치되어있는 곳 성 삼위일체 교회를 방문하였다. 아담한 중세풍의 고딕양식의 교회가 정감이 간다. 내부로 들어가니 엄숙한 분위기에 장식이 아름답다. 동쪽 제단 위 창문에 아름다운 스테인리스 유리창에 성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교회 서쪽 벽에는 유명한 영국의 작가들과 시인들의 만신전을 만들어놓았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 안에도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영국작가 만신전이 있었는데..., 영국인들이 자국 작가들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런던 거리거리에 수많은 영국 장군들의 동상과 대조적이다. 여기도 많은 관광객이 순례하는 곳이다.
에이번 강에 위치한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는 정기공연이 열리며, 테디베어 박물관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나비농장과 전통 펍(선술집) 등을 포함한 또 다른 관광지 등이 있다. 시간관계상 이런데 모두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다음에는 아예 한 달 정도 영국을 세심히 보고 싶다. 그땐 꼭 셰익스피어 연극을 여기서 보고 싶다.
권석하 씨는 유럽 대부분 나라 여행안내 자격증을 목에 걸고 다녀서 모든 유적지에 출입이 자유롭다고 한다. 대단한 분을 만났다. 인터넷 신문에서 읽은 글들이 아주 유려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뜻 밖에 고향 호인을 만나 아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영문학, 연극계와 세계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칭송받고 있지만, 그도 사람인 만큼 작품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인생 자체가 그렇게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이랬다" 라고 정리하는게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개인사나 사상에 대한 비판은 굉장히 애매해질 수밖에 없으니 그에 대한 비판은 조심해서 들어야한다. 그에 대한 진실 평가는 아직 진행중이다.
다음 여행기에는 런던의 모습을 기대하시라.
그림 홍완석교수와 필자, 그림 캠브리지 음악회
참고문헌:
권석하:
역서: <영국인 발견>
저서: <영국인 재발견 1> <영국인 재발견 2>
[스페셜 리포트] 연극판 촌뜨기 셰익스피어가 진짜 대문호 셰익스피어인가 (chosun.com)
https://ko.wikipedia.org/wiki/윌리엄_셰익스피어
영국 자유여행 23: 셰익스피어를 보려면 셰익스피어 센터(Shakespeare Centre) 부터 가야 함 (영국 스트랫포드 어펀 에이븐, 170819, 토)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https://wonysworld.tistory.com/221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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