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불가리아의 고도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urnovo)
23. 불가리아의 고도 벨리코 터르노보(Veliko Turnovo)
벨리코 투르노보의 차르 성Tsarevets Castle in Veliko Turnovo, Bulgaria [Full HD] / ЦАРЕВЕЦ - Велико Търново
성당
소피아에서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티로 자동차로 가는 길에 불가리아의 고대 역사적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에 들렀다. 터르노보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셀러드와 돼지고기요리, 밥, 콩, 감자요리와 꼬소한 빵, 맛좋은 포도주를 반주로 멋진 점심을 먹고 시내 관광을 나섰다. 짜레베쯔 언덕의 성당유적지와 옛집이 겹치듯 촘촘히 들어선 모습, 성벽, 파수대, 성문의 흔적등 옛 수도의 영화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처럼 소피아를 벗어나면 불가리아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산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아름다운 수도원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문화와 유사하다. 그중 소피아 남쪽 130km 떨어진 릴라의 깊은 산 속에 있는 릴라 수도원은 발칸반도의 수많은 정교회 수도원의 총본산일 정도로 화려하고 역사적 중요성이 높다. 이는 중세의 문화와 교육의 가장 활발한 센터였다.
불가리아가 존재한 이래 수도원은 교회의 구성물이나, 속세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그리고 종교적 완벽성을 위한 피난처만은 아니었다. 9세기에 종교를 받아들여 시작된 수도원은 국내적으로 정신적, 문화적 실체가 됐으며 권위, 영광, 권력의 상징도 되었다. 수도원은 이런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동시에 철학자, 작가, 문헌학자, 화가들에게 봉사하는 수단도 됐다. 즉 종교뿐 아니라 전 문화적 활동이 이 수도원 벽 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4-19세기까지 외세의 지배기간 동안 민족의 본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수도원이 문학과 회화, 예술의 전당과 건축 기념물의 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다. 수도원은 불가리아 문자와 문학이 시작된 곳으로 민족의 희망과 열망의 중심지였으므로 수도원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불가리아의 정치적 역사이기도 하다.
불가리아 자존심의 상징, 유럽 르네상스의 발상지: 수도원 문화
릴라수도원
릴라수도원 이콘화
불가리아 이콘 화
릴라수도원 내부
슬라브문자와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의 필두로, 그리고 비잔틴 침략자(11-12C)에 대한 교두보의 역할을 거쳐, 오토만 지배시대 동안 전 국민에 의해 비극적이나 용감한 연대기의 기록 기관으로서 수도원은 불가리아가 직면했던 시련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수도원 문화’ 또는 ‘수도원에서 창조된 문화’는 본질적인 민족문화의 유기체이다.
886년 보리스 1세는 고대 불가리아 문자 창제자인 키릴과 메토디우싀의 제자들에게 프레슬라프 근교에 성 판텔레이몬 수도원을 세워 편의를 제공했다.
그 후 10세기 불가리아의 민족 성자 릴라 출신 요한이 ‘릴라수도원’을 창설했고 이는 여러 세기 불가리아 민족의 상징이 되었으며 문학자, 화가들의 창조적 영감에 강력한 자극을 제공했다. 이는 중세의 문화와 교육의 가장 활발한 센터였다.
제2 불가리아 제국시대(1185-1396)에는 건축양식에 불가리아의 지방적 요소가 더 현저했다. 이 시대에는 중앙교회의 간섭 없이 독자적 경영을 유지했다. 이 시대에 벨리코 터르노보가 새 수도로 지정되어 플리스카와 프레슬라프의 수도원 건축양식이 이곳에 재현되었다. 벨리코 터르노보 시에는 불가리아 고대문화의 집산지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곳곳에 보였다. 특히, 짜레베쯔 언덕의 성당 유적지와 옛집들이 겹치듯이 촘촘히 들어선 모습은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 루마니아 등 옛 공산주의 국가들은 생활은 어려워도 문화유적보호에는 엄청난 예산을 돌리고 국민의 산 교육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은 본받을 만하다.
민속공예, 자수, 이콘화와 현대그림을 파는 거리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들고 있었다. 이 터르노보의 동방정교회 미술학교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찍이 러시아의 화가 안드레이 그라바르가 새로운 화풍을 세웠던 곳이다. 릴라 수도원의 흐렐로 교회탑에 있는 벽화가 현존하는 이 화풍의 걸작으로 이미지의 심리적 개성화가 인물화에 특히 강하고, 인간의 상태와 경험의 묘사가 뛰어나다.
불가리아 민족부흥기(18-19)는 계몽시대의 수도원 건축양식을 띠었고 교육이 이때부터 수도원 바깥에서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종교적 편파주의에서 깨어나 교육의 민주화과정이 시작됐다. 정치, 이념, 경제적 요인에 의존했던 건축양식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바뀌기 시작했다.
정치적, 사회적 삶의 조건이 변화되면서 창조적 예술의 의식도 변했다. 기독교 신화의 주인공들이 자주 평범한 일상의 불가리아인의 모습으로 바뀌고 성서의 복음적 장면들이 사회의 도덕적 내용과 뒤섞였다. 민족독립시기의 애국적, 민족주의적인 사상이 예술, 문학 전반에 반영되었듯이.
전설에 의하면 불가리아인들은 성령(Holy Spirit)과 대화를 할 수 잇는 정신적 힘을 가졌다고 한다. 전설을 믿기 어렵지만 예술혼을 불사르는 정열로 이콘을 그리는 불가리아 예술가들의 작업하는 화실을 보면 누구나 그들은 불가리아의 자연처럼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는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불가리아 학자들은 성화에서의 르네상스는 불가리아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한다. 사실 러시아 이콘이나 다른 정교회 이콘과 비교해 보더라도 불가리아 이콘의 화려한 색상과 다양성이 주는 아름다움은 인류가 만든 위대한 보물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보야나 성당 벽에 그려진 (11-12C)벽화는 초기 르네상스의 대작이다. 이는 이탈리아보다도 르네상스가 먼저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방정교회 미술학교 중심 수많은 화가 배출
조그라프Zahari Zograf 자화상
키릴과 메토뎨이(조그라프) 1848
불가리아의 위대한 3대 예술가는 조그라프(1810-1853), 드미트로프(1745-1819), 도스페프스키(1823-1878)이다. 조그라프는 근대 불가리아 예술의 아버지로 이콘과 벽화뿐 아니라 르네상스 정신이 깃든 리얼리즘화풍의 대작을 남겼다. 외적의 침입 시마다 파괴되면 또 재건하는 등 파괴와 재건을 되풀이하면서 불가리아인들은 기독교 전통, 종교적 축제, 민속이야기와 전설을 끊임없이 되살렸다. “아름다움은 죽지 않는다”라고 불가리아인들의 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878년 터키로부터 해방된 후 이콘은 소피아에 새로 창설된 ‘예술대학’에서 재개됐고 불가리아 예술가들은 유럽기법을 옛 이콘화법에 도입했으며 옛 전통을 재해석했다. 불가리아 이콘화는 1천 여년 내려온 전통으로 독특하다. 바늘로 본을 뜬 모델을 부드럽게 밑바닥 칠한 나무판에 차콜로 그린다. 그 다음 엄격히 고정된 단계에서 템페라(tempera)화법이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배색, 금박둘레장식, 부드러운 칠로서 끝마무리를 한다.
이렇게 하는 동안 자신감 있는 붓놀림, 정확한 투시력, 종교적 영감, 인내, 확고한 지식이 요구된다. 대개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교육과 기술연마로 이콘화 규범이 엄격히 전수된다. 보물처럼 다루어지는 18세기의 에르미니(Ermini)이콘화 교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만일 그대가 아름다운 이콘을 보면, 종이를 꺼내 기름칠을 하고 이콘 위에 입혀 표시한 다음 바늘로 윤곽을 그려라.”
불가리아 여인의 모습을 한 이콘(ICON)속의 마리아상은 토속화된 기독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이콘에 묘사된 성자들의 의상은 불가리아 민족의상이다. 예수와 마리아, 성자들의 불가리아화가 이채롭다(우리나라도 기독교문명을 받아들인 지 2세기가 넘었으니 한국화한 성화를 창조할 만도 하다. 한복을 입은 예수와 마리아상 등...)
소피아대학 학생들
소피아 대학 로비에서 만난 헤밍웨이와 고리키, 톨스토이를 즐겨 읽는다는 아리따운 법대 신입생으로 이콘화 목걸이를 한 베라, 베토벤과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한다는 영문과 여대생 스네쟈, 스테판 쯔바이크와 푸시킨, 체홉을 즐겨 읽는다는 여교사 벤짜, 내게 「성 모자상」이콘을 선물로 준 화가 보아틀레프, 현지 한국 코트라의 이종태 관장 등,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것은 불가리아인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지만 현재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실업과 물가고보다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국민성이라는 점이다. 이는 변혁기 동부, 중부유럽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소피아 대학교
성 키릴 과 메토디우스 국립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