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회화의 특징: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11. 헝가리의 회화의 특징: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러시아 미술관의 전통은 한 깨친 상인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폴란드 국민은 히틀러가 지상에서 바르샤바를 없애 버리려고 포격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문화유산을 철수시켰다. 그들은 민족어와 문화유산을 보존하면 어떠한 외세의 침략에도 민족정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동과 서의 잦은 침략에도 불구하고 중부유럽 국가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헝가리 경우도 비슷하다. 동방문화와 서방문화의 교량역할을 하면서 서방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찬란한 문화유산을 박물관 미술관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
지난번에 소개한 헝가리 19세기 회화의 대가 바라바스와 마르크의 다음 세대인 수많은 화가들은 헝가리 회화를 드디어 그들이 바라던 서구 수준에 올려놓았으며 헝가리의 민족적 긍지를 드높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헝가리의 각 예술분야(문학, 음악, 조각, 회화 등)는 헝가리 문화유산 중 가장 찬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詩에서 E. 어디, M. 버비츠, 소설에서는 농촌 및 풍속소설의 대가 D. 서보(서보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풍의 소설로 유명함), 인상주의 기법 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D. 코스톨라니, 헝가리정신과 유럽정신을 소유하고 시 소설 극작 및 비평분야에 탁월한 공을 새운 L. 네메트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헝가리문학을 빛냈다.
미술분야에서는 미하이 문커치, 라슬로 팔, 시니에이 M. 팔, 라슬로 메드니안스키, 러요스 굴라치 등이 헝가리미술을 대표하고 있다.
고아, 목수의 조수에서 위대한 화가로 성장한 문카치
문커치 자화상
문커치는 드라마틱한 열정으로 창작을 했고, L. 팔은 서정적 통찰력으로, S. M. 팔은 시각적 센세이션과 열정적 쾌락을, 메드니안스키는 애환과 영민함을 가지고 위대한 회화를 창조했다. 이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굴라치는 이들과 달리 나름대로의 환상적 모티브를 추구했다.
헝가리미술사중 가장 위대한 화가는 문커치(1844~1900)다. 그는 7살에 고아가 되어 목수의 조수로 일하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림을 취미로 그리다가 무명의 시골화가 E. 사모시의 눈에 들어 부다페스트, 빈, 뮌헨, 뒤셀도르프 등지에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한 후 파리에 정착했다.
문커치는 당시 유행하던 어떤 학파에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의 화풍을 개척했다. 힘과 색깔의 관계에 대한 그의 심오한 지식은 모든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갈색과 회색의 깊고 부드러운 톤과 가치의 부드러운 변형은 그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흰색의 드라마틱한 사용법은 ‘빌라도 앞에 선 예수’등 종교화 삼부작에서 독특하게 사용된 그의 기법이다.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는 예수의 모습은 당당하기만 하다. 반면 위엄을 갖출 법한 빌라도의 곤혹스러운 표정이 인상 깊다. 한편 두 인물을 흰색으로 부각시켜 주위사람들보다 눈에 띄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화풍은 문카치의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 1881
골고다 Golgota 1884)
문커치 <에코호모: 이 사람을 보라, Ecco Homo>(Behold, the Man), 1896
뒤셀도르프에서 스승 L. 크나우스 밑에서 창작할 때 문커치는 서민의 일상생활을 즐겨 다루었다. 헝가리 농민의 생활에 대한 추억을 그림 속에 표현했고 후기에는 비극적 정신의 전환을 반영한 사회생활의 비관적 면을 즐겨 다루어 훗날 민중화가로 불리게 된다.
저주받은 감옥
26살 때 ‘저주받은 감옥’을 그렸고, 1870년 파리미술 전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해 일약 세계적 명성을 획득했다. 파리에서 친한 친구의 아내였던 젊은 귀족과부 바론 드 마르헤스와 결혼했으며 그때 大作 ‘전당포’, ‘방랑자’, ‘휘젓는 여인’등을 그렸다.
역사적 장르화에서 문카치는 비더마이어 양식(19세기의 간소한 가구양식)의 구성적 특성인 무대 같은 구성, 통일, 기법에 정통했다. 즉 역사와의 중심인물이 다른 여러 인물들에 의해 시선을 받고 있다(흰색을 사용, 주인공을 부각시킨 것도 그 일례.). 그리고 이 중심인물을 바라보는 인물들도 결국 감상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다.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저주받은 감옥’, ‘실 잣는 사람들’, ‘골고다’, ‘아르파트의 헝가리 정복’등이다.
문커치의 풍경화는 밀레의 ‘만종’ 등으로 대표되는 바르비종 풍을 따르고 있으며 따스하게 느껴지는 초록, 갈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는 30여 년 화가생활 중 대형작품을 비롯해 6백여 점의 그림을 그렸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세기 헝가리 소설가 지그몬트 모리츠는 젊은 노동자의 예술교육용 책자에서 문커치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문카치는 비록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고 고난 속에서 자랐지만 전 인류의 애도 속에서 위대한 화가로 생애를 마쳤다. 이는 현대판 성공의 전설이며 모든 젊은이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이 묘사가 금세기 초 헝가리 민중에게 심어진 문커치의 이미지다. 현재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은 유럽 여러 도시에 전시된 그의 종교화를 보러 몰려들고 있다.
한편 1920년 젊은 전위파 화가들(파요스, 펠레프 등)은 문커치가 아방가르드에 무감각하다고 사정없이 공격했다. 사실 문커치는 젊은 나이에 성공해 1870년대 인상주의를 반대하는 그룹에 가담했다. 쿠르베, 마네, 르누아르, 세잔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먼지투성이 길’은 후기인상주의 기법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문커치 <휘젓는 여인>
그의 ‘저주받은 감옥 I'과 ’저주받은 者‘(1869~72)는 헝가리의 한 반항아가 사형선고를 받고 저주받은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고뇌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여러 가지로 고난 받는 민중의 한을 상징하고 있어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땔감을 진 여인‘ ’휘젓는 여인‘등도 민중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시니에이 M. 펄(1845~1920)은 문커치가 표현하고 있는 내적 힘은 결여돼 있으나 내면의 정신적 안정을 표현하고 있는 화가다. 투명하고 청아한 미술 영역에 도달한 유일한 헝가리 화가이다. 그는 뵈클린의 신화적 그림에 관심이 있었으나 곧 그의 현대감각이 넘치는 밝은 색소의 사용에 몰두했다. 그는 광대한 자연다운 채색양식을 즐겨 사용했다. 물감의 진동하는 선과 잘 감지된 톤은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의 주 구성요소는 햇살, 젊음, 고요함, 화창함 및 자연의 신선미와 상쾌한 분위기다. 그는 아버지에게만 비밀로 고백한 그의 시를 미술에 도입시켰다.
‘저는 저를 이끄는 별로서 오직 하나의 스승인 ’자연‘을 따르기로 했어요’
온갖 눈부신 색채를 사용한 ‘사랑스러운 한 쌍’, ‘오월의 소풍’등은 밝고 신선한 느낌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 그의 이러한 外光派 그림은 당시 유럽에서 인기가 없었다.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 전기단계로 너무 시대에 앞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약 20여 년 간 붓을 놓고 신선한 자연을 체험하고자 농부생활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종달새’, 자기 아내를 그린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나이팅게일’ 등이 있다.
펄의 <종달새>( PAL SZINYEI MERSE (1845/1920),
펄의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세기말인 1896년에 와서야 그의 예술의 독창성과 위대성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국과 외국 등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같은 해 그는 헝가리 바르비종 그룹인 ‘나기바니아’에 가입했다. 그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선구자로서 헝가리 젊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러요스 굴라치(1882~1932)는 금세기 첫 20년 간 유행하던 화풍에 관계없이 독자적인 그림을 그렸다. 14~15세기 이탈리아 예술과 문학의 소재가 주테마였다. 그는 이탈리아 도시에서 살면서도 도시 일반인들보다는 고상하고 환상적인 인물을 꿈꾸었다. 이탈리아 고전문학의 주인공들을 자주 그렸다. 특히 단테를 좋아했고 베아트리체를 많이 그렸다.
굴라치 러요스의 <파올로와 프란체크카>
Gulácsy Lajos (1882-1932) Paolo and Francesca (1903).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모티브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형상화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비극적 주인공을 그린 것이다. 형수와 사랑에 빠졌다가 형한테 함께 죽음을 당한 애환을 묘사하고 있다. 세밀한 드로잉, 인물의 부드러운 멜랑콜리와 심벌리즘에 대한 화가의 반응과 문학에 대한 관심은 영국의 라파엘 전기시대 화가들의 경향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헝가리가 추구하던 서구문화의 수준에 도달한 작품의 하나로서 드디어 정신적 문화적으로 안정을 찾은 헝가리정신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고전을 사랑하는 헝가리인들의 심금을 울린 작품이다. 또한 문학과 미술의 밀접한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발라드와 민요가 풍부한 나라가 헝가리다. 한경민 교수가 번역한 헝가리 발라드를 읽어보자.
결혼하는 왕자
1. 옛날 한 왕자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옷을 입네, 옷을 입네 농부의 옷을.
2. 이웃에게 가네, 부유한 원님의 딸에게로,
이랴, 어서 가자 부유한 원님의 딸에게로.
3. 안녕하시오, 부유한 원님의 따님,
이랴, 어서 가자 부유한 원님의 따님에게.
4. 앞으로 오세요, 의자에 앉으세요,
이랴, 어서가자, 의자에 앉으세요!
5. 여기 앉으려고, 이리로 온 것이 아니오,
이랴, 어서 가자, 여기 앉아 보자.
6. 내게 시집 올 건지, 아닌 지를 알아보려고: 여기 온 것이요,
이랴, 어서 가자, 내게 시집 올 건지, 아닌 지.
7. 난 당신에게 시집가지 않아요, 당신에게, 농촌 총각에게,
이랴, 어서 가자, 당신에게, 농촌 총각에게.
8. 이웃집으로 건너갔네, 가난한 사람의 딸에게,
이랴, 어서 가자 가난한 사람의 딸에게.
9. 안녕하시오 가난한 사람의 딸,
이랴, 어서 가자 가난한 사람의 딸에게
10. 앞으로 오세요, 의자에 앉으세요,
이랴, 어서가자, 의자에 앉으세요!
11.여기 앉으려고, 이리로 온 것이 아니오,
이랴, 어서 가자, 여기 앉아 보자.
12. 내게 시집 올 건지, 아닌 지를 알아보려고: 여기 온 것이요,
이랴, 어서 가자, 내게 시집 올 건지, 아닌 지.
13. 당신에게 가겠어요, 당신에게, 당신에게, 농촌 총각에게.
이랴, 어서 가자 당신에게, 농촌 총각에게.
14. 왕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시금
옷을 갈아입네, 옷을 갈아입네 왕의 옷으로.
15. 이웃집으로 건너가네, 부유한 원님의 딸에게,
이랴, 어서 가자 부유한 원님의 딸에게.
16. 안녕하시오 부유한 원님의 딸,
이랴, 어서 가자 부유한 원님의 딸에게.
17. 하늘이 내게 당신을 보내셨군요, 당신을, 왕자님을
이랴, 어서 가자 당신을, 왕자님을.
18. 앞으로 오세요, 안락의자에 앉으세요.
이랴, 어서 가자 안락의자에 앉으세요.
19. 나는 여기 앉으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이랴, 어서 가자 여기 앉아보자.
20. 나에게 시집 올 건지, 아닌지? 그것을 알아보러 왔오:
이랴, 어서가자 나에게 시집 올 건지, 아닌지?
21. 당신에게 가겠어요, 당신에게, 당신, 왕자에게!
이랴, 어서 가자, 당신에게, 왕자에게!
22. 이제는 소용없오, 시집온다고 해도 소용없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가 농부였을 때는 확답을 듣지 못했소!
23. 이웃집으로 건너갔네 가난한 사람의 딸에게로,
이랴, 어서 가자 가난한 사람의 딸에게로.
24. 안녕하시오 가난한 사람의 딸,
이랴, 어서 가자 가난한 사람의 딸에게.
25. 하늘이 당신을, 당신을, 왕자님을 저에게 보내셨군요,
이랴, 어서 가자, 당신을 왕자님을!
26. 앞으로 오세요, 의자에 앉으세요,
이랴, 어서 가자 의자에 앉으세요.
27. 여기 앉으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오,
이랴, 어서 가자 여기 앉으려고.
28. 나에게 시집올 건지, 아닌지?: 알아보려고 왔오
이랴, 어서 가자 나에게 시집 올 건지, 아닌지
29. 당신에게 갈 수 없어요, 당신에게, 왕자님에게,
이랴, 어서 가자, 당신에게, 왕자님에게.
30. 한 농촌 총각과 저는 이미 약조를 했어요.
이랴, 어서 가자 한 농촌 총각과.
31. 나요, 내가 바로 그 농부요, 그들은 서로 끌어안았네!
이랴, 어서 가자 그들은 서로 끌어안았네!
두 송이의 수국(Két kápolnavirág)
어머니,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줄러이 부인
저는 카다르 커터를 맞아들이겠어요,
우리 소작농의 아름다운 딸을.
안 된다, 아들아,
줄러 마르톤아,
오히려 높은 귀족의 아름다운 딸을
맞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제게는 높은 귀족의 아름다운 딸이
필요치 않습니다,
제게는 오로지 카다르 커터만이 필요합니다,
우리 소작농의 아름다운 딸이!
오냐, 그럼 가도 좋다, 내 아들,
줄러 마르톤아,
나는 너를 내 자식이 아니라고 여기 마,
이전에도, 앞으로도!
여봐라,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마차를 대령하고, 말들을 데려와라!
말들을 붙잡아 매고, 그들은 길을 떠났다.
그에게 카다르 커터가 손수건 하나를 주었네:
손수건의 색이 핏빛으로 변하면,
그 순간에 내 삶이 변한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쥴러 마르톤은 산을 넘어 계곡을 지나갔네
어느 날 화려한 손수건 색이 변한 걸 알게 되네.
하인들아, 하인들아, 친절한 내 하인들아:
땅은 하느님의 것, 말은
돌아가자, 불타던 석탄이 이미 없어졌으니,
카다르 커터는 벌써 오래 전에 끝났다!
마을 입구에 돼지치기가 있었네:
돼지치기야, 무슨 일이 있는지 들었느냐?
우리는 잘 지냅니다만, 당신에게는 나쁜 일이 있어요.
당신 어머니가 그녀를 끌고 가서,
깊은 호수 속에 그녀를 던져 넣었어요.
친절한 돼지치기야, 그 호수가 어디 있는지, 알려 다오!
내 모든 돈을 네게 주마, 내 말과 안장도 주마!
그들은 호수 가로 갔네:
카다르 커터는 내 사랑, 한 번만 대답하거라, 여기 있느냐?
호수 속에서 카다르 커터가 그에게 대답했네.
그 소리를 듣자 쥴러 마르톤이 즉시 뛰어들었네.
그의 어머니가 잠수부들을 보내어,
서로 안고 있는, 두 시신을 찾아내었네.
한 사람은 재단 앞에다 묻고
또 한 사람은 재단 뒤에다 묻었네.
무덤에서 두 개의 로즈마리 꽃이 피어났네,
제단 위에서 서로 만났네,
어머니가 거기 가서, 그것을 잘라 버렸다네.
로즈마리 꽃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네:
저주를 받거라, 저주를 받아
어머니, 쥴러이 부인
내가 살아서도 나쁘게 굴더니,
지금 또 살인을 저질렀구나!
헝가리 총리 외대에서박사 하구이수여식과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