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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교수 에스파냐 문화,예술 기행 1: 바르셀로나(Barcelona)

Kyuchin Kim 2025. 4. 11. 23:38

김규진 스페인 문화 예술 여행(Kyuchin Kim Spain travel: Art and Culture ) 1: 바르셀로나(Barcelona)

 학산  2024. 3. 17. 23:20

2주간 스페인 여행 사흘째

1. 바르셀로나 건축 기행 Barcelona Architecture Tour Today,

“What must be always preserved is the spirit of the work; it’s life will depend on the generations that transmit this spirit and bring it to life.” Antoni Gaudí, architect.

 

“항상 보존해야 할 것은 작품의 정신입니다. 그 생명은 이 정신을 전달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세대에 달려 있습니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6월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사흘째 되는 오늘도 나 홀로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초고속열차로 400여 Km를 2시간 반 만에 가다. 한국 지하철역에서 극적으로 만나 알게 된 바르셀로나 예술인, 시나리오 작가인 마르틴이 가족과 함께 역에 마중을 나왔다. 기적같은 만남이다.

I met Martin from Barcelona in Seoul on June this Year, He Invited me to stay his house, when I come to Barcelona 25th of June. He came to pick me up to the Train station in Brecelona. I was so lucky to getting know him in Korea. It is a miraculous meeting.

Martin과 그 가족은 누구인가?

카사 바트요 앞에서 Martin, 스테파니아, 레오 가족과 함께

June 25th, my third day in Madrid, Spain, I traveled 400 km alone from Madrid to Barcelona by high-speed train in 2 and a half hours. Martin, a Barcelona artist and screenwriter whom I met dramatically three weeks ago at a subway station in Korea, came to meet me at the station with his family. Who are Martin and his family?

그들은 약 한달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유모차에 태운 아이와 오르기에 “Hello, May I help you?”라고 하니 서투른 영어로 “Thanks, we are fine.”,한다. 지하철 차 칸에서 자리를 잡자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즉각 오래전 마드리드 여행에서 익힌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넸다. “Senor, Senora, como es ta?” (Mr. and Mrs. how are you?) 하니, 놀라운 눈길로 “Muy bien.” (I am fine) 한다. “Muchas gracias.” (Thank you very much)하고, “You came from Barcelona. I am going to Barcelona in 4 weeks.”하면서 명함을 건넸다. 어느덧 나는 내려야하고 그들은 공덕동 역까지 간다고 한다. 셀카로 사진을 함께 찍고 명함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주면 사진도 보내고,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한다고 한다. 우리는 짧은 순간 한두 마디 스페인어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이메일로 바르셀로나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감사를 표하고 무슨 메신저를 사용하느냐고 묻고, 25일 26일 바르셀로나 간다고 했다. 여기 오면 자기 집에 와서 자라고 한다. WhatsUp를 이용하니 앞으로 이것으로 의사소통을 하자고 한다. 그 이후 우리는 웟츠업을 통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스페인어 몇 마디 덕분에 이국 만리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가정을 볼 수 있고 하룻밤을 잘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이처럼 나는 어느 나라를 가나 그 나라 말 10마디 정도는 늘 외워가는 버릇이 있다. 말 한마디가 천 냥을 빚을 갚는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그 나라 말 한마디로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곳이 우리 지구촌이라는 것을 오랜 동안 해외여행을 통해서 실감해왔다. 현지사람 만나서 그 나라 말 한두마디로 금방 미소띤 얼굴로 친해질 수 있다. 그 덕분에 러시아와 슬로바카아에서 웨딩파티에 초대 받아 혼부석에 앉아서 잘 먹고, 신부와 춤 출 기회도 얻은 적이 있다.

바르셀로나 역에 차로 마중 나온 마르틴 가족은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앞에서 나를 데려다 주고 저녁 디너에 초대할 때 만나자 한다. 부부가 새로 설립한 도자예술 아카데미로 무척 바쁜데도 도자 예술가 겸 간호사인 부인과 2살 백이 아들 Rio와 함께 나와서 고맙기 그지없다. 나 홀로 여행에 현지인의 환대를 받다니. 행운이다.

 

5월 말 한국 서울 지하철에서 만난 Martin가족

 

가우디의 건축의 백미: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오전에 카사 바트요 건물을 자세히 봤다.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옥상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며 일본서 온 노부부와 옥상카페 옆자리에 앉았다. "곤니찌와! 오다시와 김데스. 간고꾸진데스". 하니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와다시타치와 니혼까라 키마시다" 한다. 잠시 환담을 나누웠다. 일본에서는 은퇴이후 세계로 여행 떠나는게 꿈이고 자기들처럼 나이들어서 부부가 이렇게 해외에 올 수있어 행복하고 축복이라고 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시간마다 예약제로 제한 인원을 받아들인다. 이 한 거물에서 여러나라 사람을 만날 수있다.

카사 바트요 건물은 1904-6년대에 지은 아르누보양식의 혁신적인 주거용 건물이다. 빈에서 본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아파트를 연상시키나 이 건물이 좀 더 오래되었지만 더 아름답고 더 모던하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예술적으로 훨씬 세련 되 보인다. 산 조르디(성 조지)가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한 전설을 건축으로 풀어낸 건물양식이 신비롭다. 가우디의 창의적인 주거용 건물이다. 디자인 때문에 '용의건물', '해골건물'아란 별칭으로 처음에는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지금은 관광 명소다.

 

자연주의 건축 철학이 드러나는 카사 바트요의 거실

내부도 외관과 같이 모든 디자인에 곡선을 사용하였으며, 다양한 색을 이용한 자연 채광으로 신비로운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동물 척추를 연상케 하는 계단, 달팽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나선형 천장, '안토니 가우디'의 이념을 보여주는 곡선 십자가를 볼 수 있디. 모두 상상을 초월한다. 아르누보시대에 이런 아파트를 짓다니???

 

점심으로 차가운 토마토 야채 수프 가스파초Gaspacho와 하몬 샌드위치로 요가를 때우다.

‘성가족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야 Sagrada Familia’

 

오후에는 가우디의 야심작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 내부를 2시간 동안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란 별명에 걸맞게 온통 그의 혁신적 건축물이 많다. 예상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고딕양식 성당을 20세기 초 아르누보 양식으로 재해석한 건물이다. 1882년 건축 시작한지 140여년 넘었지만 아직도 한창 간축 중이다. 2030년 쯤 완공예정이란다. 그때 또 보고 싶다. 고딕성당 틀에 자연의 모습을 가미한 위대하고 독창적인 건물이다. 성당 천정 내부가 자연의 숲을 연상시킨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전통적인 고딕양식의 성당과는 사뭇 달랐다. 기발한 발상에 혁명적인 개념을 성당 건설에 도입했다. 초현실적이다.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출입구로 사용되는 성당의 북동쪽 면위에는 탄생의 이야기가 조각되었다. 가우디가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었다. 2030년 성당이 완성되면 메인 출입구는 영광의 파사드로 옮겨질 예정이다. 예수의 탄생 관련 내용으로 구성되는데, 가장 부조가 많고 화려하며 곡선 위주라 따뜻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도 출입문이 세 곳 있다. 왼쪽은 요셉에게 헌정된 희망의 문, 오른쪽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신앙의 문, 가운데는 예수에게 헌정된 사랑의 문이다. 종탑 4곳은 사도 마티아스, 사도 유다 타대오, 사도 시몬, 사도 바르나바를 상징한다.

가우디

가우디는 돌로서 성서의 여러 장면을 건물 외부와 내부에 잘 표현하였다.

애굽(이집트)으로 피신하는 천사들과 성 가족 요셉의 얼굴은 건축가 가우디의 모습을 닮았다. 그는 실제로 많은 실제 인물들을 기초하여 성서석 인물들을 재현했다.

남서쪽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ade)는 성당의 남서쪽 면으로, 가우디 사망 후 가우디가 남긴 도면과 지침에 따라 1954년부터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Joseph Maria Subirazzi가 설계하고 건설하여서 가우디의 디자인보다 약간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이쪽면에 설명에만 30분 이상을 소비하면서 자세히 설명한다. 예수가 처형되고 천국으로 가는 이야기 즉 조각으로 보는 성서이야기다.

역동적이고 살아 숨 쉬는 듯한 내부 모습, 건축가 가우디의 디자인과 철학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통 고딕양식의 성당내부에서 숲길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나무숲과 꽃을 형상화한 천정은 전통 고딕 양식의 천정과는 사뭇 다르다. 또 창문 채색 유리창의 햇빛이 비치면 마치 숲 속에서 햇살을 느끼게 하는 기분을 준다. 참 신비롭고 상상을 초월한다. 숲속에서 걸어가는 방향에 따라 햇빛이 달리 비치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아침과 대낮 저녁에 따라 색깔이 더욱 신비롭게 달리 보인다.

두 위대한 예술품을 보고 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Martin에게 연락하여 집에 가서 Siesta(낮잠)를 하고 싶다니 오라고 한다. 아주 평범한 20여평의 아파트에 살면서 여름한철은 옥상 여름별장에서 가끔 망중한을 보낸다고 한다. 변두리 해변가로 전철로 30여분 가서 옥상에 마련한 여름Summer 별장에서 바닷바람을 맞이하며 1시간30분을 자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른 저녁에 다시 시내로 가서 고딕지구라는 구 시가지와 람블라스 거리를 산보하다.

바르셀로나 고딕지구 광장에서 만난 귀인 우크라이나 젊은 친구, 멀리보이는 기념탑은 맘블라스거리가 끝나나는 바닷가 컬럼버스 기념탑이다. Monument of Christopher Columbus at end of La Rambla, Barcelona

 

광장에서 어떤 젊은이에게 전철로 돌아오는 길을 물으니 설명하다가 답답한지 자기도 같은 방향이라 함께 전철역으로 가다. 이야길 나누다 보니 우크라이나에서 2년 전 취업차 왔다한다. 사귀는 애인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일하는데 곧 함께 하려고 생각 중이라 한다. 캐나다가 더 좋을지 여기 바르셀로나 더 좋을지 고민 중이다. 조국 우크라이나가 전쟁광 푸틴 때문에 말이 아니라고 한다. 남아 있는 친구들 친척들이 걱정이라 한다. 자기는 이렇게 스페인에 살게 되어 행복하다고 한다. 도중에 전철역이 공사 중이라 좀 헤맸지만 우크라이나 젊은이 덕분에 그래도 빨리 온 셈이다. 오늘도 우연히 길에서 귀인을 만난 셈이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하는 우리말 속담 때문에 덕을 봤다.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해산물빠예야와 참치 토마토 야채 샐러드

 

도자 예술가 마르틴에 집에 초대해주었다. 지난번 한국에서 분재도 배웠다고 한다. 소박하고 아이와 가정을 중시 여기는 카탈루나 지역 스페인 인이다. 자기 고장 바르셀로나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강하다.

Martin하고 부인이 해변 가 식당에 초대해서 토마토 참치샐러드, 해산물 빠예야와 백포두주로 성찬을 즐기다. 바르셀로나의 하루도 번개처럼 지나간다. 피로가 몰려와 깊은 잠에 빠졌다. 한밤중에 눈을 뜨니 유리로 된 두 벽면에 반달이 창 앞에서 빛난다.

마르틴Martin) 과 스테파니아(Stefania) 부부가 경영하는 도자기 학원 모습

 

6월 26일 수요일 바르셀로나에서 2일째다.

오늘은 마이리얼트립My Real Trip에서 안내한 8시간 버스투어를 하다. 혼자 다니는 것 보다 훨씬 좋다. 전문 가이드의 안내 설명이 놀랍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Casa Barllo, Casa Mila)

 

카사 바트요 앞에서 시작한다. 카사는 집, 또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카사밀라 하면 밀라 씨의 건물이다. 어제 나 혼자서 한국어 안내 멘트가 나오는 기계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다. 해박한 지식에 건물 건축이야기와 기독교 관련 이야기가 너무 좋다. 가우디의 깊은 신앙심이 건물 도처에 새겨져 있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투어비가 엄청 비싼 까사 밀라 내부투어는 아니지만 외부에서 건물을 보고 설명하는 것이 너무 좋다.

무역업으로 성공한 사업가 밀라가 카사 바트요를 보고 탐이 나서 가우디에게 특별부탁으로 지은 대 저택이다. 거우디의 자연주의 철학을 건물양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우디는 건축에서 직선보다 자연스런 나무줄기 같이 곡선을 중시 여겼다. 내 어릴 때 시골 초가집들에 꾸브정한 기둥과 가로대, 굽은 서까래를 연상시킨다.

기둥, 청문, 발코니, 계단, 옥상, 건물 내부 청정, 벽에서도 곡선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구현했다. 가우디 저택의 표본이다. 가우디가 처음에 인체 공학적인 가구를 만들어 팔았는데, 이렇게 건축 전체에 자연주의 인체공학을 구현했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이고 초현실적이다. 20세기 초 아르누보와 초현실주의 모더니즘을 건축에 적용했다. 건물자체가 예술 품 같다.

카사 밀라 앞에서

 

구엘공원 Guel Park

시장 조사 회사인 Euromonitor International은 2025년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상위 100개 도시 목적지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초점을 맞추고 관광, 지속 가능성, 경제적 성과 또는 건강 및 안전과 같은 기준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유럽은 처음 10위 도시 중 6 도시가 차지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쉽게 10위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마드리드는 매년 프라하에 버금가는 방문객을 보유하고 있으며(연간 약 8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함) 비슷한 역사적 매력에 더해 세계 수도의 국제적 성격을 자랑한다. 역사적인 기념물, 미술관, 활기 넘치는 밤의 유흥은 다른 유럽 도시만큼 마드리드를 괴롭히는 과잉 관광의 항상 존재하는 문제를 잊게 만든다. 물론약 연간 7천 만 명이 찾는 도시 파리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제 1위를 차지했다.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는 10위를 차지했다. 2년 전 가우디의 도시는 스페인 발렌시아로 대체되었지만, 올해 바르셀로나는 태양, 해변, 아름다운 건축물, 활기 넘치는 밤 문화 등 모든 것을 갖춘 여행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인했다.

사진: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작품 구엘 공원 전경, 저 멀리 지중해가 보인다.

 

구엘공원에 있는 도자기 벤치에 잘 앉아서 십가 탑을 머리에 견주면 환상적인 사진이 나오네요.

구엘공원의 타원형 나투라(자연) 광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벤치(110m)가 있다. 벤치는 깨진 도자기 타일을 모자이크 형태로 붙인 '트렌카디스traencadis 기법'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정말 눈길을 끄는 것은 편안하게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인체공학적 형태와 그 유명한 모자이크이다. 이 광장의 크기는 2,694m²(길이 86m, 너비 43m)이다.

 

110m벤치가 예술 작품 같다.

이어서 또 위대한 그의 자연조경과 어울리는 전원주택과 그 주위 자연공원을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시도한 구엘공원을 산책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예상했던 것 보다 도 훨씬 더 예술적이고 인체공학적인 건물, 도자기 모자이크 타일로 만든 수십 미터의 벤치, 세계에서 제일 긴 벤치란다. 정원, 운동장, 탑 모두 신비롭다. 도마뱀 조형물. 수십 개의 거대한 기둥으로 만든 신전 같은 공간의 과학적인 디자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건축물로 구현했다. 유토피아 공원을 지상에 만들었다. 날씨가 좀 더웠지만 2시간 공원 산책하면 신비로운 조형물에 넋을 잃었다. 바다의 파도를 형성화한 흙 동굴 너무 인상적이다. 가우디와 그의 친구가 20세기 전원 주택단지 공원에 5만평 규모로. 교회, 학교 들을 갖춘 이상적인 주택단지 건설이 꿈이었으나, 너무 혁신적이고 시대에 맞지 읺아 실패한 유토피아 공원이 돼버렸다. 돈 많은 주문자 구엘이 사망하고 가우디가 여기서 손수 지은 전원주택에 20여년 살았다. 구엘 후손들이 실패한 전원 주택단지를 나중에 시에 넘겨주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뒤에는 낮은 산 앞으로는 파란 지중해가 펼쳐지는 멋진 지형을 갖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공원이다. 또다시 가우디의 야망이 숨겨져 있고, 자연철학을 구현한 곳이다.

 

 

The Hypostyle Room은 8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지탱하는 웅장한 개방형 중앙홀로 천장 모자이크와 공원 전망을 특징으로 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가우디가 형상화한 태양이 보인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태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슬며시 자신도 태양을 마음에 품는다. 천장에 있는 선명한 태양이 '아무것도 걱정 말아라' 어디든지 다 비출 것이며, 어디든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이야기를 담은 건축물이 경이롭고 신비롭다.

구엘 공원이 우리 고향 영주에 필요하다. 영주에 전원주택단지룰 조성중이라 하는데. 기대 된다. 영국에서는 지방 중소도시는 대부분 전원도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녹지대 속에 있다. 그런데도 영국에는 굳이 ‘정원도시(Garden City)’라는 이름이 붙은 소도시가 18개나 있다. 우리도 그 곳을 벤치 마켓해서 전원도시 또는 정원도시를 조성하면 어떨까? 욕심이 과한가? 내 꿈일 뿐이다.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426

 

 

바르셀로나는 우리나라 부산 처럼 해변도시로 스페인에서 제 2의 도시다. 해산물 천국이요 생선요리 천국이다. 구수한 빵에 고추가루 없이 토마토소스로 끓인 생선찌게 맛이 일품이다. 오래전에 터키에서 맛본 생선찌게와 비스하게 느껴진다. 더운 여름에 딱 어울리는 생레몬 환타

가이드가 점심식사 안내를 너무 자세히 친절히 해준다. 스페인, 카타루나 음식 다 맛보고 싶다. 여행객들이 모두 쌍으로 와서 혼자서 해변 가를 거닐다가 파키스탄 웨이터에게 안내받아, 꼬임을 받아 해변 가 야외식당에 바다를 보고 앉았다. 그는 여기서 5년째 건축학을 전공하고 아르바이트로 식당에서 일하며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생선찌게가 먹음직스러워 가이드가 추천한 것 다 잊어버리고 빵과 주문했다. 빵맛이 일품이다. 스페인에서도 빵(Bread)을 빵이라 부른다. 포르투갈 인이 빵이란 단어를 세계에 퍼뜨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 드링크만 가이드가 강추한 생레몬 환타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는 유럽 관광객들이 주로 맥주를 마신다. 스페인 와인뿐만 아니라 맥주 천국이다. 차가운 레몬 환타 예상했던 데로 압권이다. 특히 해변 가에서 더운 날씨에. 생선찌게는 매운 고추와 마늘양념만 넣으면 한국 생선찌게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맛있다.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 홍합? 조가비, 새우, 등 입맛에 딱 맞다.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으깬 토마토소스? 양념이 궁금하다. 귀리 빵도 너무 맛있다. 식후 해변에 가다.

반나의 남녀노소, 커다란 가슴을 통째로 드러낸 중년 여인들이 벌렁 누워 태양을 즐긴다. 신발을 벗어들고 바짓가랑이를 들어 올려 감고 고독해 보이는 남자 옆에 가서 서성이니 옷을 벗고 태양을 즐기든지 물에 들어가 보라고 한다. 용기를 내어 수영복만 입고 물에 뛰어 들었다. 좀 차가웠으나 금방 익숙해졌다. 말을 걸어 온 반나의 친구에게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부탁했다. 사진 구도를 잘 잡아 여러 장 찍어 준다. 주위 반나의 여인들이 같이 안 나오게 찍었다. 나와도 상관없는데..파란 바르셀로나 지중해 바닷물 속에서 잠시 해수욕과 수영을 하니 쌓였던 피로가 싹 가는 기분이다. 반나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니, 벨기에서 2년 전에 와서 일하면서 산다고한다. 몇 년 더 벌어서 벨기에에 돌아가서 집을 사고 싶다한다. 한국에서 왔다하니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라 한다. 나도 벨기에 보고 싶다하니 전화번호를 주고받자고 한다. 벨기에 인 덕분에 지중해에서 수영을 하디니 꿈같다. 해변에 비스듬히 누워서 따스한 모래를 즐기다. 오래오래 여가서 남아 있고 싶다. 오래 전에 아드리아 해 바닷가에서 매일 수영하면서 10일간 불가리아, 터키, 그라스 여행하던 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파도 넘실되는 바다, 처 푸른 물결 넌 언제 봐다 기분 좋다. 난 바다를, 물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오랫동안 누워서 해조음을 듣고 싶다. 허나 돌아가서 투어를 계속할 시간이라 아쉽다. 여행은 이처럼 늘 아쉬운 찰나가 다가온다.

 

바르셀로나 지중해 해변에서 피로를 풀다.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이 시원한 드리크 상그리아를 팔고 있다.

 

이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부투어를 시작하러 버스에 올랐다. 도착하기까지 30여분 낮잠Siesta을 즐기시라고 가이드가 권한다. 시의적절한 제의다. 잠시 조름에, 버스 간에서 시에스타를 즐기다.

어제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관광을 하면서 한국어 기계 가이드로 외부 이야기도 들었지만 오늘 이렇게 가이드가 직접해주니 더욱 깊이 이해할 것 같다. 정말 놀랍고 형언하기 어려운 가우디의 자연주의 철학을 구현한 위대한 성당이란 것을 다시 느꼈다. 가이드에게 오늘 설명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혹 찾을 있느냐니까, 그냥 성경 속에 나온 이기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가우디가 원래 신앙심이 강해서 자연주의 철학이 담긴 상당을 건설 하면서 성경이야기, 천지창조, 예수탄생 비화, 처형과 부활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건축에 반영한 이야기를 상세히 해준다. 옛날의 흘러간 이야기처럼 구수하게 잘 설명해줘서 큰 감명을 받았다. 여행기 블로그 만든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 늘 이렇게 어디를 가나 나는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들을 만나니 많이 배우고 행복하다.

2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우디의 위대한 창작물 성가족 성당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이고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란 말이 실감났다. 한 위대한 건축가 예술가가 한 도시를 영원히 빛나게 한다.

 

이어서 여러 관광객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 투어를 시작하고 나는 홀로 카페에서 커피와 달콤한 과일 파이로 에너지를 돋우고 시내를 산보하다가 마드리드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됴스 바르셀로나 adiós Barcelona!!!

다음에 또 오고 싶은 도시다.

기차역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채소 샐러드와 커피로 저녁식사를 때우다.

 

20여년 전에 마드리드 여행이 하도 그리워서 이번엔 바르셀로나를 여행했습니다. 마드리드 프라도(Prado) 미술관에서 본 그림 한점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그림이었어요. 어떤 그림일 까요? 거리에서 돈키호테와 산초판사도 만났습니다. 이번엔 바르셀로나 여행 정리해봤습니다. 혹 가실 분들은 꼭 읽어보시고 가면 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I really missing my trip to Madrid about 20 years ago. I still remember a painting I saw at the Prado Museum in Madrid. It was the most horrible painting in the world. What do you think it was? I also saw Don Quixote and Sancho Panza on the street. This time I imagined traveling to Barcelona. I've summarized the Barcelona trip I saw in my dreams. If you are going there, be sure to read it and enjoy it even more.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성가족성당) In front of Sagrida Familiya

1. 바르셀로나(Barcelona)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성가족성당)

Antoni Gaudí's Sagrada Familia (Basilica of the Holy Family)

 

2. 2007년 마드리드(Madrid) 여행기 자세한 것은 다음 블로그에 참조하세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마드리드에서 열차로 2시간 30분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한달 전쯤 한국 지하철에서 극적으로 만난 마르틴이 마중을 나왔다. 오늘 밤은 마르틴 가정에서 지내기로 했다.

지하철로 시내로 들어갔다. 먼저 카사 바트요를 봤다.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나에게 딱 맞는 일정이다.

먼저 바르셀로나에대해 알아보자:

1. 바르셀로나Barcelona

 

한국의 부산처럼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지중해에 접해 있는 가장 큰 항구 도시기도 합니다. 동시에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다.

가우디의 건출 물로 관광업이 아주 유명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된 도시였고 좋은 기후와 경관으로 인한 관광업은 부가적인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바이오, 나노 등 첨단 산업 육성에도 힘써 유럽판 실리콘밸리라 할 수 있는 일명 유럽의 바나나 벨트 지역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 바르키노, 바르치노(Barcino)라는 소도시로 시작되었습니다. 중세 시절에는 아랍인/베르베르인들이 서고트 왕국을 붕괴시키고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바르셀로나 역시 한동안 무슬림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711년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무슬림 군대는 717년 바르셀로나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의 무슬림들의 지배는 그다지 길지는 못했는데 다시 샤를마뉴의 재정복으로 801년 바르셀로나 백작 령이 성립되고,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해안도시로서 9세기에서 11세기까지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낙후되었던 카탈루냐 지방은 레콩키스타를 계기로 점점 부를 축적했습니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12, 13세기를 거치며 급격히 발전한 바르셀로나의 상인 길드는 이 시기에도 계속 번영을 누렸다.

1492년 레콩키스타가 완수되고 이를 기념하여 이루어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가 이루어지면서 스페인 경제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전하였습니다. 18세기에 이르면 바르셀로나의 자치권 상당부분이 철폐되었다.

근대에 접어든 19세기 스페인 왕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의 침공을 받고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2류 국가로 전락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오히려 스페인의 북부 변방에 해당하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반면 근세 스페인 황금시대의 중심지였던 마드리드와 세비야는 변화된 시대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낙후가 심화되었습니다.

카탈루냐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는 항구도시라는 이점에다가 주변에 갈탄 매장지가 많은 덕분에 또한 상술한 중세부터 발달한 금융업 등으로 스페인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서유럽의 산업혁명에 성공적으로 합류하였습니다. 19세기 중반 안토니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20세기 현대 들어선 스페인 내전 이후 바르셀로나 등을 중심으로 한 공화파가 패전하면서 프랑코 정권이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전역을 지배했습니다. 이 때문에 카탈루냐주에서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당하고 바르셀로나 민족주의가 탄압 당했습니다. 1970년대 프랑코 사후 스페인의 군사독재가 끝나면서 카탈루냐어 사용금지 조치가 해제되었고, 지방자치가 확대되었습니다.

현재 표준 카스티야어도 쓰긴 하지만 지금도 바르셀로나에선 카탈루냐어가 제1언어입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최대 관광도시로 일반관광뿐만 아니라 컨벤션·비즈니스 관광(MICE) 산업도 발달해있습니다. 2018년도 연간 방문객은 약 2,000만 명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파리처럼 고딕지구 구도심과 신도심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다양한 시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주요 관광명소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엘 공원,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등 가우디가 건축한 각종 건축물들, 스페인 광장(Plaça d'Espanya), 몬주익, 카탈루냐 음악당, 리세우 극장, 카탈루냐 미술관(MNAC), 호안 미로 미술관, 바르셀로나 동물원,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등이 있습니다.

물론 축구 팬이라면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인 캄 노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입니다. 또한 플라멩코로도 유명합니다. 세비야, 마드리드와 함께 플라멩고 3대 도시로 불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지중해에 접해 있어 바르셀로네타 해변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유럽의 대부분 대도시처럼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립니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고개 들고 성당을 보며 넋이 나간 관광객들은 소매치기의 주요 먹잇감입니다. 소매치기가 많긴 하지만 치안 자체는 안전한 편으로 특정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밤늦게까지 관광객들이 별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카사밀라(Kasa Mila) 밀라의 연립대저택

카사밀라는 익히 라 페드레라(채석장이라는 뜻)로도 불리고 있으며,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년)의 작품으로 바르셀로나 번화가이며 중심가인 파세오 데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해 있다. 1906년 설계를 시작해 1912년에 완공된 고급 연립주택이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KBS 1TV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또는 EBS 1TV의 《세계테마기행》에서도 해당 장소를 소개시킨 적이 있었다. 가기 전에 이 프로그램을 꼭보고 가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띌 것이다.

그다음 여기서 멀지 않은 카사 바트요를 찾아갔다. 비슷하나 더욱 화려하고 인상적이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1. 카사 바트요

 

카사 바트요(Casa Batlló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 중 하나로, 1969년 카사 바트요는 스페인 국가 예술-역사 문화재로 등재되었으며,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앞서 해당 부지에 있었던 Emilio Sala Cortés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엔산체 지구(에이샴플라 지구)를 가로지르는 대로인 바르셀로나 파세오 데 그라시아 거리 4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이 구역은 다른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모여 있어 소위 불화의 사과(사방이 도로로 둘러싸인 도시의 한 구획)로 불리기도 합니다.

공사는 1904년 ~ 1906년 사이에 진행되었다.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완벽한 예술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자연주의에 속했던 가우디는, 건축물 각각에 필요한 건축 방식을 고안 해 내기 위해 건축 부지를 철저하게 분석했습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예술가였던 가우디는 이와 더불어 자유로운 창작방식으로 상상력 넘치는 장식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새로운 바로크 형식에서 시작한 그의 작품들은 구조적 완전함을 가졌으며, 이는 크기와 모양에서의 제약, 합리주의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그 이전에 존재하였던 그 어떤 고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52세에 카사 바트요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담당한 가우디는 19세기 중반 유행한 역사주의를 능가하였으며, 그의 건축 스타일은 건축에 대한 개인적인 비전, 독창성 및 혁신을 반영하기 위해 전통적 형식주의를 초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우디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예술성 뛰어난 디자인은 건물의 기능성을 잃지 않으며 다른 나머지 요소들을 아우릅니다.

카사 바트요의 구성을 살펴봅시다. 카사 바트요는 총 8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하에는 석탄 저장소, 가구 보관 창고 있었습니다. 1층 입구에는 차고와 창고 그리고 주거지와 입구를 공유하는 상점이 하나 있었는데 Lumière 촬영소, Pathé Frères 영화 제작사, Syra 갤러리가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메인 층 전체는 바트요 가족이 사용하였으며, 건물 뒤편의 중정도 이에 포함됩니다. 나머지 4개의 층은 임대하였는데, 각 층에 두 세대가 있었습니다. 맨 마지막 층의 다락방은 가사 일을 위한 공간으로 옥상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파사드

 

 

카사 바트요 앞에서 Martin, 스테파니아, 레오 가족과 함께

 

카사 바트요의 파사드는 몬주익의 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규칙적 표면 위에 구불거리는 형태로 조각되었습니다. 뼈의 모양을 한 기둥들은 식물을 상징합니다. 목재로 된 부분 또한 곡선을 띄며, 창문들은 둥그런 색깔 유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우디는 기존 건물의 사각 발코니 형태를 보존하였는데, 여기에 복면 모양의 철재 난간을 덧붙이며 파사드 나머지 부분에는 상승하는 듯한 물결 모양을 부여했습니다. 여기에 Pelegrí 유리 공장에서 얻은 다양한 색상의 유리조각 세라믹으로 파사드를 덮었으며(일명 트랜카디스 기법), 파세오 데 그라시아에서 세라믹 조각들의 배치를 직접 지시하였습니다. 지중해의 파도 또는 몬세라트의 굽이치는 형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 디자인을 위해 가우디는 석고로 여러번 모형을 만들었는데, 그가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그의 손으로 직접 조형하였습니다.

파사드는 두 겹의 벽으로 된 아치형 천장으로 완성되며, 그 위는 Sebastià Ribó 공방에서 제작한 비늘 모양의 유약 처리된 세라믹이 덮고 있습니다. 빨강, 초록, 파랑의 색조가 용의 등을 연상시킵니다. 좌측에는 예수(IHS), 마리아(M) 그리고 요셉(JHP)의 이니셜이 장식되어 있는 구근 혹은 마늘 모양을 한 원통형 탑이 있는데, 맨 위에는 가우디의 네 팔 십자가가 동서남북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파사드에 관한 상징적인 해석 중 하나는 용과 맞서 싸웠던 수호 성인 산 조르디(산 호르헤)의 전설에 관한 것으로 뼈 모양의 기둥과, 해골 모양의 발코니는 용에게 희생 당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이 해석에 의하면, 네 팔 십자가는 용의 등뼈에 꽂힌 검이 되며 이 아래의 붉은 색 세라믹은 여기서 솟아오르는 용의 피를 나타냅니다.

내부

가우디는 건물 내부로 향하는 1층 입구를 구분하였는데, 거주자들을 위한 철제 대문, 상점으로 통하는 유리 대문 그리고 차고로 통하는 목재 대문으로 나누어 설계하였습니다.

카사바트요 건물의 중앙 부분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정이 있으며, 채광과 환기를 위해 가우디는 이곳을 확장시켰습니다. 중정은 T자 형태의 철재 구조로 지지된 유리 채광창으로 덮여 있으며 이는 아치형 천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또한 타일의 배치는 상부의 청색에서 시작하여 하부의 백색으로 이어지는 독창적인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여 자연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으며 마치 수중 동굴에 있는 듯한 느낌을 유발하였습니다.

총 32개의 이중 창문이 있으며 이 창문들 상단에는 빛을 위한, 하단에는 환기를 위한 틈이 나 있습니다.

가우디는 건물 안쪽 면도 건물 외부와 마찬가지로 정성을 들여 설계 하였는데, 다양한 산업 및 장식 예술 (조각, 단조, 유리 세공, 가구 제작, 도자기)을 사용하여 미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건물의 나머지 부분과 마찬가지로 주로 곡선을 사용하였습니다. 가장 큰 넓은 곳은 바트요 가문의 메인 층으로, 400제곱 미터였습니다.

4 층에 걸쳐 약 200 제곱미터의 총 8 채의 주택이 있었으며, 난방과 온수에서 전기에 이르기까지, 디자인과 미학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당대의 모든 기술 발전과 편의를 누렸습니다. 각각의 세대에는 안뜰을 향한 테라스가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다락의 세탁실과 창고도 포함되었습니다. 현재 거주용 세대가 하나 남아 있으며(3층), 나머지는 사무실이나 회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사바트요의 마지막 층은 460제곱미터의 다락으로 세탁실, 창고 및 기타 공용 공간과 하인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카탈루냐 고택의 다락방처럼, 가혹한 날씨로부터 주택을 보호하는 단열실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은 건물의 나머지 부분과 다른 구조를 가지는데, 석고 벽돌로 만든 아치형 구조들이 천장을 이루며 그 위에 얹어진 돔형 지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가우디는 카사밀라에도 동일한 시공법을 적용하였습니다. 이 구조는 동물의 갈비뼈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일부 사람들은 이곳이 카사바트요 지붕을 덮고 있는 용의 몸 속일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다락방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건물 내부를 보호하는 거대한 채광창은, 빛의 중정과 통합니다. 다락방은 2004년에 복원되었으며 가우디의 삶과 작품에 대한 홀로그램과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옥상(지붕)

카사바트요의 꼭대기는 300제곱미터 면적의 옥상으로, 다락방에서 나선형 계단을 통해 드나들 수 있습니다.

가우디는 옥상을 연기 배출과 환기를 위한 기능적인 공간으로 고안하였지만, 그곳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정교한 장인의 방식으로 제작되어 풍부한 조형성을 지니기 때문에 동시에 심미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카탈루냐 Reus 지역 출신의 건축가인 가우디에게 있어, 건물의 지붕은 사람으로 치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모자와 같았기 때문에, 구엘 저택과 카사밀라와 마찬가지로 항상 지붕을 정교하게 디자인하였습니다.

옥상의 굴뚝은 총 27개인데 4개의 그룹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높이 6.1 미터의 나선형 모양으로 원뿔 형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중앙부는 투명 유리로, 윗면은 세라믹으로 덮여 있으며, 각각 다른 색의 모래로 채워진 투명 유리 공들로 마무리 되어있습니다. 다락과 마찬가지로 옥상 또한 2004년에 복원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위키백과 참조)

카사 바트요(Casa Batlló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 중 하나로, 200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었다.

 

이는 앞서 해당 부지에 있었던 Emilio Sala Cortés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엔산체 지구(에이샴플라 지구)를 가로지르는 대로인 바르셀로나 파세오 데 그라시아 거리 4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이 구역은 다른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모여있어 소위 불화의 사과(사방이 도로로 둘러싸인 도시의 한 구획)로 불리기도 한다.

공사는 1904년 ~ 1906년 사이에 진행되었다.카사바트요는 가우디의 완벽한 예술성을 반영한다. 20세기 초반의 자연주의에 속했던 가우디는, 건축물 각각에 필요한 건축 방식을 고안 해 내기 위해 건축 부지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예술가였던 가우디는 이와 더불어 자유로운 창작방식으로 상상력 넘치는 장식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바로크 형식에서 시작한 그의 작품들은 구조적 완전함을 가졌으며, 이는 크기와 모양에서의 제약, 합리주의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그 이전에 존재 하였던 그 어떤 고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형태를 띈다.(위키백과 참조)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네오 고딕(Neo Gothic) 양식을 기반으로 그 당시 유행한 카탈루냐 모더니즘,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직선과 직각이 거의 없는 특이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The Sagrada Familia is based on the Neo Gothic style and can be considered a representative of the Catalan Modernism and Art Nouveau styles of architecture that were popular at the time. The church is known for its unusual design, with few straight lines and right angles.

"네오고딕이란?: 신고딕 양식(neo-Gothic) 또는 고딕 복고양식(復古樣式, Gothic Revival)이란 1740년대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건축 양식이다. 유럽 전역에 퍼졌다.

고딕 양식이란? : 고딕 건축 양식(Gothic architecture)은 중세 시대 말 유럽에서 번성한 중세 건축 양식의 하나이다. 12세기에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등 전유럽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의 특징은 첨두 아치, 리브 볼트, 그리고 플라잉 버트레스를 포함하고 있다. 고딕 건축은 유럽의 지역 교회들과 대수도원, 그리고 수많은 대성당의 건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성, 궁전, 마을 회관, 협회, 종합대학, 그리고 주택까지 이러한 건축 양식이 쓰인다."

 

https://youtu.be/TylzXtQgIG8?si=Qwve8lkaP4HGrnOy

 

Sagrada Familia in Barcelona ‘will be completed in 2026’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는 1882년 건축을 시작해서 2026년도에 완공 예정이다.

바르셀로나에선 카탈루냐어가 제1언어다. 길거리에서도 안내 표지판 같은 것들은 카탈루냐어가 가장 먼저 나오며, 그 외 영어나 스페인어가 혼용되는 편이다. 한두 마디 카탈루냐어를 배워가면 이외로 칭찬받고 덕을 본다.

Thanks: gràcies. How are you?: Com estàs? I am fine: Estic bé,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최대 관광도시로 일반관광뿐만 아니라 컨벤션·비즈니스 도시로 연간 2000만 명 이상 관광객이 찾아온다.

주요 관광명소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엘 공원 등 가우디가 건축한 각종 건축물들 스페인 광장(Plaça d'Espanya), 몬주익, 카탈루냐 음악당, 리세우 극장, 카탈루냐 미술관(MNAC), 호안 미로 미술관, 바르셀로나 동물원,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등이 있다.

 

 

고딕 건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의 전형Typical of Gothic architecture and Art Nouveau.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짓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이다. 또한 '사그라다'는 스페인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하기 때문에 성가족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을 책임졌다. 이 건물을 포함한 가우디의 작품들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0년 11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당에서 준 대성당으로 승격을 선포했다.

1882년 성당의 건축은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 1883년 빌라르가 사임하자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로 취임하여 고딕 건축 양식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건축 및 엔지니어링 스타일로 프로젝트를 변형시켰다.

가우디는 그의 남은 생애를 프로젝트에 투입했으며, 1926년 73세의 나이로 고인이 되었을 때 프로젝트의 1/4, 즉 25%가 완료되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의 일부인 동부 성만 완성하고 별세하였다. 2026년 완공 예정이다.(위키백과참조)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실(The Sagrada Familia crypt)

 

대성당의 후진 한 층 아래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지은 안토니 가우디의 안식처이다.

그것은 엘 카르멘의 성모(가우디의 무덤이 있는 곳), 그리스도, 몬세라트의 성모,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호셉 마리아 보카벨라의 무덤이 있는 곳)를 기리는 4개의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 지하실의 아치가 만나는 지점에 마리아 수태고지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보인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하실 바닥이 로마 기원의 숨막히는 모자이크로 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중앙 본당의 내부는 모양과 높이가 잎이 무성한 숲의 나무 줄기와 매우 유사한 일련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주의-모더니스트(naturalist-modernist)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중앙 본당의 내부는 모양과 높이가 잎이 무성한 숲의 나무 줄기와 매우 유사한 일련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독특한 모양은 우연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킨 건축가로서 가우디 자신의 진화의 결과이며, 오늘날 우리는 이를 자연주의-모더니스트(naturalist-modernist)라고 부른다.

가우디 기둥의 특별한 모양 덕분에 그는 고딕 양식의 특징적인 지지대에서 벗어나 지붕까지 우아하게 높이 솟아 있는 가볍고 가느다란 구조를 갖게 되었다. 구조의 이 부분의 기초는 1987년에 시작되어 1997년에 측면 둥근 천장무늬(Vault)가 완성되었으며 2010년에는 주요 축하 행사와 함께 중앙 둥근 천장(Vault)가 완성되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원 내부의 환상적이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운명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자 아나키스트들이 지하실에 불을 질러 가우디의 작업실과 후계자들이 작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만든 석고 모형을 파괴했다. 건축가 루이스 보네 이 가리(Lluís Bonet i Garí)는 파편을 구해냈고 가우디의 모형은 공들여 재조립되었다. 가우디의 디자인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기술적 세부 사항은 나중에 뉴질랜드 건축가 마크 버리(Mark Burry)가 항공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완성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현대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는 "끔찍하고 먹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묘사했고,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건물 중 하나"라고 말하며 아나키스트들이 기회가 있을 때 폭파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우디의 또다른 건축들:

구엘공원Parc Güell: 안토니 가우디가 꿈꾼 '유토피아 세상'

'안토니 가우디'가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을 위해 건축한 곳으로, 이상적인 유토피아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작하였지만, 자금 부족으로 인해 지금의 공원 형태로 남게 되었다. 뱀의 모습을 닮은 곡선 벤치, 파도 동굴 등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려하고 독창적인 요소가 구석구석 숨어 있어 있어 포토 스팟으로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안토니 가우디의 자연주의와 곡선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 중 하나이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카탈루냐 음악당(Palau de la Música Catalana):

카탈루냐 음악당은 스페인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 있는 콘서트홀이다.

 

건축가 루이스 도메네흐 이 몬타네르가 카탈루냐 모더니스타(Catalan modernista) 스타일로 설계한 이 건물은 1891년 설립된 합창단 오르페오 카탈라(Orfeó Català)를 위해 1905년부터 1908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카탈루냐 문화 운동의 주역으로 르네이센사(카탈루냐 재탄생)로 알려지게 된 곳이다. 1908년 2월 9일에 개관했다.

팔라우에서 가장 크고 잘 알려진 공간은 콘서트 홀이다. 화려한 유리 지붕이 있는 2,146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콘서트와 리사이틀의 주요 무대이다.

카탈루냐 음악당(Palau de la Música Catalana):

 

 

팔라우 데 라 무지카 카탈루냐 내부를 방문하지 않고는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오르페오 카탈루냐(Orfeó Català)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아마추어 합창단 중 하나이다. 125년 전인 1891년, 루이스 밀레와 아마데우 비베스(Lluís Millet and Amadeu Vives)가 설립한 이 합창단의 목적은 카탈루냐 및 국제 합창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공연의 우수성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스페인 광장(Plaça d'Espanya)

에스파냐 광장은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 박람회를 계기로 몬주익 산기슭에 조성된 바르셀로나의 가장 중요한 광장 중 하나다. 이 광장은 그란 비아, 파랄렐 등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요. 또한 바르셀로나의 오래된 투우장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라스 아레나스 데 바르셀로나 상업 센터로 개조되어 있다.

 
 
 

미술관 분수대

바르셀로나 미술관: 1,000년에 걸친 카탈루냐, 스페인, 유럽 예술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국립 카탈루냐 미술관은 1934년에 개관했으며 1,000년에 걸친 카탈루냐, 스페인, 유럽 예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티치아노, 게인즈버러, 가우디와 같은 모더니스트 등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의 가장 유명한 소장품인 '로마네스크 프레스코화'에서 관람을 시작하세요. 무지개 위에 앉아 자체발광하는 12세기 그리스도의 형상을 놓치지 마세요! 카날레토, 티치아노, 고야 등 14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활동한 작가들의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 및 조각도 소장되어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카탈루냐 출신 화가, 조각가 등의 회화, 조각, 포스터 및 기타 아르 누보 작품이 전시된 근현대 예술 컬렉션도 또 다른 묘미이다. 가우디가 설계한 물결 모양의 목조의자와 문 또한 감상하실 수 있다. ”

 
  • 성녀 바르바라 장식화
  • '곤잘로 페레즈'가 묘사한 중세 시대 가장 인기 있는 성녀 '바르바라'의 그림(24번 방)

더 자세한 전시품은 아래 블로그를 참조: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B] / 중요한 그림으로는 수르바란의 〈아시시의 성 프란키스쿠스 St. Francis of Assisi〉, 엘 그레코의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축구 팬이라면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인 캄 노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먼저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 노우(Camp Nou)’는 카탈루냐어로 새 경기장(new ground)이라는 뜻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전용 구장이다. 경기장 바깥 테두리는 은은함을 띄는 무채색이지만 외관과 내부 느낌은 얼핏 콜로세움을 연상케한다. 좌석수가 무려 99,000여 개에 달하는 캄 노우는 그 규모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어마어마하다. 캄 노우는 건축가 Francesc Mitjans Miró와 Josep Soteras Mauri가 Lorenzo García Barbón과 공동으로 설계했으며, 주로 콘크리트와 철을 사용해 1955~1957년 사이에 건축됐다. 경기장은 55,000㎡(길이 250m, 너비 220m)의 표면적을 포함해 최대 높이가 48m나 된다. 이후 UEFA 규정에 따라 캄 노우는 105m×68m로 축소됐다.

대부분의 관광 명소는 바르셀로나를 관통하는 주도로 '아베니다 디아고날 Avenida Diagonal'(대각선 대로)를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시간이 난다면 매일 보여주는 몬주익 분수 쇼 같은 각종 쇼를 볼 수 있다. 또한 춤 플라멩고로도 유명하다. 세비야, 마드리드와 함께 플라멩고 3대 도시로 불리고 있다.

https://youtu.be/L2ol8kG4fOc?si=7jaaF6u0XFr9Blxv

 

 

소위 '벙커'라고 불리우는 분케르스 델 카르멜(Bunkers del Carmel)은 바르셀로나 야경명소 중 제일로 꼽히는 장소이다. 바르셀로네타 해변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많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고개 들고 성당을 보며 넋이 나간 관광객들은 소매치기의 주요 먹잇감이다. 소매치기가 많긴 하지만 치안 자체는 안전한 편으로 밤늦게까지 관광객들이 별 걱정 없이 돌아다닌다.

 

https://youtu.be/YOJTEmQ1jfU?si=N6Of5jw5zEMtztoF

 

중세 원도심인 고딕 구역의 거리

 

로마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유물을 품고 있는 대표적인 역사 도시로 특히 이 지방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축한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오로지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매년 성지 순례하듯 몰려온다. 대표적인 것이 무려 100년 동안 짓고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성가족성당)이다.(2026년 완공 예정) 이외에 바르셀로나 대성당 또한 유명하다.

 

유럽에서 베네치아와 함께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도시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부산처럼 가장 큰 항구도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1,620,343명(2018년)이고 면적은 101.3 km²이다.

도시의 명칭은 고대 페니키아어인 '바르케노(Barkeno)'에서 유래하였다(또는 B.C. 3세기경 스페인 식민지를 개척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한니발 바르카의 아버지) 가문의 성에서 유래했다는 의견도 있다).

 

1992년 하계 올림픽이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성 기후이다. 6월에 기온이 따뜻하고 맑은 날씨가 많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평균 최고 기온은 약 26도에서 27도 정도이며, 평균 최저 기온은 약 18도에서 19도 정도이다. 일출 시간은 약 6시 20분이고, 일몰 시간은 약 9시 15분이다.

바다에서 수영하기 좋은 시기이므로, 해변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수영복 필수.

6월에 가볍고 시원한 옷차림이 좋다. 반팔 티셔츠, 반바지, 면 원피스 등 가벼운 옷이나 샌들, 슬리퍼 등도 적합하다. 그러나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옷 한 벌 정도는 가벼운 니트나 가디건을 준비해야 한다.

바르셀로나에는 누드 비치가 두 곳이 있는데 W 호텔 근처 산 세바스티안 비치는 젊은 여성들이 톱리스 선탠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곳이고, 완전 누드로 선탠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볼거리, 먹거리

 

바르셀로나는 매력적인 도시로서, 미술과 건축, 역사, 음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는 고딕 지구입니다. 그곳에는 마르켓, 교회, 박물관 등 다양한 역사적인 건축물이 있으며, 현지에서 인기 있는 상점과 레스토랑도 많다.

고딕지구

왕족이 살았던 역사가 담긴 지구

과거에 왕족이나 귀족이 거주했던 곳으로 웅장한 분위기의 역사 깊은 장소가 많은 고딕지구다양한 광장을 포함하고 있어서 또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분위기 있고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따뜻한 고딕지구를 둘러보자.

바르셀로나 대성당

The Cathedral of the Holy Cross and Saint Eulalia

바르셀로나 대성당으로도 알려진 성 십자가와 성 에우랄리아 대성당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고딕 양식 대성당이자 대주교가 있는 곳이다.

 

바르셀로나는 그라시아 지구에서 고딕 지구로 이어지는 라 람블라 거리로도 유명하다. 거리에는 거리 예술가, 거리 연극가, 상인들, 음식점 등이 있어서 볼거리가 많다.

 

바르셀로나는 아르노 광장, 바르셀로나 카테드랄, 근대적인 건축물을 보여주는 카사 밀라 등 많은 랜드마크가 있어서 미술과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는 맛있는 음식도 유명하다. 타파스Tapas , 파에야 Paella, 해산물 등 지역 특색이 묻어나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

This saffron-infused Mixed Paella comes loaded with Spanish sausage, juicy shrimp, mussels, clams, and calamari.

 
 
 

 

 

역사

 

로마 제국 시기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바르셀로나는 파벤티아 (Faventia) 라는 이름의 식민 도시였다. 약 기원 전 15년 경 로마 제국은 몬 타베르 (Mons Taber) 언덕을 중심으로 한 군사 기지의 형태로 도시를 재개발하였다. 이 시기의 흔적들은 현재 레이 광장 (Plaça del Rei)의 지하, 바르셀로나 도시 역사박물관의 일부로 남아있다. 구 도시 중심 지역인 고딕 지구에서는 로마 제국 도시들의 전형인 격자형 도시 구획을 현재도 볼 수 있다.

 

중세 시기

 

5세기 초 서고트 왕국에 정복된 이후 몇 년 간 히스파니아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8세기 초 아랍세력에 의해 점령된 이후 801년 샤를마뉴의 통치 아래 프랑크 왕국의 정복 원정으로 히스파니아 국경령에 통합되었다. 9세기 말, 프랑크 왕국에서의 독립이 진행되면서, 10세기 말 알만소르의 지휘 아래에 있는 우마이야 왕조 군대의 일시적인 점령을 받았지만, 이를 프랑크 왕국 지원을 받지 않고 격퇴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프랑크 왕국에서 정식으로 독립하여 11세기에는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군주제를 확립시켰다. 이것이 현재의 카탈루냐 지방의 원류가 되었다.

 

그후 12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르셀로나는 아라곤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한 세력으로 다수의 해외 영토를 포괄 확대하여 바르셀로나에서 아테네에 이르는 지중해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중세 도시로 위벽을 새롭게 꾸미고 활기찬 항구도시로 변신해 갔다. 그러나 15세기 카탈루냐를 통치하는 아라곤 연합왕국과 카스티야 연합왕국 사이에 새로운 통일 왕조가 형성되면서 스페인의 중심지가 마드리드로 이동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화에 따른 지중해 무역의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때문에 바르셀로나의 경제적 영향력이 약화되어간다. 한편 바르셀로나는 펠리페 4세에 대항한 카탈란 봉기 (1640–52)를 포함한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중심이 된다.

 

1289년에 시작해 15세기말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대성당에는 6세기에 지은 바실리카가 있으며 이밖에도 산타마리아델마르 교회를 비롯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왕궁과 주교관은 바르셀로나 시와 아라곤 왕국의 기록보관소로 사용된다.

 

19세기 이후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 수많은 새로운 산업이 도입되어 성장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으로 인하여 대대적으로 파괴되었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적으로 산업화가 잘 되어 스페인 제2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행정구역

 

바르셀로나 행정구역 지도

바르셀로나는 1987년에 10개의 행정 구역으로 분리되었다.

 

구역들은 대부분 역사적 구분을 바탕으로 나뉘어 졌으며, 이들 중 몇몇은 18세기와 19세기 사이에 바르셀로나 시에 합병된 마을로 여전히 그들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각각의 구역은 자치 의회를 갖고 있으며, 시의회의원이 이끌고 있다.

 

주요 명소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안토니오 가우디

 

고딕 지구(Gothic Quarter, 까딸란: Barri Gòtic)은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의 중심이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중세 시대에 지어졌으며, 일부는 로마제국 시대의 바르셀로나 정착기에 지어졌다. 카탈루냐 모더니즘(Catalan modernista) 건축물은 유럽 지역의 아르누보 운동과 연관이 있으며, 1885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발전해 바르셀로나에 중요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 중 몇몇은 (Unesco)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들인데, 도시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거대한 미완성의 성당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 성당, Sagrada Família)으로 1882년에 시공하여 현재까지도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지어지고 있다. 2015년 기준, 완공 예정년도는 2026년이다.

 

Unesco 세계 문화유산

바르셀로나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여러 건축물들이 있다.

다음에는 마드리드로 떠납니다.

2. 2007년 마드리드(Madrid) 여행기는 다음 블로그에

프라도Prado미술관: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고야의 그림: 마하

 

"옷을 벗은 마하’ 때문에 1815년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드 고야는 재판을 받게 된다. 요즘 말로 하면 음란물 제작 혐의쯤 될 것이다. 1799년부터 궁정화가로 일하던 고야는 당시의 실권자 마누엘 고도이의 주문으로 이 작품을 그렸다. 통상적으로는 ‘옷을 벗은 마하’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면피용으로 동일한 구도의 ‘옷을 입은 마하’를 하나 더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옷을 벗은 마하’는 ‘옷을 입은 마하’ 뒤에 감추어져 있다가 줄을 잡아당기면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림 자체보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 더 음란한 것 같다. ‘옷을 벗은 마하’는 도발적인 눈빛과 부자연스럽고 각진 몸매로 19세기 초반의 누드화 전통에서 벗어나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된다."(중앙일보 참조)

 

Francisco_de_Goya,_Saturno_devorando_a_su_hijo_(1819-1823)